기획 특집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배움에 나이가 있나요? '전주희망학교'
2022.03민들레처럼
이지순 l 문해 교육 수료자․77
봄은 좋은 계절
나무들은 바람에 잠을 깨고
새싹이 파릇파릇 돋아나는데
내 청춘은 돌아오지 않네
내 나이 예순 늦깎이 공부를 시작했네
텅 빈 머릿속 한 자 한 자 집어넣고
돌아서면 잊어버리네
길가에 핀 민들레
사람들이 밟고 밟아도 살아나고
해가 뜨면 다시 예쁜 꽃을 피우는
민들레처럼
나도 강하고 밝은 모습을 본받고 싶다
배움의 꿈을 이루어 주는 어르신 학교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초등학교 교실인가 했더니 어르신들이 앉아 계신다. 삐뚤빼뚤 한 글자씩 소리 내어 읽고, 써 내려가는 어르신들의 표정이 사뭇 진지하다. 이곳에 계신 어르신들의 평균연령은 60대 중반. 그 가운데는 나이 여든 살을 훌쩍 넘은 늦깎이 학생이 수업에 열중하고 있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이곳은 바로 배움의 기회를 놓쳤지만 배움에 뜻이 있는 어르신들을 위한 ‘전주희망학교’다.
전주희망학교는 경제적, 사회적 어려움 등 저마다의 사연으로 늦깎이 배움에 나선 어르신들이 문해 교육을 받으며 새로운 꿈을 키워가는 곳이다.
전주시는 지난 2006년부터 배움의 기회를 놓친 성인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전주희망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현재는 전주주부평생학교를 비롯한 다온장애인평생교육원, 마중물야간학교, (사)전북여성장애인연대 부설 등불야학, 백학평생학교, 중증장애인지역생활지원센터 등 야학기관 6개소와 선너머종합사회복지관, 안골노인복지관, 우아생활문화센터, 전주연탄은행 등 평생학습기관 16개소 총 22개소에서 배움의 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일반적으로‘문해 교육’이라고 하면 대부분 한글을 읽고, 쓸 수 있도록 교육하는 한글 교실이 가장 먼저 떠오를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단순히 글을 읽고 쓰는 교육을 넘어 일상생활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필요한 능력을 갖출 수 있는 전반적인 교육을 지원한다. 금융시설 이용 방법과 계절별 안전 사항 등 일상생활과 밀착된 내용도 배우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내가 공부를 시작하게 된 이유, 그리운 사람에게 띄워보는 편지 등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려보는 창작과 체험 위주의 활동도 함께 진행하고 있다. 창작물들은 전시회를 마련해 가족과 지인들 그리고 시민들과 함께 공유하는 시간을 갖는다.
올해로 37년째 전주주부평생학교를 지키고 있는 박영수 교장은“우리 사회에는 아직도 가정 형편과 사회적 통념 때문에 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곳에는 뒤늦게나마 배움을 시작하기 위해 스스로 찾아온 분들이 대다수죠. 어르신들이 공부하는 모습 보셨죠? 130여 명 학생들 모두 하나라도 더 배우겠다는 열정으로 가득합니다. 이분들 모두 뜻을 이룰 때까지, 배우고자 하는 마음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소외되지 않도록 이곳을 지켜나갈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그 마음이 닿아서였을까? 방금 배웠어도 뒤돌아서면 잊을 나이라 공부하기 힘들다고 말하는 어르신 학생들은 누구보다도 근면 성실하게 등교하고, 서로의 학습에 도움을 주며 하나라도 더 배워가기 위해 부지런히 애쓰고 있었다.
문해 교육으로 제2의 인생을 열어 가다
문해 학교 수료생들에게는 삶의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모두 인생이 달라졌다고 입을 모았다. 누구의 도움 없이 혼자서 버스 노선도를 보고 목적지를 찾을 수 있게 됐고, 병원 간판이나 약 이름, 음식 메뉴 등을 읽게 되면서 삶의 질이 나아졌다는 것이다. 특히, 초등학력 인정을 받게 된 어르신 학생들은 성취감과 자존감이 높아졌다고 했다. 초등학력을 인정받기 위해서는 초등학생 5·6학년 교육과정에 해당하는 초등 3단계를 수료해야 하는데 초등 1·2단계는 2년, 그 이상은 단계마다 1년씩 공부하게 되고, 매주 3회 열리는 수업시수의 3분의 2 이상 출석해야 다음 단계로 올라갈 수 있다. 쉬운 것처럼 느껴질 수 있지만, 아픈 곳이 많고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들에게는 마음먹고 해내야 하는 도전이다.
전주주부평생학교 초등문해학력인정반 졸업을 앞둔 강길자 어르신은 배우지 못한 게 한이었는데 이곳에선 원 없이 배울 수 있음에 행복하다고 말했다.
“어렸을 적에는 집안 형편이 어려워서, 그 이후에는 아이들을 키우느라 공부는 엄두도 내지 못했어요. 평생의 한으로 끝날 줄 알았는데 70이 가까운 나이에 졸업장을 따게 될 줄이야. 이제 아이들의 도움 없이 내 이름도 쓰고, 글도 읽고, 쉬운 계산도 문제없이 해낼 수 있으니 얼마나 뿌듯한지 몰라요. 이래서 사람은 평생 공부를 해야 하나 봐요. 앞으로 건강이 허락된다면 계속 공부해서 중등학력 인정과정에도 도전할 거예요.”라고 말했다.
전주주부평생학교 박명희 교사 역시 “어르신들이 기본적인 문해 수업 외에도 체험 활동을 통해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고 있어요. 젊은 사람들보다 공부하기 힘든 여건일 텐데도 항상 반짝이는 눈으로 수업하는 모습을 보면서 저 역시도 많이 배우고 있어요.”라고 말했다.
글을 쓸 수도, 읽을 수도 없어 그동안 표현하지 못했던 어르신들이 ‘희망학교’를 통해 맘껏 읽고, 쓰면서 세상과 소통하고 행복하고 질 높은 삶을 누리길 바란다.
전주희망학교
문의 l 전주시 인문평생교육과(063-281-53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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