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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저장고
1950년대의 기억
피란 기념 놋쇠 화로
다림질할 때 인두를 달구고, 겨울이면 웃풍을 막아 주며,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대대로 물려주기도 했던 화로. 장작이 부족했던 그 시절, 추운 겨울이면 하루 종일 마른 참나무와 소나무를 모아 아궁이에 군불을 지피고, 뜨거운 숯은 긁어 모아 화로에 담았다. 재 사이로 끈질기게 피어오른 화로의 열기는 방 안을 가득 채우고 온 가족의 꽁꽁 언 몸과 마음을 녹여 주었다. 옹기종기 화로 곁으로 모여 군밤이나 군고구마를 나눠 먹던 소박한 기억은 세월이 흘러 화로 안에 추억으로 새겨졌다. 화로는 1950년대 관에서 기념품으로 제작할 만큼 생활필수품 중 하나였다. 화로 윗부분에 ‘피란祝기념’과 ‘전라북도 전주시 제8주년’이 음각으로 선명하게 새겨져 있다. 처참한 전쟁이 끝난 후에도 피란의 아픈 기억은 민중들의 삶에 여전히 남아 있었음을 가늠해 본다.- 전주시민기록관 소장
2024.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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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의 기억
흑석골 지우산
비닐우산이 본격적으로 쓰이기 전까지 지우산은 시민들의 필수품이었다. 대나무 살에 기름 먹인 종이를 붙여 만든 우산은 겉보기에 쉽게 찢어지거나 구멍이 날 것 같지만 폭우나 태풍에도 꽤 잘 버텨 냈다. 그만큼 지우산에 쓰인 한지는 워낙 질긴 종이인 데다가 기름이 종이의 방수성을 높여 우수한 내구력을 자랑했다. 조선 말기에 지우산이 보편화되면서 이후 1960년대까지도 거리에서 흔하게 볼 수 있었다. 특히 전주는 한지의 본고장답게 지우산 제작에 관한 오래된 솜씨와 전통을 고스란히 이어 가고 있다. 기증자 이원근 씨는 1950년대 서서학동 흑석골에서 지우산을 생산하던 때를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초등학생 시절 집집마다 지우산을 쓰고 다녔는데 지금은 생산되지 않는다며 안타까운 마음을 전했다. - 전주시민기록관 소장
2024.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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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암동 전통 혼례복과 보관 상자
지금은 그 의미와 절차가 퇴색하고 간소화되었지만 전통 혼례에는 마을의 모든 이가 기쁨과 슬픔을 함께했던 공동체적 삶이 깊이 반영되어 있다. 근현대까지만 해도 전통 혼례는 성행했다. 혼례가 있는 날이면 구름처럼 모여든 사람들이 날이 새도록 즐겁게 먹고 마시는 일이 흔했다. 2017년 김창연 씨는 과 를 기증했다. 그는 대한노인회에서 지인에게 받은 것을 보관하고 있다가 기증하게 되었다고 한다. 보관 상자에는 ‘검암동 공동소유’라고 적힌 글귀가 희미하게 남아 있다. 마을 공동 소유의 혼례복과 부대용품을 혼례자에게 대여해 준 것이다. 한 번 입고 끝낼, 직접 구하기엔 부담이 가는 혼례복을 공유하는 것이다. 이제 새출발을 앞둔 신혼 부부의 경제력까지 생각한 선조의 지혜이다.
2024.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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