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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음식
겨울을 잊은 싱싱한 초록의 맛
달콤한 향기로 익어가다하우스 안의 딸기 밭, 익어가는 딸기 향이 달콤하게 콧속으로 들어온다. 예전에 봤던 하우스 농가에서는 땅에 높은 두둑을 올리고 딸기를 재배했는데, 이곳에서는 딸기 재배상이 명치 정도의 높이에 길게 설치되어 있다. 토양을 이용하지 않고 알맞은 농도로 조절된 배합액에 작물을 심어 재배하는 양액 재배다. 양액 재배는 시설 투자 비용이 많이 들지만, 안정적인 수확을 할 수 있고 규모 확대와 연속 재배에 유리하다는 이점이 있다. 양액 촉성재배로 딸기를 키우는 노정옥(50) 씨가 설명을 덧붙인다.“이렇게 재배하면 수확량도 훨씬 많고 땅에서 올라오는 병도 피할 수 있어요. 또 수확할 때 허리를 굽히지 않아도 되니까 일하기도 훨씬 수월하구요.”11월 중순부터 6월 초순까지 날마다 딸기를 수확해야 하니 인력이 부족한 게 가장 큰 어려움이란다. 쭈그리고 수확하는 고통은 덜었더라도 매일같이 작업해야 하기 때문에 시간도 노동력도 언제나 아쉽다. 이렇게 수확한 딸기들은 공판장에 출하되거나 전주푸드직매장에 들어가 입맛을 돋우는 식탁 위의 꽃이 된다. 신선하고 건강한 전주푸드토마토와 고추, 부추, 깻잎 같은 야채들도 비닐하우스 안에서 자라는 풋풋한 작물들. 김종배(68) 씨는 큰 규모의 비닐하우스에서 여러 가지 야채들을 같이 재배하고 있다. “원래는 토마토만 했어요. 재단법인 전주푸드통합지원센터의 권유로 고추, 꽈리고추, 부추, 깻잎 같은 야채들도 같이 재배하게 되었습니다.” 수목원에라도 들어선 듯 채소들이 뿜는 향이 신선하고 청량하다. 다른 채소들을 한 공간에서 재배하는 데 따른 불편함은 없을까 물었다.“재배 조건이 달라서 신경을 더 써야 하지요. 예를 들면 토마토보다는 고추가 성장 온도가 더 높아야 해서 저녁에는 중간에 있는 비닐을 내리고 고추 쪽 온도를 높여줍니다.” 호성동에서 오이와 브로콜리를 재배하는 조현호(44) 씨 역시 두 야채 간 온도 조절에 가장 신경을 쓰고 있다. 오이는 고온성 작물이라 추위를 더 타기 때문이다. “오이는 파프리카, 토마토 등과 함께 고소득 작물로 꼽히고 있죠. 연중 재배가 가능하지만 겨울에 난방비가 더 들어간다는 게 흠입니다. 브로콜리는 한겨울과 한여름을 뺀 5월~7월, 10월~12월 사이가 수확 철입니다.” 싱싱한 초록 냄새, 하우스 안을 조금 거닐었을 뿐인데도 호흡이 맑아지고 몸이 건강해지는 느낌이다. 심호흡 몇 번에 가슴이 다 상쾌해졌다. 이 풋풋한 냄새와 아삭한 식감을 그대로 전주밥상에 가지고 가야겠다.
2020.09.09
#전주푸드
#딸기
#하우스
#토마토
#전주푸드직매장
멋진 하루
전주 기린봉
묵묵히 거기 있어 더욱 빛나는 산
시리도록 아픈 기린봉의 추억기린봉 이야기를 하자면 30여 년 전으로 올라가야 할 것 같다. 작고 아담한 시골 마을. 산으로 가로막힌 버스 종점이 있었고, 종점 뒤편에 허름한 한옥이 있었다. 그 뒤채에 자리한 2만 5천 원짜리 사글셋방이 참으로 가당찮지만 세상을 바꿔 보겠다고 여러 번 답사 끝에 얻은 안전 가옥, 나의 자취방이었다. 그곳이 바로 기린봉 아래였고, 주인집 할머니와 나와의 동거는 거의 1년을 넘겼던 것 같다.시절은 하 수상하였다. 기린봉 산 그림자에 복학생 운동권의 삶도 녹록하지 않았다. 부모님이 주신 등록금은 분실로 위장하고 선거를 준비하는 후배의 등록금으로 사용하였다. 그리고 나는 휴학을 했다. 멀리 대륙에선 이념의 한 축이 무너져 내리고 있었고, 자고 나면 대학생들의 죽음이 연일 지면을 달구던 시절이었다. 이른바 열사 정국이었다. 참으로 시리도록 아픈 기린봉 시절이었다. 그리고 1년 뒤, 나는 그곳을 떠났고, 가슴이 답답할 때 하릴없이 올라 지친 심신을 달랬던, 내 청춘이 잠시 머물렀던 기린봉은 오랜 세월 기억 저편 아득한 곳에 구겨 넣고 잊고 살았다. 이두황 단죄비를 세우다20여 년 뒤, 민족문제연구소 전북지부장을 맡으면서 기린봉과 다시 만났다. 한때 시대에 울분한 한 청춘의 호흡을 고르게 해주던 기린봉이 아닌, 다소 불편한 기린봉으로…. 기린봉 초입 양지바른 언덕에 누워 있는 친일 반민족행위자 이두황의 무덤 때문이었다.이두황은 동학 농민군 진압부대의 우선봉장으로, 명성황후 살해의 일본군 길잡이로, 정미 호남의병에 대한 ‘대토벌’ 작전의 혁혁한 공로자로 용서할 수 없는 역사의 죄인이다. 어이없게도 기린봉이 품은 성정과는 전혀 다른 인물이 기린봉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전주성을 내려다보며 죄인 이두황의 행각을 묵묵히 지켜본 기린봉인데 말이다. 기린봉은 그들에게도 몸을 의탁할 수 있는 좋은 안식처로 보였던 모양이다. 결국 이두황 사후 100년이 되던 해인 2016년에 이두황 단죄비를 기린봉 사거리에 세웠고, 구천을 중음신으로 떠돌던 농민군과 의병들의 혼백을 위로하는 진혼굿을 열었다. 그러고 나니 마음이 조금 편안해지고 비로소 기린봉이 온전히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어찌 보면 기린봉은 늘 그 자리에 있었다. 무념 무상 비로자나불의 모습으로 희로애락애오욕의 모든 인간들에게 늘 곁을 내어주었다. 샐쭉하게 토라진 가시내의 모습도, 속세의 들뜬 허영과도 애당초 인연이 없이, 없는 듯 있는 듯 조용히 미소 짓고 있었던 것이다. 진산(鎭山)이 아니면 어떻고 주산(主山)이 아니면 어떠리. 기린토월(麒麟吐月), 우백호(右白虎)의 거추장스러운 장삼도 부담스럽게 느끼며 벗어 버리고 싶은 것이 기린봉의 진면목 아니었던가. 일상의 삶조차 보듬어 주는 기린봉민족문제연구소와 전북민언련에서 같이 활동하는 정혜인 선배와 오랜만에 기린봉에 올랐다. 속살 드러내 놓고 솔향, 흙향, 풀향을 그윽하게 객들에게 풀어놓는 기린봉. 하찮은 미물조차도 함부로 내치지 않는 배려가 미덥다. 속세에 찌든 일상의 삶들에 이렇게 가까이서 이렇게 다정하게 안아주는 산이 얼마나 있을까. 정상에 오르니 자신의 몸을 지탱하며 밟고 서서 저 넓은 세상을 보라 한다. 어떠한 금기도 없이 넉넉한 품으로 세상을 껴안으며 역사를 품어 왔던 순교자의 모습이다. 전주천 물기를 머금은 동고사 풍경 소리가 바람에 실려 오고, 저 멀리 모악산에서는 미륵이 걸어 나온다. 완산칠봉 등성마다 일자진을 친 갑오년 동학 농민의 함성도 들려오고, 변복을 하고 전주성 동문을 빠져나가는 전라감사 김문현의 줄행랑도 보인다. 남부시장 아낙의 흥정 소리도, 멀리 비비정 만경강 기슭을 거슬러 오는 만선의 황포돛배도 품 안에 들어온다.우리는 가까이 있는 존재에 대한 소중함을 모르고 사는 것 같다. 기린봉이 딱 그렇다. 칭얼거리지 않고 묵묵히 거기 있음으로 더욱 빛나는 게 기린봉이다. 드러내지 않음이 드러냄이다. 마주 보면 서로 닮아 간다 했던가? 일망무제 호남평야의 넓은 들을 바라보다 스스로 넓어진 것이 기린봉이 아닌가 싶다.지짐지짐 가랑비가 내린다. 내려갈 채비를 서두른다. 맑은 가을날, 기린봉이 아중저수지의 물로 목욕하고 색색의 옷으로 꽃단장하는 날 다시 와야겠다. 글 김재호 | 민족문제연구소 전북지부장김재호 씨는 2011년부터 민족문제연구소 전북지부장을 맡아 굴절된 역사를 바로 세우고자 일제 잔재 청산에 앞장서고 있다. 사람과 역사를 위해 조그마한 힘이나마 보탬이 되고자 늘 분주히 살고 있다.
#전주성
#기린봉
#동학
#이두황단죄비
기획 특집
우리가 사랑하는 축제의 계절
세월이 피워 낸 무형유산의 꽃
전주가 만들고 세계가 주목하는전주세계무형유산대상 & 세계슬로포럼전주만의 빛깔로 숙성된 문화와 생활양식은 전주를 이루는 정체성이 되었고, 전주는 가장 한국적인 색채를 고이 간직한 무형유산의 도시로 자리 잡을 수 있었다.세계인들이 전주의 문화와 역사를 만나기 위해 9월 27일 전주에 모인다. 테러와 전쟁, 난개발로부터 무형유산을 지켜 낸 이들을 격려하기 위해 전주가 만든 시상식 ‘제1회 전주세계무형유산대상’이 전주에서 열리기 때문이다.올해 처음 열리는 세계무형유산대상에는 전 세계 36개국 48건의 신청서가 도착, 치열한 참가 경쟁이 벌어졌다. 수상 팀들은 무형유산 보호 활동 사례를 전주 시민들에게 알릴 계획이고, 국내외 시민 단체와 무형문화재・문화재단 관계자 등과 함께 ‘무형유산의 보호와 활용’을 주제로 열띤 토론을 펼칠 예정이다. 전주가 시작한 행사는 또 있다. 제3회 전주세계슬로포럼과 슬로어워드가 그것. ‘2019 국제슬로시티 어워드’에서 최고 대상인 ‘오렌지 달팽이상’을 수상한 전주시에 세계의 관심이 집중되면서 벌써부터 참가 열기가 뜨겁다.올해 전주세계슬로포럼의 주제는 ‘행복과 도시숲(가제)’으로, 도시와 자연의 어우러짐을 통한 ‘삶의 질 개선’을 논의한다. 또 국내외에서 ‘슬로시티’ 운동이 지향하는 바를 실천하는 개인·단체를 슬로어워드로 선정하고 그 의미를 되새긴다. 아울러 포럼 기간 내내 홍보·체험 부스를 운영하며 국악 공연도 펼친다니 구경거리에도 부족함이 없다. 무형문화 도시 전주에서 만나는대한민국 무형문화재대전한자리에서 무형문화의 모든 것을 맛볼 수 있는 시간이 왔다. 전시와 공연, 그리고 관객을 위한 체험까지 한꺼번에 준비한 ‘무형문화 종합선물세트’, 바로 ‘대한민국 무형문화재대전’이다.국립무형유산원 얼쑤마루에서는 각 기능 분야 장인들의 합동 공개 행사가 3일간 진행된다. 중정에서는 판소리·농악·남사당놀이를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인류무형유산 특별기획 공연 ‘조선의 기록, 미래의 기억’이 펼쳐진다. 무형문화재 명인들의 공연도 만날 수 있고, 영화 에서 멋진 곡예를 선보인 권원태 명인의 줄타기 등도 배울 수 있다. 야외공연장과 얼쑤마루 로비 등은 무형문화재를 직접 체험해 보는 공간으로 꾸며진다. 전통음식 등 다양한 체험도 한가득이다.어울마루에서는 세계무형문화유산포럼과 작은 전시회가 열린다. 무형문화유산이라는 주제로 지역과 국가를 넘어 한자리에서 머리를 맞대는 자리가 된다. 또, 누리마루에서는 국가지정 무형문화재 보유자 작품전이 열린다. 특히 짧은 행사 기간으로 아쉬워할 관객을 위해 200여 점 이상의 작품들을 특별히 10월 20일까지 공개한다고 하니, 넉넉한 마음으로 행사장에 들러 보자. 영화의 도시에서 더 특별한국제무형유산영상축제‘2019 국제무형유산영상축제’가 기대되는 이유는 ‘영화의 도시’이자 ‘무형유산의 도시’ 전주에서만 열릴 수 있는 특별한 영상 축제이기 때문이다.영상 축제에서는 전통문화와 의상, 생활상은 물론 춤과 음식에 이르기까지, 무형유산 다시 보기를 주제로 하는 영화 20편이 관객들을 찾아온다.개막작 는 이미 토론토와 뉴욕 등지에서 인정받아 영화 마니아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다. 또한 개막작은 김태용 감독의 영상에 국립국악원의 실시간 연주가 더해져, 눈과 귀가 함께 즐거운 시간이 될 것이다. 또 행사 기간 동안 ‘유튜브 영상 공모전’ 수상작과 ‘단편 애니메이션’, 고전 영화를 상영해 남녀노소 모두가 즐길 수 있다. 대미를 장식하는 폐막작으로는 안종화 감독의 가 뽑혔다. 1934년 탄생한 이 작품은 가장 오래된 한국 영화이기도 하다. 이번 무대에서는 변사, 뮤지컬 배우, 악단이 등장해 당시의 상영 방식과 분위기를 재현한다니, 선선한 가을바람과 함께 영상 축제에서 소중한 추억을 쌓아 보면 어떨까.
2020.09.08
#뮤형유산
#슬로
#문화재
#영화
당신과 더불어
일상에 초록의 꿈을 그리는 예술가
화가 한 숙
서학동 예술마을에 살아 보니 어떠신가요?2011년에 서학동 예술마을로 이사 와서 좋은 일이 많았어요. ‘초록장화’라는 이름의 공간을 열어 게스트 하우스와 초록꿈 공작소 ‘할매공방’을 운영하고 있는데요. 주민들부터 외지인까지 다양한 사람들과 소통하고 작업도 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어요. 무엇보다 좋은 건 이곳에서 처음 엄마가 됐다는 거예요. 우리 아이 이름이 도현인데 서학동에서 태어난 아이라고, 동네에서는 학동이라고 불러요. 주변에 활발하게 작업하시는 예술인들도 많고, 주민들도 따뜻한 관심을 보여주셔서 서학동 예술마을은 작업하기엔 최적의 환경이에요. 이젠 이곳을 떠날 수 없을 것 같아요. 초록꿈 공작소 ‘할매공방’을 운영하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2010년에 문화예술교육 사업 강사로 산성마을 노인정에서 처음 할머니들을 만나게 되었어요. 사업이 예상보다 일찍 끝나면서 서로 아쉬움이 많았는데 제가 서학동 예술마을로 자리를 옮기면서, 이곳 할머니들과 산성마을 할머니들이 동아리 형식으로 함께할 수 있게 됐어요. 처음엔 할머니들의 손재주를 소개하고 싶어서 사람들에게 보여 드렸는데 많은 분들이 좋아해 주시면서 판매까지 할 수 있게 됐어요. 느려도 한 땀 한 땀 해 오다 보니 벌써 10년의 세월을 보냈는데요. 앞으로도 할머니들과 그림, 바느질, 도자기, 염색, 천 작업 등 할 일이 너무 많아서 10년이 또 금방 지나갈 것 같아요. 작품 활동을 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다른 화가들처럼 사실적인 묘사나 서양화법에 능숙하진 못해요. 하지만 제 생각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은 누구보다 잘할 수 있어요. 사람이 자기 자신의 진짜 모습을 직면한다는 건 굉장히 두려운 일인데요, 그럴 때마다 마을 사람들과 공동 작업을 하면서 사람들의 행동 속에서 제 모습을 찾으려는 노력을 많이 해요. 평범한 사람들의 진실한 언어가 더 큰 울림을 줄 때가 있듯이 작품 안에서 제 진심을 담으려고 하는데요, 기교나 기술보다 앞서는 게 있다면 바로 진정성이라고 할 수 있죠. 평범한 사람들도 예술가가 될 수 있을까요?당연하죠. 예술이라는 것이 사실 특별한 게 아니에요. 표현 방법을 모르거나 조금 서툴러서 그렇지 그 방법을 배울 수 있다면 누구나 예술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저는 할머니들이 평범한 일상에서 자신이 느끼는 감정들을 발견할 수 있도록 물꼬만 터 주는 역할이에요. ‘할매공방’의 할머니들이 그린 그림을 보면 아이처럼 투박하고 서투르지만 순수한 멋이 있는데요, 이것이 바로 진정한 예술이 아닐까 생각해요. 자신을 표현하면서 행복을 느끼고 있으니까요. 앞으로 어떤 작업들을 하고 싶으신가요?유년의 기억을 다룬 첫 전시부터 우리 외할머니가 살아오셨던 아픈 역사를 담은 개인전까지, 지금까지 꾸준히 살아 있는 제 이야기를 작품으로 만들어 전시회를 열었던 것 같아요. 앞으로도 제 안에 있는 진솔한 감정들을 솔직하게 표현할 수 있는 작업들을 하고 싶고,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들과 협업을 꼭 해 보고 싶어요. 그리고 작품 활동 말고 마지막으로 해 보고 싶은 것이 꼭 있는데, 나중에 우리 학동이와 함께 초록의 정원을 멋지게 가꾸고 싶은 게 꿈이에요. 화가 한 숙 전북대 미술학과 졸업 후 첫 개인전으로 전북예술회관에서 을 열었다. 2010년 문화예술교육 사업을 시작으로 10년 넘게 초록꿈 공작소 ‘할매공방’을 운영하고 있다. 할매공방주소│전주시 완산구 서학3길 64-17문의│010-2620-6784
#초록장화
#서학동
#예술마을
#할매공방
전주의 꽃심
“꼭두는 단순한 인형이 아닌 시대를 담은 문화유산입니다”
소빈 닥종이 인형 작가가 소개하는 상여 조각상 ‘꼭두’
먼 길 떠나는 망자의 길동무, 꼭두그렇게 처음 접하게 된 꼭두는 왠지 낯설지가 않았습니다. 지금은 거의 찾아볼 수 없지만, 제가 어릴 때만 해도 시골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상여로 장지까지 모시는 일이 흔했어요. 동네 사람들이 화려하게 장식한 꽃상여에 망자를 태우고 ‘이제 가면 언제 오나’로 시작되는 상여 매김 노래를 하며 걷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심지어 대여섯 살 때 6~7㎞ 떨어진 장지까지 상여를 타고 간 적도 있습니다. 어린 시절 할머니, 아버지, 그리고 가까운 이들의 죽음을 지켜보면서 죽음에 대해 보다 빨리 깨닫게 됐던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 상여에 장식하는 꼭두도 두렵다기보다 오히려 친근하게 다가왔던 거죠. 꼭두는 그 종류가 다양한데 보통 시종과 광대처럼 사람의 형상과 용과 봉황, 호랑이 같은 동물의 형상으로 나뉩니다. 그리고 이 꼭두는 각각 주어진 역할이 있어요. 길을 안내하는 안내 꼭두, 망자를 나쁜 기운에서 지켜 주는 호위 꼭두, 흥을 돋우고 즐겁게 해 주는 광대 꼭두가 그것입니다. 각자 맡은 역할은 다르지만 모두 이승을 떠나 저승으로 가는 망자의 길동무입니다. 보내는 사람에게는 떠나는 사람을 잘 모시고 갈 거라는 위로를 건네는 존재이기도 하고요. 먼 길 떠나는 망자의 길동무, 꼭두그렇게 처음 접하게 된 꼭두는 왠지 낯설지가 않았습니다. 지금은 거의 찾아볼 수 없지만, 제가 어릴 때만 해도 시골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상여로 장지까지 모시는 일이 흔했어요. 동네 사람들이 화려하게 장식한 꽃상여에 망자를 태우고 ‘이제 가면 언제 오나’로 시작되는 상여 매김 노래를 하며 걷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심지어 대여섯 살 때 6~7㎞ 떨어진 장지까지 상여를 타고 간 적도 있습니다. 어린 시절 할머니, 아버지, 그리고 가까운 이들의 죽음을 지켜보면서 죽음에 대해 보다 빨리 깨닫게 됐던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 상여에 장식하는 꼭두도 두렵다기보다 오히려 친근하게 다가왔던 거죠. 꼭두는 그 종류가 다양한데 보통 시종과 광대처럼 사람의 형상과 용과 봉황, 호랑이 같은 동물의 형상으로 나뉩니다. 그리고 이 꼭두는 각각 주어진 역할이 있어요. 길을 안내하는 안내 꼭두, 망자를 나쁜 기운에서 지켜 주는 호위 꼭두, 흥을 돋우고 즐겁게 해 주는 광대 꼭두가 그것입니다. 각자 맡은 역할은 다르지만 모두 이승을 떠나 저승으로 가는 망자의 길동무입니다. 보내는 사람에게는 떠나는 사람을 잘 모시고 갈 거라는 위로를 건네는 존재이기도 하고요. 꼭두 전시 공간 마련, 이루고 싶은 한 가지 꿈‘꼭두’에 대한 연구는 자연스럽게 꼭두 수집으로 이어졌습니다. 꼭두를 모으기 위해 서울, 대구 등 각지의 골동품 가게를 무작정 찾아갔어요. 그렇게 발품을 팔아서 한두 개씩 구매하기 시작했습니다. 열심히 발품을 팔아 돌아다니다 보니 골동품 가게에서 먼저 연락이 오더군요. 좋은 꼭두가 있는데 구매할 생각이 있느냐면서 말이죠. 그렇게 해서 지금까지 모은 꼭두가 총 150여 점 정도 됩니다. 전주시에 기탁한 아홉 점의 꼭두는 이 150여 점의 꼭두 중에서 가장 의미 있는 작품들입니다. 승려, 광대, 상인 등 다양한 형상을 하고 있는데, 그중에서도 특히 얼굴만 있는 꼭두는 상여 매김을 하는 사람이 들던 꼭두인데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꼭두예요. 꼭두의 차림새를 통해 시대에 따라 달라진 의복 문화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꼭두는 단순히 조각품이 아니라, 시대를 담고 있는 소중한 우리 문화유산입니다. 꼭두를 어느 정도 모은 후부터 꼭두를 전시하고, 다양한 체험도 할 수 있는 꼭두 전시 공간을 마련하고 싶다고 꿈꿔 왔어요. 꼭두를 통해 사람들이 삶과 죽음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길 바라는 마음에서 비롯된, 꼭 이루고 싶은 꿈입니다. 그러던 중 전주시에서 기록물수집공모전을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바로 이거다 싶었지요. 가장 한국적인 도시 전주에서 열리는 공모전에서 한국적인 존재 꼭두를 소개한다는 생각만으로도 기분 좋은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꼭두를 알리기에 더없이 좋은 기회였으니까요. 전주시에 꼭두 기탁을 계기로, 제 바람처럼 더 많은 사람들이 꼭두를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나아가 관심을 갖게 된다면 더 바랄 게 없을 것 같습니다. 소빈(50) 작가는 남원 출신으로 원광대 조형미술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했으며, 2004년 대한민국 한지대전에서 대상을 수상한 바 있다. 국내외를 넘나들며 닥종이 인형 작가로 활동 중이며, 현재 그동안의 작품을 총망라한 ‘소빈의 삶’ 전시회를 준비하고 있다.
#조각상
#꼭두
#닥종이인형
인후동 도당산
아침 숲에서 누리는 하루의 사치
여름 끝자락에서 만난 아담한 산, 도당산좋은 건 함께하라고 배웠다. 그래서 생각난 사람이 열세 살 연하 친구, 김도은이다. 무더위에 지쳐 있을 그녀와 나에게 숲의 시원함을 선물하고 싶었다. 전주에 자리한 수많은 산들 중에서 인후동에 자리한 도당산을 선택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승암산과 기린봉에서 이어져 온 산줄기가 만들어 낸 도당산. 흔히 안골뒷산이라고 불리는 산으로, 길고 긴 여름에는 무성한 나뭇잎이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주는 산이다. 도심 가운데 잔잔하게 펼쳐진 줄기 또한 완만해 힘들이지 않고 걷기에 무리가 없다. 그래서 주민들에게는 언제든지 가볍게 동네 마실 나가듯, 소풍 가듯 가볍게 사부작사부작 걸을 수 있는 동네 산책길이다.신록으로 빠져들 듯 우리는 도당산으로 걸음을 옮겼다. 숲에 들어서자 줄기차게 쫓아오던 햇살은 자취를 감추고, 짙푸른 나무그늘 아래 제 몸을 식힌 선선한 바람은 재빠르게 땀을 거둬 간다. 한결 개운해진 마음으로 우리는 숲 사이사이 흐르는 바람처럼 가볍게 길을 이어 간다. 푸른 잎과 향기로운 풀이 봄꽃보다 낫다는 옛말을 실감할 수 있을 만큼, 숲속 가득 찬 신록은 싱그러움을 뽐낸다. 발뒤꿈치까지 뒤쫓아 온 더위도 돌려세울 정도다. 이야기를 품은 노루명당신록의 아름다움에 감탄하며 순한 능선길을 오르다 보면 ‘노루명당’이라는 비석에 다가선다. 한번 들으면 좀처럼 잊히지 않을 것 같은 이름 ‘노루명당’. 이곳에는 통천 김씨와 얽힌 옛 일화가 전해진다. 통천 김씨가 포수에 쫓기던 노루를 구해 줬는데, 노루가 보은의 의미로 명당자리를 알려 주었다는 것이다. 훗날 부모님이 돌아가시자 통천 김씨는 노루가 일러 준 명당에 묘를 쓰는데, 그날 이후 자손들이 번창하는 건 물론 가문에서 많은 공신들이 나왔다고 전한다. 그때부터 불린 이름이 바로 ‘노루명당’이다. ‘믿거나 말거나’일까? 의문이 드는 순간 통천 김씨의 묘소에 발길이 닿는다. 노루까지는 몰라도 이곳이 명당인 것만은 분명한 사실임을 확신하게 되는 순간이다. 명당 터에서는 자고로 기도가 필수. 우리는 소중한 모든 이들의 삶에 선물처럼 행운이 찾아들기를, 간절하게 기도했다. 꽃길 사이에서 만난 작은 절, 약수암도당산에는 이맘때 즐길 수 있는 꽃들이 많다. 푸르른 길목 사이로 알록달록 수를 놓으니, 제아무리 꽃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도 절로 허리가 굽혀질 수밖에 없다. 지금은 맥문동이 절정. 보랏빛 꽃물결을 보고 있으니, 마치 화려한 잔칫날에 초대받은 기분이 들 정도다. 꽃의 향연은 산책길의 끝자락, 약수암으로 이어진다.약수암은 1985년 이순남 비구니가 창건한 곳으로, 약수터 위에 미륵불을 봉안하고, 법당을 세운 절이다. 여기서부터 그늘은 사라지고, 여름 따가운 볕을 온몸으로 받아 내야 한다. 당장이라도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들지만, 우리는 쉬이 걸음을 옮기지 못했다. 푸른 수국과 붉은빛 배롱나무 꽃이 걸음을 붙든 탓이다. 이미 아름다운 한철을 다 보낸 후였지만 꽃들은 아름다운 제 빛을 잃지 않았다. 절정에 달한 황홀한 풍경을 보지 못해 아쉽지만, 함께 있어 즐거운 사람, 도은과 함께 그토록 푸르고, 그토록 시원한 숲을 누렸으니 더 부릴 욕심은 없다.여유를 되찾은 숲에서는 미처 생각지 못했던 것들이 마음에 들어온다. 잘 닦인 아스팔트 길보다 걷는 재미가 있는 울퉁불퉁한 숲길, 멋들어진 의자보다 맘 놓고 앉을 수 있는 너른 바위, 손에서 떼지 못하는 스마트폰보다 작은 풀 한 포기가 더 좋다는 것을. 그러니 떠나 보자. 놓치고 온 것들을 다시 찾아줄 아침 숲, 도당산으로 말이다. 글 표효진 | 방송작가2002년부터 JTV전주방송에서 방송작가로 일하고 있다. 와 의 메인 작가로 일하며, 매주 토요일 시청자들과 만나고 있다.
#도당산
#노루명당
#약수암
코로나19 함께 이겨내요!
경험해 보지 못한 위기, 전례 없는 지원으로 넘는다
민생·경제를 살리기 위한 ‘착한 운동’ 전개먼저 민생·경제를 위한 3대 운동을 전개한다. 경제 위기로 인해 큰 타격을 입고 있는 소상공인을 위해 고정·변동비용 절감을 위한 ‘착한 운동’을 시작한다. 공공 부문에서는 임대료, 사용료, 관리비 감면 등을 추진한다. 이를 위해 전주시와 전북신용보증재단이 협약을 맺고 임차료, 인건비, 점포관리비 등을 무이자·무담보 특례로 지원한다. 이를 위해 전주시가 10억 원을 출연하고 전북신보에서 출자액의 10배인 100억 원까지 지원하게 된다. 또, 소상공인 카드수수료 지원 대상을 연 매출 3억 원 이하로 대폭 확대하고, 2018년도 카드매출액의 0.8%를 사업장별 최대 50만 원까지 지원한다. 매출 급락에 처한 소상공인들의 경영비용 중 전기요금, 도시가스 등 공공요금 비용 부담 완화를 위한 지원책도 마련했다. 연 매출 2억 원 이하 소상공인에 대해 20만 원씩 3개월간 총 60만 원을 지급한다. 또 일시적인 경영난으로 고용 조정 위기에 처한 사업주의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사업자 부담분 사회보험료(사업자 부담 비용 중 1인당 월 10만 원 한도 내에서 10개월, 총 92억 원)를 지원하고, 소상공인을 위해 특례보증으로 최대 4천만 원까지 지원한다. 대상은 전주시 소재 업력 3개월 이상 소상공인이며, 보증 대출 기한은 5년이다. 또 징검다리 전환 보증(이차보전)도 실시한다. 고금리 대출상품에서 저금리 상품으로 대출 전환 시 이자 차액분을 지원한다. ‘선지급 후보강’으로 우선 지급한다시는 민생과 경제를 살리기 위해 7대 분야 40개 사업을 지속적으로 추진하는 한편, 사각지대도 꼼꼼하게 챙기고 있다. 주민자치센터나 체육시설 강사들이 폐강이나 휴강으로 인해 수당을 받지 못해 생계가 어려움을 감안, ‘선지급 후보강’ 원칙을 세우고 우선 지급하기로 했다. 또한, 코로나19 대응 문화예술인 지원사업으로 전라북도 예술인복지증진센터와 연계하여 창작준비금 지원사업(창작디딤돌), 생활 안정자금 특별 융자를 실시하며, 결혼자금, 학자금, 의료비, 부모 요양비, 장례비, 긴급생활자금에 대한 소액대출(최저 50만 원∼최고 500만 원 이내, 연 금리 2.2%)도 시행한다. 코로나19로 중단된 공공일자리 사업에 대해 인건비를 우선 지급하고 코로나19 사태가 안정된 후 보강 근무를 시행할 계획이다.아울러 관광·숙박업 등 코로나19 직격탄을 맞은 업종에 대해서는 긴급 추경을 편성하여 마케팅, 관광객 유치 인센티브를 제공하며, 관광음식점 시설 개선사업비로 관광업체당 2∼4백만 원까지 차등 지원한다. 공동세일로 위기를 넘는다아울러 전주시는 지역 소상공인, 유통업체, 전통시장 등이 참여하는 ‘공동세일운동’을 개최할 계획이며, 지역 상품 팔아 주기 ‘범시민 소비촉진운동’도 전개할 예정이다. 또한, 농산물도매시장과 전주시 출연기관 입주업체들에 대해 관리비를 감면하는 등 시 공유재산 임대료 및 관리비를 50% 감면해 주고 있다. 국세 감면·징수 유예, 지방세 징수 유예도 실시한다. 동물원 주차장과 한옥마을 노상주차장은 시간 제한 없이 무료 개방, 나머지 18개소의 공영주차장은 2시간 무료 개방하며, 공무원 복지포인트를 상반기 내 전액 집행하는 등 전례가 없더라도 현 상황에서 할 수 있는 모든 대책을 추진한다는 방침이다.아울러 전주시와 유관·공공기관에서는 구내식당 휴무제 등을 통해 지역 식당을 이용하고 있다. 특히, 확진자가 다녀간 것으로 조사돼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음식점을 방문하고, 확진자 이동 경로에 포함된 치킨집 등에서 배달 주문을 하는 등 ‘착한 소비 운동’을 하고 있다. 졸업식과 입학식이 줄줄이 취소되면서 큰 타격을 입은 화훼 농가를 돕기 위한 ‘꽃 사주기 운동’과 ‘테이블 한 개에 꽃 한 송이(1 table, 1 flower) 운동’도 눈길을 끈다. 이 밖에도 전주공예품전시관과 공방에서 만든 수공예품을 구입하는 ‘1인 1 수공예품 갖기’ 운동, 전주푸드 직매장 소비 확산을 통해 지역 농가를 돕고 건강한 먹거리로 가정의 밥상을 채우는 ‘매월 마지막 주 금요일 전주푸드 소비의 날 행사’, 소비시장 위축으로 매출 하락 등의 피해를 입은 딸기 농가에 대해서는 딸기 팔아주기 행사 등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석이조 소비운동을 펼쳐나가고 있다.이렇듯 전주는 가장 전주다운 방법으로 코로나19를 이겨내는 중이다. 실의에 빠진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들을 찾아가 위로와 지지를 건네며 힘을 불어넣어 준다면, 머지않아 위기 상황을 이겨내고 활기찬 일상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민생안정
#착한운동
#공동세일
전주 밖 전북
전주에서 순창까지
밥상 위에 꽃이 피었다
전주 구도심에서 만난 명인의 비빔밥 봄이 이리 멀었던가. 답답하고 숨 막히는 날들이었다. 바람이 구름을 밀어내자 쪽마루에 볕이 들었다. 걸터앉아 마당을 내려다보니 햇살이 닿은 곳마다 어린 연두가 수줍게 고개를 내민다. 상을 들고 마루로 나와도 좋은 날이었다. 밥상에 꽃이 피었다. 비빔밥의 고장답게 전주한옥마을과 구도심에는 한국집, 가족회관, 성미당, 고궁, 갑기회관, 한국관 등 비빔밥 전문식당이 성업 중이다. 그중 한 곳, 소담한 정원을 품은 고풍스러운 한옥에 들어섰다. 전주비빔밥은 눈으로 먹는 음식이다. ‘온갖 꽃이 불타오르듯이 찬란하게 핀다’라고 해서 백화요란(百花燎亂), 화반(花飯)이라고도 부른 까닭이 여기에 있다. 봄꽃 나들이를 미룰 수밖에 없는 서운한 마음을 충분히 달래고도 남는다. 밥알이 기지개를 켜는 ‘소소소소’ 작은 파열음이 귀를 두드린다. 이내 밥이 눋는 구수한 내음이 스르르 올라온다. 알려진 대로 돌솥밥이 처음 상업화된 곳이 전주다. 뜨거운 온도는 재료의 맛 성분을 변화시킨다. 천천히 뒤적이면 반조리 상태의 비빔밥은 비로소 맛을 완성해 간다. 입으로 들어가는 순간까지 음식 맛을 더 돋보이게 하는 조리법은 전주 여인의 솜씨였다. 전주비빔밥에 두드러지는 개성이 있다면 그건 바로 황포묵이다. 녹두를 갈아 치우자 물을 들인 황포묵은 완성도를 논하기에 여간 까다로운 음식이 아니다. 색은 투명한 듯 불투명해야 하고 질감은 두툼한 듯 가벼워야 한다. 이를 대면 경쾌한 저항감이 느껴져야 한다. 별다른 오미(五味) 없이 그 맛은 담담하다. 황포묵은 시각과 촉각으로 즐기는 음식이다. 고유한 전통을 바탕으로 창의적인 솜씨를 입혀 새로운 시그니처를 만들어 낸 전주비빔밥. 전주가 왜 대한민국 최초이자 세계 네 번째로 유네스코 음식창의도시에 선정되었는지 전주비빔밥이 명쾌하게 증명한다. 미각을 넘어 시각, 촉각, 청각을 두루 넘나드는 미식의 경지가 이미 전주비빔밥에 있었다. 전주전통술박물관에서 맛보는 봄의 술손님 대접할 일이 많은 반가에서는 가문 대대로 내려오는 특별한 주방문(酒方文)이 있었다. 그중 대표적인 술이 조선 3대 명주 중 하나로 일컬어지는 ‘이강주’다. 이강주는 전통 소주의 하나다. 막걸리를 빚어 내린 소주에 이 지역 특산품이었던 배, 생강, 울금, 계피, 꿀 등을 넣어 1년 이상 숙성시켜 거르면 독특한 향취와 청량감을 지닌 깨끗한 술이 된다. 이강주는 봄에 마시는 술이다. 의 기록이 그렇다. 술꾼들은 ‘여름밤 초승달 같은 술’이라고도 표현한다. 한 모금 머금으면 알싸한 듯 화한 기운이다. 고종 때는 한미통상조약 체결 당시 건배주로 쓰일 만큼 국가 대표 술이었다. 식품명인 조정형 씨가 가문의 술을 상품화해 지금은 전주전통술박물관을 비롯한 여러 곳에서 만날 수 있다. 전주전통술박물관에서는 이강주뿐 아니라 죽력고, 진도홍주 등 각 지역에 전승되어 오는 향토 명주를 만날 수 있다. 상시 술 빚기와 시음 행사도 이뤄진다. 슬로시티 전주한옥마을을 제대로 음미할 수 있는 곳이다. 장이 익어 가는 마을, 순창전주에서 한 시간 남짓 차를 달리면 대한민국 제1호 장류산업특구로 지정된 순창전통고추장민속마을에 다다른다. 마을이 조성된 것은 공식적으로 1997년이지만 순창 고추장이 전국적으로 명성을 얻게 된 것은 88고속도로 개통 덕분이었다. 태조 이성계도 반했다는 순창 고추장은 그렇게 현대 역사 속에 급부상하게 된다. 순창군은 곳곳에 흩어져 있던 고추장 제조 명인들을 아미산 자락에 모아 순창전통고추장민속마을을 형성했다. 낮은 담과 열린 대문 안으로 들여다보이는 마당에는 항아리가 가득하고 처마에는 메주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마을 전체가 고추장 판매장이자 관광지인 셈이다. 마음 닿는 대로 발길 가는 대로 들어가 고추장 단지를 구경해도 나무라는 이 하나 없다. 항아리마다 고추장을 담근 날짜가 표시돼 있다. 해가 묵을수록 고추장 색은 짙어지고 감칠맛은 깊어진다. 순창 고추장은 여느 지역과 달리 늦여름에 메주를 띄워 겨울에 담근다. 겨울 고추장은 서서히 숙성되며 단맛이 깊어진다. 고추장이 흔전만전이라 장아찌 맛 또한 일품이다.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는 세계 음식문화는 제1의 맛인 소금, 제2의 맛인 양념에 이어 앞으로는 제3의 맛인 발효의 시대로 옮겨갈 것이라고 예언했다. 그도 이 고추장 맛을 본 것일까. 소스로써 고추장의 가능성을 엿보게 하는 것이 발효소스토굴이다. 순창전통고추장민속마을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길이 134m의 대형 저장고다. 국내 대표 식품기업과 순창 명인들의 고추장이 저장돼 있는가 하면 장(醬) 역사 전시관, 세계 소스 전시관 등을 조성해 놓았다. 전통 장류의 소스화를 입체적으로 보여줄 미디어 영상관은 8월 완공 예정이다. 글 김성숙│방송작가전주에서 25년째 방송 글을 쓰고 있다. , , 등 음식 프로그램과 다큐멘터리 영화 를 비롯한 다수의 다큐멘터리를 집필했다.
2020.09.07
#비빔밥
#이강주
#순창
#고추장
전주밥상
여행자의 지친 밤, 심야식당이 위로해
날씬한 야식을 부탁해 국시코기‘국시코기’는 식당 이름처럼 들깨 육수로 말아낸 국수 위에 돼지고기 수육을 올린 고기 국수를 맛볼 수 있는 곳이다. 가장 기본 메뉴인 멸치국수부터 명이나물을 곁들인 삶은 고기, 알싸한 목포 홍어 맛을 즐길 수 있는 홍어삼합까지 다양한 메뉴가 눈에 띈다. 특히 감자를 얇게 채 썰어 바삭하게 크게 한 장 부쳐 내는 감자전은 꼭 맛봐야 할 메뉴 중 하나다. 여러 메뉴를 다 먹을 수 없어 고민이라면 국시정찬을 시키면 된다. 국시와 삶은 고기 1인분을 동시에 즐길 수 있다. 주소 l 전주시 완산구 동문길 75전화 l 063-284-9335 심야택시의 든든한 힘, 정통우동전주에서 야식집을 꼽으라면 ‘정통우동’은 언제나 1순위였다. 20년 전 문을 연 ‘정통우동’은 특히 택시기사들이 엄지 척을 외치는 맛집이다. 이름에서 느껴지듯 이곳의 대표 메뉴는 우동. 칼칼하면서 시원한 국물이 바닥을 보게 만든다. 오동통한 우동 면보다 얇은 칼국수 굵기의 면은 매장에서 직접 뽑는 이곳만의 특별한 면이다. 메뉴는 우동을 비롯해 짜장면과 김밥, 모밀이 전부지만 맛은 알차다. 김밥은 집에서 만든 것처럼 속이 꽉 차 있어 출출할 때 먹기 좋다. 담백한 맛이 일품인 짜장면은 옛날식 짜장으로 큼지막하게 들어간 감자가 인상적이다. 주소 l 전주시 완산구 기린대로 161-18전화 l 063-286-5564 빵야~ 밤도깨비 취향저격 짬뽕지존 오늘밤 야식은 짬뽕 흉내 낸 라면 대신 진짜 짬뽕이 어떨까? ‘짬뽕지존’은 24시간 중화요리를 맛볼 수 있는 곳이다. 이곳의 대표 메뉴는 고기와 해산물로 끓인 ‘지존짬뽕’으로, 주문과 동시에 조리해 맛이 더 신선하다. 1단계부터 4단계까지 맵기 조절도 가능한데, 이름부터 재미있는 ‘지옥짬뽕’은 매운 맛의 최고 레벨. 자신 있는 사람이라면 도전해봄 직하다. 짬뽕 전문점답게 순두부짬뽕부터 쌀국수 짬뽕, 수제비짬뽕까지 다양한 짬뽕을 즐길 수 있다. 주소 l 전주시 덕진구 기린대로 499 1층 연탄불의 낭만, 진안흑돼지연탄생구이먹음직스러운 고기가 생각난다면 ‘진안흑돼지연탄생구이’가 제격이다. 날개 달린 드럼통 테이블에 연탄불을 쓰는 이곳은 옛날 대폿집을 연상시킬 만큼 편안한 분위기를 안겨 주는 것이 장점. 연탄불에 구워 먹는 생삼겹살도 인기지만 전주에서 짜글이를 가장 먼저 유행시킨 원조 집답게 짜글이가 대표 메뉴다. 남원시 인월면에서 공수해 온 흑돼지목살을 직접 담근 고추장 양념에 자박자박하게 끓여 내는데, 처음엔 반드시 고기만 먹어볼 것. 지방은 살살 녹고, 고기 맛은 담백해 씹을수록 입에 착착 붙는다. 남은 짜글이 양념엔 밥을 볶아 먹는 것이 필수. 주소 l 전주시 덕진구 정언신로 173-1전화 l 063-244-5565 달밤의 푸짐한 만찬, 취향회관새벽에 만찬을 즐기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취향회관’에서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심야에도 한 상 가득 차려지는 한식을 맛볼 수 있기 때문. ‘취향회관’에서 꼭 맛봐야 할 취향정식은 돼지고기불고기와 계란찜, 된장찌개를 한 상 차림으로 낸다. 국내산 고춧가루로 칼칼하게 맛을 낸 불고기와 바지락을 넣어 시원하게 끓여낸 된장 찌개는 기대감을 충분히 만족시킨다. 포근포근한 계란찜과 무와 함께 푹 조려낸 고등어조림, 매일 달라지는 밑반찬들도 밥맛을 돋우는 데 손색없다. 불고기를 다 먹은 뒤엔 밥을 비벼 먹어 보자. 숟가락을 놓을 수 없을 만큼 맛깔나다.주소 l 전주시 덕진구 덕진연못 3길 7문의 l 063-277-1985 출출한 밤엔 일본 가정식, 백수의 찬미닫이를 열고 들어서면 독특한 가요가 귀를 먼저 사로잡고, 복고풍 인테리어가 여행자를 맞는다. 남부시장 청년몰에서 일본식 가정 요리를 파는 ‘백수의 찬’은 마치 1920년대 경성 어느 작은 골목의 선술집 같은 분위기다. 일본식 돈가츠와 새우튀김덮밥, 야끼소바 등 고정 메뉴도 있지만, 이곳의 장점은 계절 메뉴를 선보이는 것. 두부, 버섯, 소고기, 양배추를 함께 끓여 낸 백수키야키와 바지락을 정종에 찐 바지락술찜은 겨울에만 즐길 수 있다. 특히 바지락술찜은 바지락의 진한 풍미와 짭짤한 맛의 조합이 환상적. 아카시아 꽃술과 곁들이면 더없이 좋다. 목요일마다 재료를 달리하는 목요카레도 놓쳐선 안 될 메뉴다. 주소 l 전주시 완산구 풍남문 2길 53 2층문의 l 인스타그램 (@bunaround)전화 l 063-253-5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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