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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의 꽃심
“경기장을 짓는데 돈이 없어서 도민 성금을 모금했죠”
임양원 어르신의 전주종합경기장 기록물
열세 살에 초등학교를 입학하다제가 초등학교를 열세 살 때 입학했습니다. 아버지가 농사를 지었는데 자식을 5남매를 두었어요. 당신이 농사를 시켜야겠다 맘먹고서 나를 학교에 보내질 않았어요. 그러다 제가 열세 살 때 아버지를 졸라 학교에 다니게 됐는데 나이 때문에 초등학교 3학년으로 편입했지요. 제가 학교를 늦게 졸업하다 보니 군대를 좀 늦게 갔어요. 저는 한국전쟁이 한창일 때 입대해서 6년간 복무를 했습니다. 4월 20일 제대를 했는데 아버지가 신부감을 미리 정해 놓은 겁니다. 그래서 신부 얼굴도 못 보고 5월 30일에 결혼했어요. 결혼 한 달 후 도청에서 토목직 기사를 뽑는다는 소식을 듣고 지원했습니다. 구두시험을 쳤는데 다행히 합격해서 그 뒤로 공무원이 됐어요. 새내기 공직자, 종합경기장 공사를 맡다공무원 시절, 밥값이 아까워서 일 년 내내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녔습니다. 자전거로 출퇴근했는데 일 년 열두 달 자전거 뒷자리에 도시락통을 달고 다녔지요. 1963년 전주에서 제44회 전국체육대회가 열리는데 운동장이 하나도 없었어요. 그래서 종합경기장을 짓기로 하고 시작을 했는데, 그때 제가 기사보였거든요. 그런데 선임들이 다 뒤로 빼는 겁니다. 그래서 뭣도 모르는 제가 그 중책을 떠맡게 되었습니다. 경기장을 짓는데 나라에 돈이 없었어요. 그래서 전라북도 전 도민에게 성금을 모금했습니다. 호당 50원의 성금을 걷고 기념 배지를 줬지요. 독지가들의 후원도 이어졌는데 삼양사에서 3,000만 원, 신태인 쌀장수 이기동이 600만 원을 냈어요. 저는 도민의 성금으로 짓는 경기장이니만큼 부실 공사를 하지않고 예산 사용도 깨끗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공사장 근처의 짜장면 집에서 짜장면을 배달해가며 공사현장을 한시도 떠나지 않고 일했습니다. 설계도도 없고 전체 모형도만 있었기 때문에 그때그때 설계하면서 경기장을 지었어요. 정말 많이 힘들었습니다. 전북 도민의 성금으로 지은 전주종합경기장공사 기간 내내 교육부, 문화부, 전라북도지사가 매일 현장에 나와서 공사 진척을확인했어요. 그해 2월에 공사를 시작해서 9월에 완성했어요. 인부들이 새벽 5시부터 일을 시작했습니다. 당시 내 나이가 30대 초반이었는데, 같이 일하는 건설회사 사장들은 70세 정도 되었습니다. ‘당신처럼 일하는 감독은 처음’이라고 혀를 내둘렀죠. 어르신들의 인정을 받았을 때는 스스로 장하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런데 경기장 완공을 앞두고 본부석 지붕이 무너지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지붕을 동그랗고 균일하게 채워가야 하는데, 한쪽이 내려앉은 거지요. 다행히 인명 피해는 없었고, 전국체전에 지장이 있을까 봐 철저히 비밀 유지를 하면서 다시 만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경기장 공사를 하는 동안 단 한 번도 업자들에게 밥 한 번 얻어먹은 적이 없습니다. 스스로 부끄럽지 않으려고 노력했습니다. 한번은 기자 하는 친구가 말하길 ‘네가 바깥에서는 불통과장으로 소문까지 났다, 왠만하면 둥글게 살아라’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말했지요. ‘나도 법에 맞기만 하면 직통과장이다. 왜 잘못된 것을 갖고 와서 불통이라 하느냐, 그게 더 잘못된 것 아니냐’ 하고요. 자손들에게도 종종 이런 말을 해 줍니다. 법에 어긋나지 않게 정직하게 살자, 이것이지요. 저도 아버지께 받은 말이고, 후손들에게도 물려줄 말이 아닌가 합니다. 임양원(91) 어르신은 논과 밭이었던 벌판에 전주종합경기장이 건설되는 과정을 꼼꼼히 한 권의 앨범으로 남겼다. 종합경기장을 완공하고 성공적으로 전국체전을 치른 기억은 34년의 공직 생활 중 가장 보람 있는 일이었다.
2020.12.08
#전주종합경기장
#전국체육대회
#성금
멋진 하루
바람 쐬는 길
흘러내리는 물길, 올라가는 오붓한 숲길
기억은 시간을 통해 과거를 그려내고 전주역에서 기차를 타고 여수 이모님 댁을 찾았던 기억이 어렴풋하다. 1970년대 중반의 여덟아홉 살 무렵이었다. 당시 전주역은 우아동에 위치한 현재의 역사가 아니라 전주시청사가 자리 잡고 있는 옛 전주역이다. 서울을 가거나 여수를 가거나 고속버스보다는 철도가 원거리 여행의 교통수단이었던 기억 속의 전주역이 아직도 생생하다.여수로 향하는 전라선은 드물지 않게 터널을 만난다. 터널은 캄캄한 밤과 겹쳐진다. 여수가 어디에 있는지, 얼마나 거리가 멀고, 그곳으로 향하는 곳에 어떤 도시가 있는지 모르는 소년의 아득함처럼, 캄캄한 터널은 아직도 먼 느낌으로만 남아 있다. 그 옛날 전주 동산동 방면으로는 덕진역이 있었고, 남원 방면으로는 남관역이 있었다. 슬치 넘어 관촌으로 향하는 기차들 중에는 신리역에서는 서지 않아 도 남관역에서는 꼭 서야만 하는 열차도 있었다고 한다. 강원도 태백만큼 험악하지 않지만 증기기관차로 슬치고개를 넘는 것이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란다. 운 좋으면 하루에 두 번, 어떨 땐 그 이상 잔뜩 숨을 몰아쉰 채 슬치를 넘어야 하는 기차의 전진기지가 남관역이었다. 전주의 남쪽 관문 남관역의 존재 이유였다.마흔 중반 이하의 젊은 세대에겐 전북대 앞에 철길이 있었고 전주시청이 전주역이었다는 사실 자체가 생소할 것이다. 한벽루 아래 터널이 기찻길이었다는 사실은 어렴풋하게 들었을 법하지만 사십 년이 채 되지 않는 전주를 그려내지 못하는 경우가 태반일 듯하다. 지금의 전주역을 지나 신리로 새롭게 길이 난 게 1981년 5월이기 때문이다.철길은 그렇게 한벽루 밑을 흐르고 옛 전주역에서 출발하는 전라선은 한옥마을을 오른쪽에 끼고 오목대와 이목대 사이를 지났다. 역사를 모르는 사람은 오목대와 이목대가 별개로 떨어진 언덕 위의 정자로 오해하기 십상이지만 원래 오목대와 이목대는 승암산 아래 능선에 나란히 존재했다. 전라선이 뚫리면서 철로로 인해 승암산에서 떨어지게 되었고 후일에 기린대로가 뚫리면서 거리가 더 넓어졌다. 확연하게 분리된 공간은 본래 한 몸이었다. 하필이면 한벽루 아래로 철길이 났을까 싶지만 운명은 한벽루 아래에 터널을 내주어야 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전주천을 타고 남쪽으로 향하는 철길이 되었다. 터널을 바로 지나면서 좌측에 자리한 전주 자연생태관은 철로가 있던 시절엔 철길 옆 오막살이를 하던 사람들이 철길로 인해 고립된 삶을 살던 터전이었다. 이 길가에 전주에서 태어나지 않았던 태조 이성계가 자신의 고조인 목조의 고향을 찾아와 왕업의 다짐을 내보였던 오목대와 이목대가 있다. 1800년대 초 순교자가 처형당했던 마당이 지금의 전동성당이었다. 순교자가 처형된 자리에 전주성을 지탱하고 있던 돌들로 프랑스 신부에 의해 1900년대 초에 전동성당이 지어졌다. 그리고 처형된 순교자들이 치명자산에 하나둘 안장되면서 치명자산은 세계적인 성소가 되었다. 1970년대 이목대를 지나던 박정희 전 대통령의 지시로 풍남동 일대의 한옥마을 보존이 이뤄졌다고도 한다. 그것이 오늘의 한옥마을로 이어졌으니 철길이었던 이 공간은 수백 년의 역사를 여러 갈래로 담고 있다. 중세 봉건왕조의 창업과 구한말 왕조의 답답한 마음, 그리고 천주교의 피의 역사와 근대문명에 우왕좌왕하던 전주 유림들의 철로에 대한 완고한 반감과 후회가 담겨 있으며 그것이 지금의 모습과 기억으로 남아 있다. 바람 쐬는 길을 따라 자전거 도로를 달리고 지금은 이곳을 ‘바람 쐬는 길’이라 부른다. 한벽루 아래 터널로부터 시작해 색장마을 3.4km가량의 구간이다. 철길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이 길에는 나무 터널이 시원하게 드리워져 있다.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자전거로 느리게 달리기 딱 좋은 곳이다. “전주 사람 중에 이 길을 얼마나 찾아보았을까요?”라는 질문에 김 팀장이 대답한다. “아마도 자전거 타는 사람들 아니고서는 손에 꼽을 것 같습니다. 이름 그대로 바람 쐬기에 딱 좋은 공간이고 여러 가지 보고 느낄게 참 많은 길인데 말입니다. 색장마을 구간과 은석교 너머 신리로 향하는 자전거 도로가 완성되면 편백나무를 쭉 심어 나무 터널로 만들어도 참 좋겠어요. 이 구간만 올해 완성되어도 빼놓지 않을 명소가 되지 않을까 싶네요.”라고 덧붙인다. 완주군 상관면 신리와 전주시 색장동 구간 중 이어지지 않은 구간을 전주시와 완주군이 함께 자전거 도로로 만들고 있다. 이 도로가 완성되면 한벽루부터 왕복 13km가량의 전주천을 크게 한 바퀴 돌 수 있게 된다. 한옥마을 이목대 아래나 향교 아래 또는 전주자연생태관에서 공영자전거를 빌려 이 코스를 도는데 한 시간 남짓 달릴 수 있는 훌륭한 자전거 코스가 될 것 같다. 자전거를 타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두어 시간 달려볼 만한 길이다. 좀 더 욕심내 신리를 지나 한일장신대를 지나 왜목재 너머 구이로 돌아오거나 화심 방향으로 돌아오면 출발점으로부터 30km 조금 넘는 훌륭한 라이딩 코스가 된다. 시간을 간직한 옛길, 옛 기억 사이에서 도시가 변하면서 옛길은 무용지물이 되고 방치되기도 한다. 광주에서 경상도로 이어지는 경전선 옛 철길은 ‘푸른길’이라는 공원으로 다시 태어났다. 북한강변 기찻길은 한강 자전거 도로로 훌륭하게 재탄생하기도 하였다. 옛 공간에 대한 보존과 활용에 대한 개념이 약하던 때, 새로운 철길을 내면서 기린대로와 바람 쐬는 길로 이어지는 옛 전라선 철길을 배려해 줄 여유가 그 시절엔 없었을 것이다. 지금이라도 덕진광장, 전주시청사 주변, 바람 쐬는 길에는 철로로서 기능했던 옛 기억을 담아둘 공간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인다.언뜻언뜻 스치는 아름다운 풍광에 취하지만 말고, 무언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있으되 묵묵하게 자리를 잡고 있는 구조물과 지금을 살아가는 사람들 사이에서의 대화를 이끌어 내기 위한 고민이 이뤄졌으면 싶다. 글 김길중 | 한의사김길중 씨는 한의사이자 전주 생태교통시민행동 공동대표이다. 전주시 자전거 다울마당 위원으로 활동했다.
2020.12.07
#전주역
#한벽루
#자전거 도로
이 가게 가게
우리 동네 쌀집 나이 무려 쉰 살
전주시 미래유산, 중화산동 성수미점
성수 사람이 연 쌀가게, 성수미점가게 이름이 ‘성수미점’이다. 이강덕 씨의 고향이 임실군 성수면인 까닭이다. 그때 당시 성수면에서 전주로 온다는 것은 서울에 가는 것보다도 더 힘들었던 시절이다. 성수면은 아주 골짜기 산골 동네였다. 그 동네에서 유일한 교통수단인 기차는 동네에서 3㎞ 넘게 걸어 나가야만 탈 수 있었다.하루는 동네에 교회 전도사가 찾아왔다. 이강덕 씨도 그 때 처음으로 기독교 신앙을 갖게 되었다. 이강덕 씨는 가난한 집안의 7남매 중 장남이었다. 경제력이나 학력이나 어디에 내놓을 만한 게 하나도 없었다. 그런데 그 전도사가 이강덕 씨의 성실한 모습을 마음에 들어 했다. 그 전도사가 나중에 이강덕 씨의 동서가 됐다. 이강덕 씨가 장사를 하고 싶다고 했더니, 장사를 하려면 도회지에서 해야 한다면서 전주에 있는 자기 집 옆방을 빌려주었다. 전주로 이사를 온 이강덕 씨는 1965년 지금 자리에 쌀집을 열었다.짐빠 자전거는 씽씽 달린다1960~1970년대는 모두가 가난했고, 하루 밥 세끼가 절실했던 시절이었다. 이강덕 씨는 자전거 한 대로 장사를 시작했다. 그 당시 ‘짐빠’라고 불리던 쌀 배달 자전거 한 대를 몰고 삼례로, 고산으로, 임실로 사방으로 물건을 가지러 다녔다. 차가 없던 때라 짐빠는 이강덕 씨의 재산 1호였다. 짐빠에 곡물을 가득 싣고 집에 오면, 곡물을 쌀·보리·콩 등 종류별로 조금씩 나누어 놓는다. 그 시절에는 보리를 팔아도 한 되, 두 되 이렇게 팔았다. 외상 거래도 많아서, 한 70~80%는 전부 외상 거래였다. 한번은 어떤 할머니가 밤에 등불을 들고 손자의 손을 잡고 가게를 찾아 왔다. 내일 아침 손자 도시락을 싸줄 쌀을 한 되만 외상으로 달라는 것이다. 말이 외상이지 나중에 쌀값을 못 받을 게 불 보듯 뻔했지만 할머니를 따라온 아이 눈을 보니 차마 그냥 보낼 수가 없었다. 동네 식량 창고 역할을 하는 이강덕 씨 쌀집에는 왕왕 있었던 일이다. 그래도 내가 그 사람들보다야 조금이라도 낫지 싶어 그냥 넘길 때가 많았다.선너머길 유일한 동네 쌀집옛날엔 이곳이 ‘선너머 미나리’라고 불리던 미나리꽝이었다. 성수면에서 맨 처음 이곳으로 왔을 때에는, 방 한 칸에서 장사를 시작했다. 윗목에는 곡물 자루를 죽 늘어놓고, 아랫목에서 셈을 하고 그랬다. 몇 년을 그렇게 지낸 후, 옆방을 얻어서 제대로 모양을 갖춘 게 지금의 가게다. 가게를 조금씩 손을 보기는 했어도 옛날 모습 그대로다. 세월과 함께 살짝 뒤틀린 문짝, 손때 묻어 번질번질한 됫박과 투박하고 무거워 보이는 저울 등 모두 이곳 주인 이강덕 씨와 50년 넘는 세월을 함께 지나온 것들이다. 골목골목 쌀가게, 채소가게가 이제는 하나둘 사라져 가지만 ‘성수미점’은 수십 년 세월 동안 변치 않는 모습으로 꿋꿋하게 동네 길목을 지켜왔다. 얼마 전 이 가치를 전주시 문화자산으로 인정받아 전주 미래유산으로 선정되었다.“오래된 쌀집이라는 것 빼고 무슨 특별한 의미가 있겠어요. 쌀을 팔러 오는 동네 주민들 덕에 큰 도움을 받으며 살았어요. 그분들 덕에 딸 셋, 아들 하나도 훌륭하게 키웠는데, 이렇게 전주시 미래유산으로 선정되는 영광까지 얻게 되었습니다.”언젠가 ‘성수미점’도 문을 닫을지 알 수 없다. 다만, 여든의 쌀집 사장님은 오늘도 동네 손님들을 위해 구석구석 가게를 쓸고, 형형색색의 잡곡을 정갈하게 정리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성수미점주소 | 전주시 완산구 선너머3길 5-14 문의 | 063-284-9276
2020.12.01
#쌀집
#성수미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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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찮은 것이라도 소중하게 보관하면 기록이 되고, 역사가 됩니다”
김용철 어르신의 전주 출판 기록물
책과 더불어 살아온 인생 저는 어렸을 때부터 책을 좋아했습니다. 꼭 공부 때문만은 아니었고, 책은 하나의 놀이와 같았어요. 여행을 많이 해 보지는 못했지만, 책을 통해서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제게 책은 성장의 자양분이었지요. 전주시에서 발간한 시정 소식지 창간호를 우연히 보게 되었어요. 2000년을 목전에 둔 때였는데, 갖가지 세기말 루머와 함께 새로운 21세기에 대한 희망이 교차하던 시기였지요. 전주시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어요. 최초로 시민들이 민선 시장을 선출하면서, 그 어느 때보다 전주 발전에 대한 기대감이 높았습니다. 민선 시장 취임 후 1999년 1월, 전주시의 새로운 시정 소식지 가 처음 발간되었어요. 예전 관에서 배포하던 책자와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잡지였어요. 잡지의 구성이나 편집, 디자인이 이전의 것과는 격이 달랐어요. 를 보며 ‘아, 전주에 뭔가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던 것 같아요. 작은 기록들이 모여 만드는 역사 책을 좋아하다 보니 자연스레 잡지도 자주 접하게 되었어요. 잡지 창간호에는 가장 중요한 내용이 실리게 마련입니다. 통상 창간호에는 창간사가 있는데 그걸 보면, 이 잡지가 무엇을 위해 만들어진 건지 확실히 알 수가 있지요. 그렇게 생각하다 보니까 창간호가 눈에 자주 띄는 거예요. 그래서 창간호를 모은 게 한 30~40종은 되는 것 같습니다. 잡지는 뉴스나 가십, 이야깃거리 등을 통해 동시대를 사는 사람들의 삶의 행태를 생생히 보여주는 것 같아요. 오래된 잡지를 들춰 보면 그때 그 당시의 일들이 줄줄이 연상되어서 잠깐 동안 회상에 잠기기도 합니다. 지금도 우리는 많은 기록을 하고 삽니다. 일기나 편지, 요즘 젊은이들은 블로그 등에 쉬지 않고 자신의 일상을, 자신의 생각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 기록들을 얼마나 잘 보존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역사는 기록입니다. 하찮은 것이라도 소중하게 보관한다면 그것이 의미 있는 기록이 되고, 역사가 됩니다. 평생을 모은 기록물을 기증하다 셈 다루는 걸 좋아한 게 인연이 되었는지 전북은행에 입사하게 되었습니다. 직장은 은행이었지만, 문화와 예술에 관심이 많아 작품들도 꽤 모았습니다. 경제적으로 넉넉한 형편은 아니었지만, 마음에 드는 작품이 있으면 생활비를 쪼개서 구입하곤 했습니다. 지금도 소장하고 있는 유화와 서예 작품, 조각품들은 모두 그때 구입한 것들입니다. 얼마 전에 전주시에 기증한 기록물들도 평생 모아온 것들입니다. 전주시청에서 만든 소식지 창간호, 번영로·까치고을·마당발 같은 생활 정보지 창간호, 전북도민신문·전주일보·전라일보 창간호 등입니다. 개인의 자료가 전주의 의미 있는 기록으로 남게 되어 영광입니다. 나이가 드니 기억력도 예전 같지 않아서 자료를 모으거나 책을 읽는 일이 예전 같지 않습니다. 눈도 침침하고 자꾸 깜빡깜빡합니다. 이제는 잘 모아온 소중한 자료들을 저보다 더 필요로 하는 기관에 기증하려고 합니다. 생각해 보니, 인생도 한 권의 책과 같아요. 책의 마무리가 중요하듯이, 제 인생의 멋진 마무리를 위해서 오늘도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김용철(73) 어르신은 전북은행에서 30년 넘게 근무하셨다. 퇴직 후 대한노인회에서 주관하는 취약노인 상담 등 재능 나눔 봉사에 참여하거나 영화에 보조 출연을 하기도 한다. , , , 등 어느덧 출연한 영화 가25편이나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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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특집
제11회 전주 시민원탁회의를 가다
No! 기후 변화 Yes! 우리의 변화
온·오프라인 동시 개최한 첫 시민원탁회의11월 12일, ‘전주도시혁신센터’, ‘전주평생학습관’ 등 열 개의 공간마다 열 명 남짓한 시민, 총 100여 명이 둘러앉았다. 같은 시간, 화상 회의 줌(zoom)에 열 개의 토론방이 만들어졌고, 전주시청 유튜브 ‘전주성’도 생중계를 시작했다. 코로나19 장기화 속에 치러지는 이번 시민원탁회의는 온·오프라인 혼용 방식이 처음으로 도입되었다. 둥글게 둘러앉아 토론하는 형식은 유지하되 참석 인원을 최소화해 코로나19 확산을 방지하고, 온라인을 통한 참여와 소통을 강화해 시민원탁회의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도를 높였다. 특히, 지난여름 역대급 장마와 태풍 등 눈앞에 닥친 기후 위기 탓인지 이제 막 학교에 들어간 초등학교 학생들부터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까지, 세대도 성별도 가리지 않고 모인 다양한 계층의 참여가 눈에 띄었다. 기후 위기 극복을 위한 실천 방안 제시어색한 분위기는 ‘자신이 꿈꿨던 2050년 탄소 제로 전주’를 그리기 시작하자 금세 달라졌다. 푸른 숲이 가득한 초록의 도시, 북극곰과 펭귄이 행복한 지구가 소개되자 참가자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서로의 아이디어에 공감해 주었다. 시민들이 꿈꾸는 전주의 미래를 상상하는 시간, 전주시 유튜브 ‘전주성’에는 전주시장․자전거정책과장․전주에너지센터장이 출연해 기후 위기에 관한 솔직 담백한 대화를 이어 갔다. 계속된 시민대토론회에서는 기후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반짝이는 아이디어들이 제시되기보다는 시민들이 일상에서 할 수 있는 구체적인 실천 방안들이 소개되었다. 대중교통 측면에서는 지구를 위해 걷거나 자전거를 타자는 주장과 자동차 총량제를 실시하자는 다소 강한 주장도 제시됐다. 환경·생태 측면에서는 버려지는 옷이나 폐현수막 등에 디자인을 입혀 업사이클링(새활용) 제품을 만들자는 의견과 집과 공원 등에 자신의 이름을 단 나무를 식재해 시민 스스로 가꾸자는 의견도 제시되었다. 이 밖에도 환경 감수성을 키우기 위한 교육의 필요성과 생태 도시를 만들기 위해 전주시의 적극 행정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높았다. 원탁회의 참가자들의 인기를 독차지한 코끼리 인생학교 팀의 신동초등학교 1학년 김의겸 군은 “지구가 아프지 않도록 쓰레기를 버리지 않고 전기차를 타면 좋겠다.”고 말했다. 처음으로 시민원탁회의에 참여했다는 서신영 씨는 “기후 위기에 대해 함께 이야기 나누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소중한 시간이었다.”며 “시민의 아이디어가 시정에 반영돼 전주가 더운 도시라는 오명을 벗고 생태 도시로 변모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시민이 제안한 기후 위기 대응 우수정책 41. 쌓여 있는 메일함만 비워도 이산화탄소가 줄어요2. 공공건축물은 친환경 제로 에너지 건물로 바꿔요 - 에너지를 줄이는 건축 기술을 적용하고 신재생에너지 사용3. 육식을 줄이고, 학교엔 ‘채식 급식 선택제'를 실시해요 - 가축 사육에 소모되는 자원과 에너지 줄이기4. 자동차 총량제 도입으로 공기를 살려요 - 지역과 가구당 자동차 보유 수량을 제한
2020.11.23
#전주시민원탁회의
#기후위기
#시민소통
2019 전주의 약속
2019 새로운 전주시대가 열린다
전 분야 일자리 창출로‘활력경제’일자리는 가장에겐 가족을 지키는 힘이고, 청년에겐 미래를 꿈꿀 수 있는 희망이다. 시민의 삶이자 희망인 일자리. 2019년 전주는 구석구석 도시 경제에 활기를 불어넣고, 전통산업부터 미래산업까지 모든 분야를 망라해 좋은 일자리를 만드는 데 총력을 기울인다. 이를 위해 시정 전 사업에 걸쳐 ‘지역경제활성화 기여도 평가제’를 도입하여 시작부터 끝까지 일자리를 집중적으로 챙길 계획이다. 아울러, 일자리 창출과 직결되는 중소기업과 소상공인 지원을 대폭 확대한다. 소상공인 영세기업에게 사업 공간을 제공하고, 카드수수료 0% 정책도 조례제정 등을 통해 단계적으로 실시한다. 또한 창업카페, 3D프린팅지원센터, 스마트 미디어센터 등을 갖춘 지식산업센터가 팔복동과 노송동에 각각 건립된다. 무엇보다 팔복동의 변화가 주목된다. 팔복예술공장, 야호예술놀이터, 예술기찻길, 금학천 생태복원 등 4대 사업이 본격화되면서 북부권에 활력을 불어넣을 것으로 전망된다. 지역특화 신성장산업 육성에도 박차를 가한다. 세계 최초로 드론축구를 개발한 전주는 2025년 전주드론축구월드컵 개최를 목표로 관련 인프라를 강화하고, 글로벌 드론축구 육성에 힘쓰면서 세계적인 드론메카도시로 발돋움한다. 팔복동, 동산동, 고랑동 일대에 조성되는 탄소소재 국가산업단지는 관련 기업을 집중 유치하여 일자리를 창출하고, 탄소복합소재의 표준화와 탄소섬유의 상용화에 집중 투자한다. 또한 금융산업 전문인력 양성, 3D프린팅, 첨단 정보통신기술을 활용한 전주형 스마트시티를 구축한다.도시재생은 지역 경제에 숨을 불어넣는 뜨거운 힘이다. 완산권역 구도심 100만 평은 아시아문화심장터로 재생한다. 2019년 전라감영 1단계 복원이 완료되면 문화심장터의 핵심 공간이 될 것이고, 20주년을 맞는 전주국제영화제 위상에 걸맞은 독립영화의 플랫폼 ‘전주독립영화의 집’도 건립된다. 덕진권역은 지난 8월 도시재생 뉴딜사업에 선정된 전주 역세권을 중심으로 큰 변화를 준비하고 있다. 한옥형 선상역사를 신축하고 청년 창업자와 예술인들의 활동 공간을 조성한다. 또 법원․검찰청 부지에 ‘한국문화원형콘텐츠 체험 전시관(가칭)’고 ‘법조삼현기념관’까지 들어서면 덕진 뮤지엄밸리의 꿈에 한층 가까워질 것이다. 오래된 것은 다시 살리고, 새로운 것에는 과감하게 도전하면서 2019년 전주는 도시 곳곳에서 굵은 땀을 흘릴 것이다. 시민의 삶을 존중하는 ‘생태도시 전주’생태 환경에 대한 관심이 날로 높아지고 있다. 전주시는 시민의 건강과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는 사업에 주력할 방침이다. 시민이 일상 속에서 겪는 가장 큰 고통 중 하나인 미세먼지. 전주시는 미세먼지로부터 시민의 건강을 보호하기 위한 해결 방안으로 천만 그루 나무 심기를 시작했다. 2026년까지 천만 그루 나무와 꽃을 심어 전주시 전체를 대규모 정원으로 만드는 것인데, 바로 ‘천만 그루 정원도시 전주 프로젝트’이다. 백제대로, 팔달로 등 주요 도로마다 도시 외곽의 찬 공기를 도심 중심부로 끌어오고 확산시키는 바람길 숲을 만들고, 시민 곁에 도시 숲을 조성할 예정이다. 팔복동 고형연료 소각시설 문제도 행정적 대응과 함께 정부 차원의 법 제정과 개정을 지속적으로 촉구해나갈 계획이다. 또, 대기질 개선을 위해 미세먼지 분진흡입차량을 구입, 도로에서 발생하는 미세먼지를 줄이고 전기자동차 구매와 노후 경유차 조기 폐차도 적극 지원한다. 악취를 줄이기 위한 예산도 과감하게 투자한다. 전라북도・김제시・완주군과 공동으로 혁신도시 악취 저감을 위해 노력하고, 삼천둔치 악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전주종합리싸이클링타운 음․폐수 전용관로를 신설할 계획이다. 대전동물원의 퓨마 사살 소식이 알려지면서 동물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고 있는 요즘, 전주동물원은 동물이 행복한 생태동물원으로 평가받으며 중앙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다. 민선 6기부터 시작한 생태동물원 개선 사업으로 큰물새장, 사자․호랑이사, 늑대사, 다람쥐․원숭이사, 코끼리사, 곰사를 친환경적인 시설로 개선했으며, 전주동물원의 마스코트가 될 수달이 적응 훈련을 마치고 시민들에게 공개되었다. 내년에는 시베리아호랑이사․원숭이사 준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걷고 싶은 도시, 대중교통이 편리한 도시, 자전거 타기 좋은 도시를 만들기 위한 노력도 단계적으로 진행된다. 기린대로․장승배기로에 자전거도로를 개설하고, 지능형교통체계 ITS 구축 사업을 통해 차량 정체가 자주 발생하는 주요 도로의 정체 문제를 해결할 계획이다. 아울러 버스 타기 좋은 도시를 만들기 위한 버스정책추진단이 꾸려져 시민들과 함께 지혜를 모을 계획이다. 또, 북부권 국도 대체 우회도로를 건설하고, 견훤로 교통체계 개선・객사길 보행환경 개선 사업도 역점적으로 추진한다.
2020.11.10
#일자리
#경제
#생태도시
#정원도시
여럿이 함께, 공동체는 살아있다
착한 공동체 제품을 사려면? 공동체 상품 판매장 ‘전주점빵’
전주에서 활동하는 협동조합과 공동체의 제품을 홍보・판매하기 위해 마련된 특별한 공간이 있다. 바로 공동체 온・오프라인 플랫폼 ‘전주점빵’이 그 주인공. 온라인 전주점빵에서는 협동조합과 공동체에서 만든 다양한 제품 정보와 상품 소개가 담겨있다. 초코파이를 판매하는 ‘㈜천년누리 전주제과’부터 환경자전거를 판매하는 ‘착한자전거’, 한지로 만든 민속 인형을 판매하는 ‘㈜예담공예’ 등 다양한 분야 제품 정보가 가득하다.온라인에 이어 오프라인 플랫폼도 전주동물원 내에 문을 활짝 열었다. ‘경쟁보다는 협동’에 목적을 둔 전주형 사회적기업을 지원하기 위해 설립된 전주점빵은 공개 모집으로 선정된 사회적기업 ‘오래된 소나무 협동조합’과 전주지역자활사업단 ‘담다’ 협동조합 ‘자연음식문화원㈔’이 입점해 있다. 입점 업체에서는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각종 먹거리와 기념품들을 만날 수 있다.오프라인 전주점빵 | 전주시 덕진구 소리로 68온라인 전주점빵 | www.jsocial.kr 문의 | 전주시 도시혁신센터(063-281-9318)
2020.10.16
#전주점빵
#협동
#사회적기업
잘 고쳤다 이 집
과거로의 시간여행, 근대사 체험 박물관
전주난장
눈으로만 보지 말고 손으로도 추억을 만져 보세요!학교의 교문처럼 만들어진 입구를 지나면 학용품, 눈깔사탕, 솜사탕이라고 쓰인 글씨 아래 ‘경남상회’ 간판이 보인다. 과자와 음료수와 장난감 등 학교 앞 구멍가게에서 학생들을 유혹했을 작고 앙증맞은 물건들이 즐비하다. 매표소를 지나 학교 안으로 들어가면 흰색 실내화를 넣어둔 신발장이 보인다. 한 칸의 교실은 국민학교로 불리던 시절의 초등학교 교실이 재현되어 있고, 다른 한 칸은 일명 ‘상고 누나’, ‘상고 오빠’들이 타자기를 배우는 상업고등학교 교실로 꾸며져 있다. 땅에 묻어 둔 김칫독과 옛 정취를 느낄 수 있는 세면대도 정겹다. 학교를 벗어나면 무궁무진한 세계가 펼쳐진다. 장난감점, 문구점, 책방, 철물점, 자전거포 등이 좁은 골목길에 늘어서 있다. 이곳에 있는 모든 소품은 조문규 대표가 25년 동안 수집한 것. 고가구와 골동품이 많은 이태원, 황학동은 물론이요,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사 모았다. 복고풍이 아닌 진짜 복고를 만날 수 있는 곳이거니와 여느 박물관과 가장 다른 점이라면 모든 물건을 손으로 만져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외할머니 장터, 우체국 등 70개가 넘는 크고 작은 공간에서 물건을 손으로 만져 볼 수 있고, 의자에도 앉아 볼 수 있다. 만화방, 고고장, 전통놀이터, 노래방 등의 체험도 가능하다. 또 하나 반가운 점은 먹을거리를 제외한 모든 체험거리가 무료라는 것! 한 사람의 오랜 꿈이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추억 공간으로이곳은 지난 2016년 10월에 단장을 시작해 ‘전주난장 야시장’으로 먼저 사람들을 맞았다. 그 뒤 재정비해 올해 3월에 근대사박물관으로 다시 문을 열게 되었다. 지금의 모습이 갖춰지기까지 3년이 훌쩍 넘는 준비 기간이 필요했던 셈. 긴 시간 동안 공을 들인 데는 이유가 있다. “삼십 대 후반부터 민속품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어요. 나이가 들면 근·현대의 생활사를 보여 주는 박물관을 만들고 싶다는 꿈을 갖게 되었죠. 그때부터 이것저것 하나씩 모으기 시작했어요.” 역 앞에 있었던 전당포와 연탄 아궁이가 있는 자취방, 1960~1970년대 선거 포스터와 달력 등 세세한 소품까지 신경 써서 재현한 공간에는 그의 땀과 열정이 스며 있다. 준비 기간이 길어지면서 말 못 할 마음고생도 많았다. “공사 진행이나 물건 구매에 드는 비용 때문에 골머리를 앓았지만, 공간이 조금씩 완성될 때마다 설레었어요. 돌담 하나를 쌓아도 그래요. 의도한 대로 만들어지면 그 좋은 기분이 며칠을 가는 거예요. 볼 때마다 예쁘고요. 정말 행복했어요.” 조문규 대표가 한 땀 한 땀 손바느질을 하듯 완성한 ‘전주난장’을 ‘군산극장’의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뭉클하게 다가온다. 그만큼 아름답기 때문이다. 해가 저물면 300여 개의 달과 별, 청사초롱 등으로 꾸며진 조명이 시간여행을 더욱 낭만적으로 만들어 준다. 앞으로 전통차와 국밥을 비롯한 전통 먹을거리 등도 선보일 계획이다. 전주난장주소 | 전주시 완산구 은행로 13문의 | 063-244-0001이용시간 | 일~목 오전 7:30~오후 8:30, 금~토 오전 8:30~오후 9:30
2020.10.12
#전주난장
#추억
#박물관
#문방구
#복고
에코시티 세병호
엄마 품처럼 포근한 초록 세상
시어머니와 함께 세병호를 걷다시어머니는 나에게 특별한 존재다. 경상도 여자가 전라도로 시집을 왔으니, 아는 사람이라곤 한 명도 없던 결혼 초기부터 그랬다. 아직도 주름진 손으로 담가 주시는 김치를 받아먹는 막내며느리, ‘얼마나 더 이런 선물을 받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숙연해질 때도 있지만, 마흔 후반이 된 지금도 어머니에게 나는 아이 같은 막내며느리다. 햇살이 싱그러운 5월, 오랜만에 시어머니와 옆 동네 산책에 나섰다.주말 아침 조금 부지런을 떨어 도착한 세병호. 지난 여름 에코시티 한여름 밤의 콘서트에 가수 안치환을 만나기 위해 발품을 팔았던 곳이건만, 차를 가지고 오니 주차할 곳을 몰라 시간이 꽤 걸렸다. 간신히 주차를 하고 차 밖으로 발을 내딛는 순간 “아이고, 경치가 참 좋구나!” 하는 어머니의 감탄사가 연신 들린다. 혼자 하는 말씀이지만 어머니가 좋다 하니 내 입가에도 미소가 번진다. ‘여든이 넘게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며, 내내 보던 것이 초록 들판이었을 텐데 뭐가 저리도 좋으실까?’ 싶어 여쭈어보니 시골 노인의 눈에는 아파트 숲속에서 만나는 푸름과 세병호가 안겨 주는 편안함이 마음에 드셨나 보다. 얼마 전만 해도 연둣빛 새싹을 피워 귀여움을 독차지하던 자연이 어느새 인생 최고의 아름다움을 뽐내듯 초록을 발산하고 있으니 세병호의 아침은 눈이 부시다 못해 시리다. 산책로이자 아이들의 자연 놀이터를 만나다에코시티가 들어서면서 우리에게 심심치 않게 들리는 이름이 바로 세병호이다. 사진작가들에게는 일몰이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평가받는 이곳은 쉼도 없이 바삐 돌아가는 도시인들의 삶 속에 잠시나마 근심 걱정 내려놓고 쉬어 갈 수 있는 곳이다. 그래서 에코시티 주민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게 더없이 좋은 산책로이자 아이들이 뛰어놀 수 있는 자연 놀이터로 사랑받고 있다.세병호는 에코시티가 들어오면서 인공적으로 만든 호수가 아니다. 향토사단 전주35보병사단이 있을 때 군부대 안에 있었던 호수였다. 그런 탓에 호수와 호수 주변은 보존이 잘 되었고, 수명이 꽤 오래된 나무들과 다양한 종류의 식물들을 만나볼 수 있다. 보통 걸음의 탐방객이라면 보고 즐기며 걷는 시간이 한 시간이면 충분할 것 같으나 여든이 넘으신 어머니와 함께하는 산책은 넉넉히 2시간은 잡아야 할 것 같다. 숲길을 거닐고 잔디밭 벤치에서 잠깐의 휴식, 그리고 모양새 없이 준비한 막내며느리의 간식 꾸러미로 허기를 달랜 다음 오붓한 둘만의 데이트는 막을 내릴 것이다. 천만다행! 다리 힘이 없으신 어머니가 당신 보기에도 세병호 둘레길은 밭에 가는 거리보단 짧다 싶으신지 자신감을 보이신다. 호수에서 자연과 사람이 하나 되다세병호의 아침은 한적하고 여유로운 풍경이다. 자연이 선사하는 빛과 향기 아래 생태공원을 조깅하는 젊은이, 다정히 산책길에 나선 노부부, 그리고 호수 주변 이름 모를 꽃들과 함께하는 아이들의 모습까지, 모든 것들이 한없이 행복하고 평화롭다. 적당히 자란 수레국화가 꽃을 피우고 고개를 들어 인사를 한다. 덩달아 붓꽃인지 꽃창포인지 구분이 안 되는 보랏빛 꽃을 피우고선 우리를 보고 군데군데 서서 손을 마구 흔든다. 호수 한쪽 귀퉁이엔 지난봄에 주민들에게 쏟아지는 사랑을 받았을 철쭉들도 보이고, 머지않아 꽃망울을 터뜨릴 장미들도 줄을 지어 키를 키우고 있다.평상이나 벤치, 잔디밭 곳곳에는 가족 단위로 산책 나온 주민들이 자리를 깔고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으며, 자전거를 타고 가는 활기찬 아이들의 모습에 덩달아 도시의 생명력이 넘치는 듯하다.아직은 잔디밭의 키 작은 나무들이 조금 아쉽긴 하지만 자연과 사람이 하나 되는 자연친화적인 호수공원이 가까이 있음에 뿌듯하기 그지없다. 게다가 산책로가 경사지지 않아 남녀노소뿐만 아니라 장애인들이 이용하기에도 무리가 없다는 것이다. 어머니와 숲속 산책길을 빠져나오며, 나에게 약속한다. 어머니가 더 연로해지시면 휠체어를 타고라도 다시 한번 세병호를 찾아오자고. 글 김갑련 | 전주시청 블로그 기자김갑련 씨는 전주를 찾는 관광객들과 시민들에게 전주를 알리는 역할을 하고 있는 ‘전주시청 블로그 기자’이다. 김갑련 씨는 전주의 자연과 문화, 예술을 사랑하는 전주 알림이이자 사회복지사이다.
#호수공원
#세병호
#에코시티
#백석저수지
전주천
계절을 따라 기억을 안고 흐른다
기억은 계절의 물결을 타고그런 날이 있었다. 푸르른 봄, 자전거를 타고 그녀를 바래다주던 날, 허기진 불면의 눈으로 여름밤 가로등을 벗 삼아 걷던 날, 뉘엿뉘엿 저무는 가을 노을빛에 물든 낙엽의 마음을 알 것만 같던 날, 한없이 깊은 겨울의 새벽, 하얀 눈 위에 첫발자국을 남기던 날. 이 모든 순간, 나는 전주천에 있었다. 전주천은 마치 전주 시내를 관통하듯 나의 기억을 관통하며 흐른다. 그러곤 매 순간의 기억만큼 다른 얼굴로 계절마다 나에게 돌아온다. 잔인하리만치 장소와 기억은 한패다. 이제는 사계절도 모자라 계절 사이마다 끊임없이 새로운 계절의 모습을 간직한 전주천은 오늘 나에게 또 하나의 기억을 선물해 주었다. 우리는 함께 흐르는 존재우리는 종종 삶의 무게에 짓눌려 괴로움에 몸부림치지만, 내 곁에 누군가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 다시금 살아갈 힘을 얻곤 한다. 나에겐 함께 음악의 길을 걷는 박경재가 바로 그런 존재다. 우리는 2012년 처음 만나, 함께한 지 어느덧 7년이 다 되어 간다. 그 시간만큼이나 전주천에서의 추억 또한 많다. 2013년 첫 프로필 사진을 촬영했던 한벽루와 2015년 앨범 재킷을 위해 은밀히 찾아간 미산교, 그리고 2017년 의 배경 영상을 위해 머물던 새벽의 눈 덮인 청연루까지, 어쩌면 모던포크듀오 ‘이상한계절’의 굵직한 사건마다 전주천은 우리의 배경이 되어준 셈이다. 그런 의미에서 전주천은 나에게 계절의 변화를 알리는 기억의 장소다. 한겨울 추위가 녹을 즈음이면 고개를 늘어뜨린 능수버들이 수수한 멋으로 봄을 알리고, 여름엔 풀벌레 소리가 천변 벤치로 나를 이끈다. 가을이면 황금빛 물 억새가 물결치고, 겨울엔 추위를 감내하듯 고요히 흐른다.이렇듯 전주천이 우리에게 친숙할 수 있는 건 가깝고 깨끗한 도심생태하천이기 때문이다. 전주천은 2000년 자연형 하천조성사업을 시작하며 1급수 지표 종인 수달과 쉬리, 흰목물떼새 들이 살 만큼 깨끗한 하천을 되찾았다. 과연 버들치와 왜가리를 손쉽게 만날 수 있었고, 갓 피어난 금계국과 쥐똥나무, 노랑꽃창포가 우리를 반겨 주었다. 여러 생명들이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룬 이곳에서 우리는 화답하듯 징검다리에 앉아 발을 담갔다. 모든 강은 바다를 향해 흐른다지만, 전주천만은 그렇게 우리에게로 흐르고 있었고, ‘소살소살 흐르는 전주천’을 어렴풋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 우리의 이야기가 탄생하는 곳나에게 전주천은 음악적 산파다. 나의 노래 의 도입부 ‘별이 빛나는 밤에는…’과 중 ‘호반촌에서 하가지구 끝까지’의 배경도 전주천이고, 의 ‘하얗게 살고 싶은’ 지향점 역시 전주천이다. 그래서일까? 요즘도 여전히 그 노래를 들을 때면, 여름밤 벤치가 그립고 무수히 페달을 밟던 자전거도로와 눈 덮인 남천교가 생각난다. 바로 이런 기억들이 싱어송라이터로서 나의 삶과 음악의 원천이 되고 있다.내가 사는 이곳에서 더 아름다운 음악을 하겠다는 꿈도 결국엔 전주천과 같은 우리의 자연이 선사한 것이리라. 그런 까닭에 전주천은 늘 과묵하지만, 내 마음을 이해하는 속 깊은 친구이자 우리 삶의 스승 같다. 우리가 저마다의 이유로 흔들리며 힘을 잃고 부유할 때에도 쉼 없이 흐르는 굴곡진 전주천의 모습은 마치 곡절 가득한 인생사를 닮아 더 사람 냄새가 나는 곳이다. 전주천이 일깨우는 삶의 의미한 개인의 기억을 오롯이 담아낸 넉넉함처럼 전주천에 시민들의 수많은 기억과 역사가 담겨 있는 것은 어쩌면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 이야기들 속에 다양한 생명들을 품고 흐르는 전주천의 모습은 우리에게 위안을 주는 동시에 온 지류를 통해 우리에게 진정으로 가야 할 길을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더불어 살고 낮은 곳을 향해 살라는 진정한 삶의 가치와 방향을 제시하며, 꾸준히 하루하루를 멋지게 만들어 내라고 말이다.나의 동반자 경재와 함께 걸은 전주천은 새삼스럽게도 이제껏 느껴 보지 못한 것들을 깨닫게 해준 멋진 하루였다. 조화로운 동물과 식물들을 한데 아우르며 흐르는 전주천은 왜 이곳이 수많은 전주 시민들의 사랑을 받는 곳인지 깨닫게 해 주었다. 그냥 무작정 걷다가 서서히 마음이 평온해지고, 문득 무엇이든 깨끗하게 하는 전주천을 닮고 싶다고 느낀다면, 당신도 어느새 전주천과 함께 흐르는 존재라는 걸 깨닫게 될 것이다. 글 김은총 | 싱어송라이터김은총 씨는 모던포크듀오 ‘이상한계절’의 싱어송라이터다. 전주에서 음악을 시작했고, 음악 속에 전주에 대한 애정을 맘껏 담고 있다.
2020.09.22
#이상한계절
#전주천
#수달
#한옥마을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