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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과 더불어
행복을 빚고 꿈을 붙이다
닥종이인형 작가 박금숙
닥종이인형을 배우려고 하루 10시간씩 버스를 타고 다니셨다고요? 대구에 사는 최옥자 선생님께 닥종이인형을 배웠는데 익산에서 대구까지 버스 세 번, 택시 한 번을 갈아타고 공방을 다녔습니다. 끝나고 올 때는 막차로 또 5시간을 타고 왔었죠. 그때 딸이 유치원에 다녔는데 아침에 머리를 못 묶어 주니까 아이가 자기 전에 머리를 묶어 주고 다음 날 대구에 갔습니다. 친정어머니가 뭔 큰돈을 벌겠다고 어린애 두고 돌아다니냐며 꾸중을 많이 하셨어요. 인형 하나 완성하는 데 4개월이 소요된다고 하는데, 어떤 과정들이 있는 건가요? 닥종이인형은 닥나무 껍질에서 나온 닥종이를 재료로 만든 인형입니다. 겉에서 안으로 깎아 가면서 만드는 조각과 다르게, 닥종이인형은 닥종이로 뼈대를 만들어서 붙이고 말리기를 무한 반복합니다. 그래서 작품 하나가 완성되기까지 4개월이라는 시간이 걸립니다. 과정이 힘들고 지루하다 생각하겠지만 완성된 작품들을 보면 공들인 시간만큼 보람도 큽니다. 최근에는 3D프린팅을 이용해서 닥종이인형을 만드신다면서요?지난 27년간 닥종이인형을 만들면서 시간과 비용에 대한 고민을 끊임없이 해 왔는데요, 그걸 해결하기 위해 3D프린터를 도입했습니다. 디자인만 입력하면 프린터를 통해서 옥수수 전분 소재로 된 인형의 뼈대가 나오는 거죠. 이 뼈대에 닥종이를 덧씌워서 작업하면 소요되는 시간과 비용을 80%가량 절감할 수 있어요. 4개월 걸리던 작업을 30분 만에 할 수 있는 겁니다. 닥종이인형을 알리기 위해서라면 국내외 어디라도 달려가신다는데, 최근 그리스에도 다녀오셨죠? 6월 5일 그리스 레팀노에서 열린 ‘페이퍼 문(Paper Moon)’ 전시회와 ‘2018 그리스크레타한지페스티벌’에 참가하고 왔습니다. 크레타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세계적인 종이 작가들과 함께했는데요, 한지패션쇼와 닥종이인형 체험, 한지 버스킹을 통해 그리스에 전주한지와 닥종이인형의 매력을 알리는 뜻깊은 자리가 됐습니다. 한지에 대한 세계인들의 반응이 뜨거웠고, 닥종이인형의 새로운 가능성도 확인할 수 있어서 뿌듯한 행사였습니다. 매년 어린이재단에 기부도 하시고 아이들 교육에도 관심이 많다고 들었습니다. 대학에서 유아교육을 전공했고 닥종이인형도 태교를 위해서 배웠는데 언제부턴가 제 삶에 아이들이 빠지지 않더라고요. 그러다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을 만나서 3년 전부터 전시회와 판매 수익금의 일부를 기부하게 됐는데요 새로운 구상까지 하게 됐습니다. 바로 ‘한지인형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일인데요, TV나 게임에 의존하는 아이들이 한지인형 애니메이션을 통해 정서적인 안정을 찾았으면 좋겠고, ‘한지학교’를 만들어서 자연스럽게 우리 한지에 대한 관심을 갖게 하고 싶습니다. 미국의 바비인형이 백 년의 역사를 자랑하듯 제가 만든 닥종이인형도 아이들이 많은 것들을 꿈꿀 수 있게 해 주고, 전 세계 아이들이 가지고 놀고 싶어 하는 인형이 되도록 열심히 만들 겁니다. ㈜박금숙닥종이인형연구소전주에서 태어난 박금숙(51) 작가는 결혼 후 태교를 위해 한지공예에 관심을 갖게 됐고, 이후 종이접기를 시작으로 올해로 27년째 인형 작가로 외길을 걸으며 닥종이인형의 세계화를 위해 발로 뛰고 있다. 그녀가 운영하고 있는 ‘박금숙닥종이인형연구소’는 작은 한지인형박물관을 연상케 한다. 365일 언제라도 공방에 방문하면 닥종이인형 체험, 한지공예 체험, 3D프린팅 한지인형 체험에 함께할 수 있다. 주소 | 전주시 완산구 태조로 12-7문의 | 063-232-3050
2020.12.09
#한지
#닥종이인형
#3D프린팅
기획 특집
여름은 책이다-책과 공간
마음만 있다면 어디든 도서관
자연과 호흡하며 독서삼매경, 건지산 숲속작은도서관전북대 캠퍼스 둘레 길로 들어서서 숲길을 조금 걷다 보면 전주 유일의 숲속도서관 ‘건지산 숲속작은도서관’을 만날 수 있다. 2천여 권의 책들이 빼곡히 자리를 차지한 이곳에서는 딱딱한 도심 속 도서관과 달리 산책 후 잠시 들러 마음의 안정을 취할 수 있고, 통유리를 통해 사계절의 변화를 느끼며 독서를 즐길 수 있으니 몸과 마음이 저절로 치유가 된다. 책은 물론 사람과 자연을 함께 느낄 수 있는 곳, 올여름 피톤치드 가득한 숲에서 책 한 권 읽어 보기를 권해 본다. 위치│전주시 덕진구 인후동 2가 산 2-132 이용시간│9:00~18:00(주말 9:00~17:00) 연락처│063-714-2812영화와 카페가 어우러진 시네마천국, 전주영화도서관영화인들의 자발적인 기부로 만들어진 국내 최초의 영화도서관이다. 1895년에 제작된 세계 최초의 영화를 비롯해 영상자료, 전문서적, 영화 관련 잡지 등을 보유하고 있다. 위치│전주시 완산구 전주객사 2길 28-27, 전주영화호텔 2층 이용시간│9:00~18:00(토·일요일 9:00~20:00) 연락처│063-230-5000시민을 위한 열린 공간, 전주시청 전주책방시청은 딱딱한 민원 업무만 보는 곳이라는 편견은 버려도 좋다. 시청사 로비 2층에 자리한 전주책방은 시민을 위한 휴식 공간이자 독서 공간이다. ‘전주의 모든 것’이란 주제로 전주에 관한 책을 비롯해 어린이 그림책, 인기 도서, 신간 도서 등 1,500여 권이 비치되어 있다. 1층에는 중증장애인들이 바리스타로 일하는 ‘꿈앤카페’가있으니, 착한 가격의 커피 또는 시원한 수제청 음료와 함께 시청에서 놀아 보자. 위치│전주시 완산구 노송광장로 10, 전주시청 로비 이용시간│9:00~18:00(토·일요일 휴관) 연락처│063-281-2889고즈넉한 독서 공간, 국립무형유산원 ‘라키비움 책마루’도서관, 기록관, 박물관의 기능이 하나로 통합된 ‘라키비움 책마루’는 자료실로 사용하던 공간에 공공 도서관의 기능을 더한 곳이다. 무형문화재에 관한 도서가 주를 이루지만, 한편에 문학과 어린이 도서, 소모임 공간도 마련되어 있다. 모양과 크기가 제각각인 책상과 의자가 곳곳에 놓여 있는 데다, 유리벽 너머로 시원한 풍경이 펼쳐져 혼자만의 독서 삼매경에 빠지기에 그만이다. 무형문화재 기증품과 전승공예대전 수상자들의 작품도 진열되어 있어 전통의 향기도 물씬 느낄 수 있다.위치│전주시 완산구 서학로 95 국립무형유산원 이용시간│10:00~18:00(일요일 휴관) 연락처│063-280-1400민원도 보고 책도 본다, 전북도청도서관전북 도민이면 누구나 이용 가능한 전북도청도서관은 신문, 잡지, 신간 도서 등 6만여 권이 넘는 도서들을 열람, 대여할 수 있다. 일반자료실과 더불어 어린이·다문화실, 공동보존서고, 세미나실을 갖추고 있어 민원도 보고, 책도 보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 더불어 인문학 강의와 명사 초청 등 도민들을 위한 다양한 특강 프로그램들이 수시로 마련되니 골라 듣는 재미까지 누릴 수 있다. 위치│전주시 완산구 효자로 225 전북도청도서관 이용시간│9:00~18:00(토·일요일 휴관) 연락처│063-280-2454시각장애인들에게 빛이 되는 열린점자작은도서관점자도서, 녹음도서, 디지털도서 등을 제작하고 시각장애인에게 대출해 준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테마 독서 여행, 어린이 독서 지도 교실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위치│전주시 덕진구 학산길 26-3 이용시간│9:00~18:00(둘째·넷째 주 토요일 9:00~12:00, 일요일 휴관)연락처│063-288-0046어르신 맞춤형 큰나루작은도서관전주 최초 어르신들을 위한 도서관이다. 독서테마교실, 독서동아리 등 어르신들을 위한 맞춤형 프로그램을 운영한다.위치│전주시 덕진구 송천중앙로 36 이용시간│9:00~17:00(토요일 9:00~12:00, 일요일 휴관) 연락처│063-271-9337책과 함께하는 아름다운 동행, 꿈밭장애인작은도서관장애인 특화 작은도서관으로 전주시장애인종합복지관 2층에 위치한다. 일반 도서 열람공간과 장애인 이용자들을 위한 낭독실이 있고, 오디오북과 DVD 영상, 대활자본 등을 비치하고 있다. 위치│전주시 완산구 백제대로 20-41이용시간│9:00~18:00(토·일요일 휴관)연락처│063-229-0633전주 최초 어린이 전문 도서관, 전주책마루어린이도서관책과 함께 소통하고 만날 수 있는 공간으로 어른과 어린이, 자원 활동가들이 힘을 모아 만든 전주 최초의 어린이 전문 도서관. 조용히 책만 보는 도서관이 아니라 배우고 즐기고, 친구들과 맘껏 뒹굴며 호기심을 채울 수 있는 책 놀이터다. 위치│전주시 덕진구 송천동 솔내2길 21이용시간│10:00~18:00(토 10:00~17:00, 일 12:00~17:00, 월요일 휴관)연락처│063-252-1612
2020.12.08
#건지산
#숲속작은도서관
#전주영화도서관
#전주책방
#라키비움 책마루
멋진 하루
전주-군산 시간여행
근대와 현대 사이 시간 위에 펼쳐진 역사를 만나다
아득한 기억 속의 보물창고“햇살이 아프도록 따가운 날에는… 난 거기에 가지.” 미세먼지로 뿌옇던 하늘이 걷히고 며칠 만에 맑은 하늘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을까. 전주에서 광역투어버스를 타고 군산으로 가는 길 내내 나는 노래를 흥얼거렸다. 단 두 장의 앨범으로 전설이 되어버린 포크듀오 ‘어떤날’의 노래다. 군산은 외갓집이 ‘있었던’ 곳이다. 굳이 과거형을 쓴 이유는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모두 돌아가셔서 이젠 나에겐 외갓집이라는 장소성이 사라진 탓이다. 외갓집은 군산 근대역사박물관의 맞은편에 있었는데, 지금은 도로가 되었다. 할머니는 조그마한 선술집을 하셨다. 그때만 해도 내항에 배가 들어왔고, 배가 들 때마다 밀물처럼 선원들이 거리로 쏟아졌다. 그들에게 할머니는 막걸리와 음식을 파셨다. 외갓집은 나에게, 선원이 주고 간 바나나와 미군PX에서 흘러나온 온갖 초콜릿과 사탕을 맛볼 수 있었던, 일종의 보물창고였다. 아픈 식민지의 기억, 군산근대역사문화거리아득한 기억을 더듬다보니 금세 군산 경암동이다. 철길이 동네를 가로지르고 있어서 유명해진 경암동은 사실 묘한 경관을 지닌 곳이다. 십여 년 전만 해도 찾는 사람이 드물고 살림집이 남아 있었지만, 지금은 사람도 많고 가게가 많이 들어섰다. 군산근대역사박물관이 있는 곳은 지번으로 ‘장미동’이다. 어렸을 때 나는 단순히 외갓집의 동 이름이 참 예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쌓을 장(藏)에 쌀 미(米) 자를 쓴 이름이었다. 일제강점기 때 일본으로 수탈되던 쌀이 항상 쌓여 있었던 곳이어서 그렇게 불렀던 것. 그래서 군산 구도심은 식민지시대의 유산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조선은행과 나가사키18은행, 군산세관과 미즈상사 등 식민지 수탈의 거점으로 쓰였던 건물들뿐 아니라 일본인이 거주하던 집들도 많이 있다. 그중에 대표적인 곳이 히로쓰 가옥과 동국사다. 히로쓰 가옥은 전형적인 일본 무사의 집 형태를 지녔다는 점에서, 동국사는 현재 우리나라에 몇 남지 않은 일본식 사찰 중 하나라는 점에서 가치가 크다. 최근 군산시는 이 건물들을 식민지시대를 기억하는 공간으로 재조성하고, 문화관광자원으로 활용하려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해가 다르게 거리가 변하고 있고 방문하는 사람이 많이 늘었다. 일본식 전통 가옥, 군산 히로쓰 가옥식민지 시대의 대표적인 유산, 군산 신흥동에 위치한 히로쓰 가옥은 일제강점기 포목점과 농장을 운영하던 히로쓰 게이샤브로가 지은 목조 주택이다. 근대 역사를 한옥으로 새긴 공간, 전주한옥마을 좀 걸었다고 피곤해졌는지 전주까지, 송재학의 시를 빌자면 “홑치마 같은 풋잠에 기대어” 순식간에 왔다. 관광지로 개발된 후부터는 전주한옥마을을 자주 가지 않는다. 사람이 너무 많고 나에게 의미 있는 장소들이 하나씩 없어졌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전주한옥마을의 가치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전주를 처음 방문하는 손님이 오면 나는 그들이 경기전과 전동성당 사이에 서서 풍남문을 바라보게 한다. 그리고는 조선 왕의 초상을 모신 경기전과 천주교인이 최초로 순교한 곳인 전동성당이 바로 코앞에 마주보고 있다는 사실도 기막힌데, 일제에 의해 전주성곽이 허물어질 때 나온 돌로 전동성당을 지었다는 사실이 더욱 기막히다는 설명을 해준다. 한옥마을이 현재의 모양을 갖추게 된 때는 일제강점기이다. 웨딩거리라 불리는 중앙동 일대가 중심 상가로 조성되고 풍남동에 일본인이 거주하게 되면서 밀려난 조선인들이 교동 인근에 터를 잡아 마을이 되었다. 그래서 중앙동과 풍남동, 교동으로 이어지는 길은 조선시대와 일제강점기의 한옥부터 해방 이후에 지은 생활 한옥까지 한꺼번에 볼 수 있는 매우 독특한 공간이다. 가히 근대 100년의 역사를 한옥으로 새긴 공간이라고 볼 수 있다. 전주한옥마을은 선비촌이기도 하다. ‘정승 열 명이 왕비 한 사람만 못하고, 왕비 열 명이 산촌의 선비 한 사람만 못하다’는 속담이 있을 정도로 조선시대 선비는 각별한 대우를 받은 존재였다. 성리학적 이상을 삶 속에서 실천하는 자라고 볼 수 있는 선비가 집단으로 모여 사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그런데 일제강점기의 한옥마을은 달랐다. 금재 최병심, 고재 이병은, 강암 송성용, 성당 박인규 등 근현대 호남유학의 대를 잇는 큰 학자들이 모여 살았고, 그분들이 생활했던 집과 후학을 양성했던 건물이 남아 있다. 일제의 탄압으로 전주향교가 위험해지자 전북 각지에 살던 유학자들이 하나둘씩 향교를 지키기 위해 모여든 것이다. 기린대로를 중심으로 이목대 쪽에는 금재가 후학을 양성했던 옥류정사와 성당이 살았던 구강재가 있다. 그리고 오목대 쪽에는 고재가 학문을 닦았던 남안재와 강암의 묵향이 담긴 아석재가 있다. 그러나 보통 관광객이 이런 역사적인 장소를 찾아다니기는 쉽지 않다. 일단 정보가 부족하고 정보가 있더라도 골목골목 유심히 보지 않으면 지나치기 십상이다. 향교 옆에 있는 남안재를 멀리서 바라만 보고 지나쳤다. 고재의 아들이자 향교전의를 지낸 이남안 선생이 살았던 곳이다. 2000년대 초, 처음 한옥마을을 조사하면서 알게 되어 가끔 인사도 드리고 막걸리도 한잔씩 하곤 그랬는데,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얼마 전에서야 들었다. 참 쓸쓸하다. 나에겐 또 하나의 장소가 사라졌다. 어떤 의미에서 전주한옥마을은 우리 역사의 ‘실루엣’일지도 모른다. 조선과 근대의 기억이 비극적으로, 때로는 혁명적으로 시작되던 그 어떤 순간을 저장한 세계 말이다. 그래서일까 나는, 오늘처럼 ‘햇살이 아프도록 따가운 날’이 또 오면 다시 ‘거기’에 가고 싶을 것 같다. 태조 어진을 모신 사당, 경기전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어진을 모신 사당이다. 경기전 어진은 현존하는 태조의 유일한 초상화로 전주에서는 해마다 태조 어진 봉안 의례를 행하고 있다. 글 이경진 | 문화기획자이경진 씨는 한때 시를 썼던 시인이지만 여러 직업을 전전하면서 문화기획자나 중간지원조직활동가로 더 알려져 있다. 현재는 완주문화특화지역조성사업 단에서 마을조사 총괄 매니저로 일하고 있다.
2020.11.27
#광역투어버스
#근대역사문화거리
#전주한옥마을
#선비촌
#향교
전주 밖 전북
전주에서 진안까지
세상의 모든 예술은 ‘수작’으로 어우러진다
아름다운 수작, 전주공예품전시관과 목우헌등잔 밑이 어두울 때가 있다. 지척에 두고도 그 매력을 쉽게 알아차리지 못할 때도 이 속담은 유효하다. 전주공예품전시관이 위치한 태조로를 거닐며 뜻하지 않게 늦가을의 햇살을 선물로 받는다. 길게 늘어선 회화나무와 간간 알맞게 서 있는 단풍나무 그리고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가 방짜 유기 같은 그림자를 도량에 맞게 펼쳐낸다. 그 순간 나무의 그림자를 통해 제 존재를 드러내는 늦가을의 마지막 햇살이 마치 판소리의 한 대목처럼 반갑기만 하다. 전주공예품전시관 오목대 전통 정원 앞 작은 연못에 잠시 발길을 묶는다. 마침 연못에는 어디에서 날아들었는지 단풍잎 몇 장이 수면 위 가을 하늘을 덮고 있다. 그 옛날 전주 땅에 이름 붙이고 살았을 이름 모를 장인의 거친 손처럼 단풍잎이 유독 붉다. 작은 연못에서 단풍잎에 깃든 손 하나를 주워 든다. 붉은 단풍잎 하나를 주워 들고 옛사람이 새긴 무늬를 요모조모 상상하고 있을 즈음, 전주공예품전시관의 육중한 나무 대문이 빗장을 연다. 전주공예품전시관은 ‘손의 도시’ 전주의 수공예품 문화를 다각적으로 느끼게 하고 체험하고 판매하는 ‘수공예 종합 플랫폼’이다.여섯 채의 한옥 중 명품관과 판매관 사이 앞마당이 유독 눈에 환하다. 한옥에 산다면 이런 마당 하나쯤 소유하고 싶다는 욕심이 불현듯 솟구친다. 명품관 옆에 전시된 까치호랑이 목공예품도 그 욕심에 한몫 더한다. 한옥 처마를 비집고들어서는 공짜 햇살을 오래 밟고 서 있다가 판매관 쪽으로 발길을 옮긴다. 판매관은 전국 수공예품 740여 종을 전시·판매하는 공간답게 눈요깃거리가 가득하다. 종류도 매우 다양하여 마치 수공예가들의 재미있는 수다를 한자리에서 듣는 기분이다. 어떤 수공예품은 굳이 그 쓰임을 모르더라도, 오묘한 기품을 선물하기도 한다.그런 뜻밖의 감정을 더 오래 간직하고 만끽하고 싶다면 곧장 명품관으로 향하는 것도 좋은 선택이다. 명품관은 전라북도 무형문화재의 작품을 관람할 수 있는 공간이다. 이곳에서는 가장 전주다운 것이 무엇인지를 새삼 깨닫게 된다. 만약 마음에 드는 작품을 오래 들여다보다가 오리무중 갈피를 잃는다면, 그곳에 상주하는 해설사에게 설명을 청해보는 것도 좋은 수공예 감상법 중 하나이다. 나머지 명인명장관과 전시1관은 판매보다는 전시를 주목적으로 조성된 공간이다. 마침 명인명장관에 발길을 더 했을 때는 특별기획전 전시가 한창이다. 과거 조선의 사내들이 전장(戰場) 혹은 의례나 심신 단련을 위해 사용했을 활과 화살 앞에서 오목대 전통 정원 앞 작은 연못에서 만났던 동심원이 오랜 호흡을 붙든다.순간 명인명장관에서 쏘아 올린 화살이 전주공예품전시관과 지척에 있는 목우헌에 날아가 꽂힌다. 목우헌은 전주한옥마을 목공예 공방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장소다. 명인명장관에서 본 화살촉은 어쩌면 목우헌의 주인장인 김종연 명장의 손때 묻은 조각도가 되어 전통 목침과 다식, 약과 틀, 서각 등의 장식품을 그동안 새기고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목우헌 공방에 놓인 한 쌍의 까치호랑이를 다시 보면서 전주공예품전시관과 목우헌은 어쩌면 처음부터 서로에게 아름다운 수작이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멀고 아득한 수작, 진안 손내옹기와 도통리 청자 요지전주가 등잔 밑이 어두웠다면, 진안은 멀고 아득하다고 표현하는 게 맞을 것 같다. 진안 백운면 평장리에 있는 손내옹기를 찾아가는 길에서 스치는 마령 뜰은 잘 빚은 옹기를 닮았다. 태초에 그 뜰에서 흙을 떠다 옹기를 구웠을 옹기장이들의 손은 과연 어떤 모양이었을까. 끝내 불을 이기고 돌아온 옹기를 마주하며 미소 지었을 그 표정은 홀연 어떤 빗살무늬토기를 닮아 있었을까.손내옹기의 주인장인 이현배 진안고원형 옹기장을 만난다. 그의 손끝에서 봄과 여름과 가을과 겨울이라는 시간이 모두 한 옹기의 빛깔에 담긴다. 이현배 옹기장은 1993년부터 진안 백운면 평장리에 정착했다고 한다. 이후 독자적으로 손내옹기를 빚어오면서 다양한 전시 활동을 기획하고 추진하기에 이른다. 특히 2018 평창올림픽에서는 ‘평화의 밥상’이라는 주제로 남과 북의 화합을 기원하는 전시회를 열기도 했단다. 요즘에는 아이들과 노인을 위한 공공 미술 프로젝트에도 마음 한 조각을 내주면서 진안 전통 옹기에 스며 있는 옛 무늬들을 다양한 방식으로 복원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이현배 옹기장과 몇 마디 대화를 섞다 보면 어느샌가 둘의 대화는 잔잔한 섬진강의 물줄기를 타고 흐른다. 어느 지점에서는 의미의 물살이 빠르고, 어느 지점에서는 대화의 물살이 한없이 느리다. 또 어느 지점에서는 징검돌을 놓을 수 있을 만큼 옹기에 관한 모든 이야기가 잔잔하고 고요하기도 하다. 그 대화는 마치 옹기를 굽는 전통 가마처럼 아늑하고 웅숭깊다. 물레를 왼발로 수없이 당기며 수시로 흙과 물과 침묵을 섞어 손내옹기의 넓은 어깨를 다듬어 나갈 때도, 그는 반은 알아듣고 반은 알아듣지 못할 이야기로 시간을 건넌다. “이 장독에 두른 띠를 눈썹이라고 불러요.” 그 말과 동시에 이현배 옹기장은 장독의 눈썹에 일곱 개의 점무늬를 연이어 찍어 낸다. 무슨 의미가 담겨 있느냐고 묻는 물음에 그는 소리 없는 웃음만 빚어내며 특별한 의미는 없다면서 물레를 멈춘다.특별한 의미가 없다는 말의 의미가 마치 1,000도가 넘는 불길을 견디고 나온 잘생긴 손내옹기 같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그는 옹기를 굽는 가마 앞에서도 불을 넣을 때는 뜸을 들이듯 지긋이 지펴야 함을 재차 강조한다. 그래야 흙이 불을 이길 수 있다는 말을 들릴 듯 말 듯 곁들인다. 마지막 인사 끝에는 진안역사박물관의 매사냥 특별전에 전시한 새 모양 토기에 관한 이야기를 곁두리로 전한다. 문득 생각한다. 흙이 한 마리의 새로 빚어져 비화하기까지는 얼마나 뜨거운 시간을 견뎌 내야 하는 걸까. 그 시간을 돌이키며 다시 텅 빈 가마 안을 들여다보니, 모든 옹기가 멀고 아득하게만 보인다.손내옹기를 빠져나와 성수면 중평마을에 있는 도통리 청자 요지를 찾는다. 마을 사람에게 물어물어 찾은 도통리 청자 요지에는 정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고요함만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문득 이현배 옹기장의 ‘특별한 의미가 없다’라는 말이 순간 떠올라 한참을 혼자 웃는다. 어쩌면 흔적도 없이 사라진 그 가마터에서 우리가 진정으로 마주할 수 있는 것은 켜켜이 쌓아 온 ‘산산조각의 힘’일지도 모른다. 도통리 청자 요지 작은 느티나무 아래 무더기로 쌓여 있는 그 옛날의 청자 조각들을 보면서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을 얻을 수 있지’라고 말하던 한 시인의 문장이 전주와 진안의 여행길을 이으며 오랜 수작을 걸어 온다. 글 김정배 | 글마음조각가, 원광대 교수진안 달구름 마을에서 태어나 전주에서 살고 있다. 오른손으로는 글을 쓰고, 왼손으로는 그림을 그리는 가장 무명한 예술가. 시평집 와 포토 포엠 를 펴냈으며, 현재 원광대학교 융합교양대학의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2020.11.23
#전주공예품전시관
#목우헌
#손내옹기
장하고 귀한 손의 도시, 전주
구석구석 한옥마을 체험 여행
전주라서 더 특별한 한지 공예 예부터 이름났던 한지의 주 생산지인 전주는 한지 관련 상품과 문화유산이 풍부하다. 한지 뜨기, 한지 인형 만들기, 한지로 부채 만들기 체험 등이 진행된다. ① 전주전통한지원 l 한지 뜨기, 한지 공예 ₩ 7,000원~ ☎ 010-8959-7757 ② 연아뜰리에 l 한지 부채, 고무신 민화체험 ₩ 10,000원~ ☎ 010-3670-9430 ③ 박금숙 닥종이인형 l 3D프린팅, 한지인형 ₩ 10,000원~ ☎ 063-232-3050 ④ 꽃숙이 l 한지 거울, 팔찌 ₩ 10,000원~ ☎ 063-282-7074 ⑤ 전주부채문화관 l 나만의 부채 만들기 ₩ 7,000원~ ☎ 063-231-1174~5 ⑥ 행복한공예방 l 한지 공예 ₩ 8,000원~ ☎ 063-288-8807 ⑦ 부채박물관 l 부채 만들기 ₩ 10,000원~ ☎ 063-231-8527 전주의 손맛을 배우는 음식 체험 명인과 함께하는 김치체험, 막걸리・청주・모주 등 다양한 술을 빚으며 음주 예절을 배우는 전통주 체험. 그 밖에도 전주 음식의 맛과 정성을 배울 수 있는 체험이 가득하다. ⑧ 전주전통술박물관 l 술 빚기, 모주 거르기 ₩ 5,000원~ ☎ 070-4941-5678 ⑨ 전주김치문화관 l 김치 만들기 ₩ 8,000원~ ☎ 063-287-6300 ⑩ 전주초코파이체험장 l 초코파이 만들기 ₩ 15,000원~ ☎ 063-287-1575 ⑪ 김명옥김치전통음식체험장 l 김치 담그기 ₩ 10,000원 ☎ 063-244-9232 ⑫ 라이스소리 l 떡 공예 ₩ 10,000원~ ☎ 010-4945-5592 ⑬ 청을전통문화원 l 비빔밥, 다도체험 ₩ 7,000원~ ☎ 063-232-6679 직접 배우고 체험하는 실속 만점 생활 공예 실생활에 활용할 수 있는 공예품을 직접 배우고 익힐 수 있는 체험도 다채롭다. 특히 석고방향제나 캔들 만들기 등 은 가까운 지인에게 선물하기에도 그만이다. ⑭ 라임토리 l 클레이, 석고방향제 ₩ 5,000원~ ☎ 010-9204-0826 ⑮ G.HANDS l 미니어처, 꽃신 만들기 ₩ 8,000원 ☎ 010-9791-8566 ⑯ 솜씨당 l 은공예, 매듭 팔찌, 주석잔 체험 ₩ 30,000원~ ☎ 070-5022-4413 ⑰ 수제, 각 l 수제 돌 도장 만들기 ₩ 20,000원~ ☎ 010-9881-1310 ⑱ 여우향기 l 향수 만들기 ₩ 15,000원~ ☎ 063-224-9655 ⑲ 보리수자수 숙박 l 찻잔 받침, 매트, 손수건 ₩ 10,000원~ ☎ 010-5797-3117 ⑳ 한옥애향기 l 캔들 만들기 ₩ 15,000원~ ☎ 010-9465-1484 ㉑ 꼴 l 가죽공예, 이니셜 팔찌, 열쇠고리 ₩ 10,000원~ ☎ 010-6424-1028 ㉒ 온누리공예방 l 매듭 공예 ₩ 5,000원~ ☎ 010-3999-7720 ㉓ 보물단지 l 한복향주머니, 팔찌 만들기 ₩ 5,000원~ ☎ 010-9744-1912 나만의 작품을 소장할 수 있는 도자기·압화 공예 가족이나 연인과 함께 흙이나 꽃을 만지며 잠깐의 여유를 누릴 수 있는 체험들도 있다. 나만의 아이디어와 감성이 담긴 도자기나 압화 작품을 추억과 함께 소장해 보자. ㉔ 들꽃마을 l 힐링 원예 체험 ₩ 10,000원~ ☎ 010-2478-3058 ㉕ 도꼼 l 도자기 체험, 핸드페인팅 ₩ 12,000원~ ☎ 063-221-1222 ㉖ 소나무공방 l 도자기 체험 ₩ 15,000원~ ☎ 010-3009-4202 ㉗ 향교길도자기 l 체험관 생활 도자기 체험 ₩ 11,000원~ ☎ 010-9656-3696 ㉘ 온고을공예방 l 압화 공예 ₩ 10,000원~ ☎ 010-9977-1617
2020.11.09
#모주
#공예
#압화
#도자기
전주 음식
왕의 술, 이강주
나라를 대표한 술 이강주세상에서 가장 진귀한 재료들로 술을 빚었겠지만 그나마 시간이 많이 흘러 당시에 귀하디귀하던 울금, 전주 배, 봉동 생강 정도는 우리도 먹을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왕이 마시던 바로 그 술, 이강주 이야기다. 이강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배(이)와 생강(강)이 들어가는 소주다. 누룩과 멥쌀로 빚은 약주를 증류해 소주로 만든 후 배, 생강, 울금, 계피, 꿀을 넣어 침출시켜 만든다. 배는 청량감이 좋아 술을 부드럽게 만들고 생강과 계피가 이강주 특유의 톡 쏘면서도 은은한 향을 완성시킨다. 거기에 울금과 꿀이 더해져 매콤하면서도 달콤한, 우아하게 감칠맛이 나는 이강주가 완성된다. 울금은 왕실에서 특별히 관리할 정도로 귀한 약재로 경기전이 자리한 전주에서만 재배할 수 있었다. 이강주가 전주에서 빚어질 수 있던 이유다. 게다가 전주 배와 봉동 생강은 진상품이었다. 이렇듯 최고급 재료로 만든 이강주는 조선 3대 명주로 손꼽혀 사대부와 부유층의 가양주로 뿌리내렸다. 조선시대 상류사회 최고의 술이었던 이강주는 1882년 한미통상조약 체결 때는 나라를 대표하는 술로 만찬에 올라 고종의 건배주로 쓰였다. 오늘 밤, 이강주 마시는 법이강주는 은은한 노란빛을 띠는데 생강의 은은한 향과 어우러져 마시기 전부터 입맛을 돋운다. 25도로 알코올 도수가 높은 편인데도 울금 덕분에 뒤가 맑다. 숙취도 없고 빛깔과 향기, 부드러운 맛까지, 술에 기품이 넘친다. 이런 까닭으로 ‘여름밤 초승달 같은 술’로 불렸다. 오래 묵힐수록 향이 깊어지며 시원하게 먹으면 더욱 좋다. 상큼하면서도 고소하고 매콤하면서도 달콤한 이강주는 고소한 전 요리에 어울린다. 기름기 있는 부침개나 전을 먹을 때 배와 계피, 생강의 시원하고도 알싸한 맛이 느끼함을 잡아준다. 때문에 한국식 밥상의 반주로도 좋지만 기름진 서양 음식에도 잘 어울린다. 왕의 도시 전주를 구석구석 돌아본 여행자라면 오늘 밤 치킨 한 마리 시켜 먹을 때 맥주 대신 이강주를 마셔 보자. 전통주에 익숙지 않은 여행자라면 한 번 먹어보고는 싶은데 병도 으리으리하고 술맛도 잘 몰라서 선뜻 손이 가지 않을 수 있다. 그런 이에게는 이강주 칵테일을 추천한다. 전통주 칵테일바 진주도가에 가면 잔술로도, 칵테일로도 즐길 수 있다. 직접 만든 생강 시럽과 계피 시럽, 편강과 민트 등을 넣어 만든 이강주 칵테일은 이강주 특유의 맛과 향을 잘 살려냈다. 이강주는 전주전통술박물관에서 구입할 수 있다. 알코올 25%를 기본으로 19%와 38%의 별도 제품이 있고 50㎖ 미니어처에서 3,000㎖까지 다양한 상품이 판매되고 있다. 400㎖ 18,000원, 750㎖ 25,000원(백자). 이강주를 살 수 있는 곳전주이강주 전주시 덕진구 매암길 28, 063-212-5765전주전통술박물관 전주시 완산구 한지길 74, 063-287-6305진주도가 전주시 완산구 전라감영길 3길 13-5, 063-287-3392 조정형 이강주 명인이강주는 일제강점기 가양주 말살 정책으로 맥이 끊어질 뻔했다가 조정형(75) 명인의 노력으로 다시 옛 명성을 되찾았다. 이강주는 그의 가문에서 6대째 내려오는 가양주다. 그는 이강주를 살려보겠다며 직장을 그만두고 회사를 세웠다. 그게 벌써 25년 전이니 직장 생활까지 해서 마침 올해가 술 인생 50주년이다. 그가 무형문화재(1987년, 6호)가 되고 대한민국 식품명인(1996년, 9호)이 된 건 어쩌면 당연한 일. 그는 회사 경영에서 한 발 물러선 요즘도 매일같이 연구실로 출근해 ‘가루술’을 연구하고 있다. 가루술은 이강주의 세계화, 현대화를 위한 도전이다. 술 장인으로서의 그의 삶은 여전히 청춘이다.
2020.11.04
#막걸리
#배
#생각
#약주
전주의 꽃심
오선 어르신과 선친의 시대를 읽는 기록물
“우표 한 장, 일기 한 줄에도 역사와 시대가 담겨 있어요”
반복된 일상에서 만난 즐거움, 우표 수집2010년 퇴직할 때까지 40년간 전북대학교 도서관에서 사서로 근무했어요. 우표 수집은 그 당시 반복되는 일상에 소소한 재미를 안겨준 소중한 취미 활동이었지요. 도서관으로 매일 수십 권의 학술지들이 우편으로 배달돼 왔고, 그 책들을 정리하는 나날들이 이어졌습니다. 하루는 독일에서 온 학술지를 봉투에서 꺼내 정리하려는데 우표가 눈에 띄더라고요. 참 화려하고 예뻤던 기억이 납니다. 그날 이후 우표를 모으기 시작했어요. 우표 수집하는 재미에 빠져 동료들과 우표수집 모임을 만들기까지 했지요. 네댓 명이 서로 경쟁하듯 우표를 모았는데, 그땐 그게 얼마나 즐거웠는지 몰라요. 그러다 보니 점점 적극적으로 우표를 모으게 됐어요. 단순히 우편물에서 우표를 떼어 모으는 걸 넘어 우체국 우표 수집가 모임까지 가입한 거예요. 1970년대 당시, 우체국에서 모임에 가입한 우표 수집가들을 대상으로 기념우표를 판매하곤 했거든요. 올림픽이나 월드컵 등 굵직굵직한 대회는 물론, 나라에서 진행된 행사나 일어난 사건들을 기념한 우표들은 그렇게 모았답니다. 그렇게 1973년부터 2007년까지 모은 우표 도록을 쭉 살펴보면 나라 안팎으로 어떤 일이 있었는지 한눈에 살펴볼 수 있어요. 우표 한 장으로 시대를 읽을 수 있는 거죠. 집안 대소사 기록물, 아버지의 일기장기념우표 도록과 함께 전주시에 기증한 아버지 일기장은 단순한 일기장이 아니에요. 그날의 감상을 적은 일기이자, 그날 무엇을 샀는지 기록한 가계부이며, 자식들의 생일을 비롯한 집안 대소사가 적힌 우리 집안의 역사 기록지이지요. 1971년부터 돌아가시던 해인 1998년까지 근 30년간 써 오신 아버지의 일기장에는 세월의 흐름이 고스란히 담겨 있어요. 일례로, 세탁기를 샀다며 아버지가 금액까지 꼼꼼하게 적어 놓으셨는데, LG전자의 옛 이름인 금성전자의 상품이더라고요. 치약이며, 비누 같은 생필품 가격도 적혀 있고, 일기장에는 1983년 고속버스 승차권도 있더군요. 그 짧은 기록에서 우리 가족의 사는 이야기와 더불어 물가 변동까지 읽을 수 있어요. 아버지의 작은 기록이 세월을 읽는 지표가 된 거죠. 친척 결혼식은 물론, 누가 아이를 낳았다는 기록까지 있지요. 하루의 일과를 길게 쓴 여느 일기장과는 다른, 말 그대로 그날의 기록이 담겨 있는 거예요. 새 대통령 취임 때마다 짧은 감상문도 적어 놓으셨더라고요. 어떤 대통령이 당선됐고, 당신은 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말이에요. 제 기억 속 아버지는 늘 무언가를 기록하고 모으는 모습으로 남아 있어요. 해마다 연말이면 늘 다음 해 쓰실 수첩을 구입하는 게 아버지만의 새해맞이 의식이었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무엇이든 잘 버리지 못하고 모으는 제 습관이 아버지에서 비롯된 게 아닌가 싶습니다. 소유가 아닌, 공유로 빛나는 기록물의 가치언젠가 누군가 묻더군요. 소중한 취미이자, 아버지와의 추억이 담긴 기록물을 전주시에 기증하는 게 아쉽지 않았느냐고요. 솔직히 처음엔 아쉬운 마음도 든 게사실이에요.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제가 보관하는 것보다 전주시에서 보관하는 게 더욱 의미 있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보다 많은 사람들이 시대를 읽는 즐거움을 알게 하는 것, 그게 바로 기록물의 가치를 가장 빛나게 하는 일이잖아요. 그래서 저 혼자의 ‘소유’보다는 모든 사람들과 함께 갖는 ‘공유’를 택한 거예요. 전 전주에서 태어나고 자라 일평생을 전주에서 보낸 전주 토박이예요. 그만큼 전주에 대한 애착이 많습니다. 어린 시절 아버지가 전주 이곳저곳에서 사진을 참 많이 찍어 주셨는데 그중 전주천, 한벽루, 한벽루 철길 등지에서 찍은 사진들은 2006년 전주역사박물관에서 열린 ‘온고을 씨가 들려주는 전주이야기’ 전시회에 출품하기도 했어요. 어찌 보면 전 참 운 좋게 여러 기회를 얻었다 생각해요. 추억을 함께 나누고, 나아가 후대에까지 남기는 일, 참 근사하잖아요. 그러한 근사한 일, 보다 많은 이들이 함께하면 더 좋지 않을까 싶어요. 오선(67) 어르신은 전주에서 태어나 자라고, 전북대학교 도서관 사서로 40년간 근무한 전주 토박이다. 얼마 전 전주 생활을 정리하고 임실로 귀촌, 전원생활을 시작했다.
2020.10.16
#기념우표
#일기장
#승차권
#수첩
#공유
특별기획
사람 중심 세상으로 전주, 동학농민혁명 정신 잇는다
125년, 동학농민혁명이 국가기념일로 제정되며, 역사적 가치를 재조명받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민족운동인 동학농민혁명은 갑오개혁과 3·1운동에 영향을 미치고 나아가 4·19혁명과 5·18민주항쟁, 그리고 2016년 촛불혁명을 있게 한 원동력이 되었다. 125년이 되는 올해 전주에서는 동학농민혁명의 역사를 복원하며, 가치를 재조명하는 다양한 행사가 준비되고 있다. 동학농민혁명을 한눈에, ‘녹두관’ 문 연다새 세상을 꿈꾸는 민중의 역사가 시작된 1894년 동학농민혁명. 1년간에 걸친 동학농민혁명은 한국 역사상 처음 일어난 민족운동이자 반봉건·반외세 혁명운동이다. 특히, 전주는 동학농민혁명 전개 과정의 최대 성과 지역으로, 동학농민군은 1894년 5월 31일 유혈 사태 없이 전주성을 점령하고 집강소를 설치해 자치행정 업무를 시행했다. 이는 우리나라 민주적 지방자치제의 효시가 되었으며, 특히 사람 중심의 도시를 지향하는 전주정신으로 이어졌다.전주시는 동학농민혁명을 기념하고 그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완산공원과 완산도서관을 포함한 동완산동 일원에 ‘전주동학농민혁명 역사문화벨트’를 조성하고 있다. 그 사업의 첫 번째로 무명 동학농민군 지도자 추모 공간인 ‘녹두관’이 6월 1일 완공되어 문을 연다.전시실과 추모실, 옥상 전망대, 하늘통로로 구성된 ‘녹두관’은 동학농민혁명의 의미와 역사를 면면히 관람할 수 있는 공간이면서, 무명 동학농민군 지도자의 유골을 안장하고 추모하는 공간이다. ‘녹두관’은 125년 전 선조들이 간절히 바라던 꿈을 가까이서 느껴볼 수 있도록 꾸며졌다. 전시실은 전주의 동학혁명 자료 및 무명 동학농민군 지도자 유골을 중심으로 구성된다. 또, 동학농민혁명 관련 전시와 영상물을 통해 19세기 말 탄압의 시대상부터 봉기 전개 과정 등 동학농민혁명의 주요 연대기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 ‘녹두관’에 이어 2021년까지 동학농민혁명 정신을 알리는 홍보 교육관인 ‘파랑새관’, ‘민(民)의 광장’ 등을 조성한다. 동학농민군 지도자, 완산칠봉에 안장된다1894년 동학농민혁명 당시 일본군에게 목이 잘린 무명 동학농민군 지도자 유골이 승리의 땅 전주에 잠든다. 이 유골은 지난 1996년 일본 북해도대학에서 봉환되었지만, 그동안 전주역사박물관 수장고에 보관되었다. 전주시와 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동학농민혁명유족회의 긴 노력 끝에 유골은 동학농민혁명 추모 공간인 ‘녹두관’에 안치될 계획이다. 전주시는 현재 유일하게 실존하는 무명 동학농민군 지도자의 유해 영구 안치를 통해 넋을 기리고, 늦게나마 추모를 통해 후손의 도리를 다하고자 오는 5월 31일과 6월 1일, 안장 의식을 연다.‘백년의 귀향, 고이 잠드소서! 세기(世紀)를 밝힌 넋이여 꽃넋이여’라는 주제로 열리는 이번 행사는 기념식 및 국제학술대회와 발인 및 노제, 안장식과 진혼 행사로 전개된다. 행사의 첫날은 전주완산도서관 강당에서 ‘일본 제국주의 침탈과 민족민주운동’을 주제로 국제학술세미나를 개최한다. 유골 봉환에 기여한 이노우에 가츠오 명예교수는 이날 열리는 국제학술대회에서 ‘일제국주의 침탈의 현재적 의미’라는 주제로 기조발제에 나선다. 이어 동학농민군 전주입성 125주년 기념식과 문화공연이 열린다.이튿날인 6월 1일에는 전주역사박물관에서 발인 의식을 올린 뒤, 박물관에서 출발해 안장지인 ‘녹두관’에 이르는 길을 따라가며 노제를 지낸다. 영정을 운구하는 차량의 뒤를 거리공연 행렬이 따른다. 농민군이 풍남문에 들이치는 대목을 구성한 판소리와 꽃상여가 행진의 대열을 이룬다. ‘녹두관’에 도착하면 안장식과 진혼 행사를 진행한다. 무명 동학농민군 지도자의 유골이 일본에서 봉환되어 전주역사박물관을 거쳐 ‘녹두관’에 안장되기까지의 과정을 전주 시나위로 형상화하고, 혼을 달래기 위한 굿과 김용택 시인의 추모시 낭송, 전통춤, 합창, 유골 안장, 분향과 헌화 등이 이어진다.
2020.10.12
#동학농민혁명
#녹두관
#역사문화벨트
잘 고쳤다 이 집
과거로의 시간여행, 근대사 체험 박물관
전주난장
눈으로만 보지 말고 손으로도 추억을 만져 보세요!학교의 교문처럼 만들어진 입구를 지나면 학용품, 눈깔사탕, 솜사탕이라고 쓰인 글씨 아래 ‘경남상회’ 간판이 보인다. 과자와 음료수와 장난감 등 학교 앞 구멍가게에서 학생들을 유혹했을 작고 앙증맞은 물건들이 즐비하다. 매표소를 지나 학교 안으로 들어가면 흰색 실내화를 넣어둔 신발장이 보인다. 한 칸의 교실은 국민학교로 불리던 시절의 초등학교 교실이 재현되어 있고, 다른 한 칸은 일명 ‘상고 누나’, ‘상고 오빠’들이 타자기를 배우는 상업고등학교 교실로 꾸며져 있다. 땅에 묻어 둔 김칫독과 옛 정취를 느낄 수 있는 세면대도 정겹다. 학교를 벗어나면 무궁무진한 세계가 펼쳐진다. 장난감점, 문구점, 책방, 철물점, 자전거포 등이 좁은 골목길에 늘어서 있다. 이곳에 있는 모든 소품은 조문규 대표가 25년 동안 수집한 것. 고가구와 골동품이 많은 이태원, 황학동은 물론이요,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사 모았다. 복고풍이 아닌 진짜 복고를 만날 수 있는 곳이거니와 여느 박물관과 가장 다른 점이라면 모든 물건을 손으로 만져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외할머니 장터, 우체국 등 70개가 넘는 크고 작은 공간에서 물건을 손으로 만져 볼 수 있고, 의자에도 앉아 볼 수 있다. 만화방, 고고장, 전통놀이터, 노래방 등의 체험도 가능하다. 또 하나 반가운 점은 먹을거리를 제외한 모든 체험거리가 무료라는 것! 한 사람의 오랜 꿈이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추억 공간으로이곳은 지난 2016년 10월에 단장을 시작해 ‘전주난장 야시장’으로 먼저 사람들을 맞았다. 그 뒤 재정비해 올해 3월에 근대사박물관으로 다시 문을 열게 되었다. 지금의 모습이 갖춰지기까지 3년이 훌쩍 넘는 준비 기간이 필요했던 셈. 긴 시간 동안 공을 들인 데는 이유가 있다. “삼십 대 후반부터 민속품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어요. 나이가 들면 근·현대의 생활사를 보여 주는 박물관을 만들고 싶다는 꿈을 갖게 되었죠. 그때부터 이것저것 하나씩 모으기 시작했어요.” 역 앞에 있었던 전당포와 연탄 아궁이가 있는 자취방, 1960~1970년대 선거 포스터와 달력 등 세세한 소품까지 신경 써서 재현한 공간에는 그의 땀과 열정이 스며 있다. 준비 기간이 길어지면서 말 못 할 마음고생도 많았다. “공사 진행이나 물건 구매에 드는 비용 때문에 골머리를 앓았지만, 공간이 조금씩 완성될 때마다 설레었어요. 돌담 하나를 쌓아도 그래요. 의도한 대로 만들어지면 그 좋은 기분이 며칠을 가는 거예요. 볼 때마다 예쁘고요. 정말 행복했어요.” 조문규 대표가 한 땀 한 땀 손바느질을 하듯 완성한 ‘전주난장’을 ‘군산극장’의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뭉클하게 다가온다. 그만큼 아름답기 때문이다. 해가 저물면 300여 개의 달과 별, 청사초롱 등으로 꾸며진 조명이 시간여행을 더욱 낭만적으로 만들어 준다. 앞으로 전통차와 국밥을 비롯한 전통 먹을거리 등도 선보일 계획이다. 전주난장주소 | 전주시 완산구 은행로 13문의 | 063-244-0001이용시간 | 일~목 오전 7:30~오후 8:30, 금~토 오전 8:30~오후 9:30
#전주난장
#추억
#박물관
#문방구
#복고
“역사를 바로 아는 일, 기록물 보존에서 시작됩니다”
이만호 씨가 이야기하는 전주교도소 100년의 역사
귀한 경험, 를 쓰다교정직 공무원으로 근무한 38년 7개월 중 33년을 전주교도소에서 근무했어요. 제 인생의 대부분을 전주교도소에서 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셈이죠. 그러니 집필에 참여한 일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 아니었나 싶어요. 2008년, 전주교도소 100주년의 의미를 기리고자 전주교도소에 근무했던 소장님과 과장님들이 책을 한번 내면 어떨까 하는 의견을 내셨어요. 그리고 김영식 전 보안과장님을 비롯, 저를 포함한 다섯 명이 참여하게 되었죠. 저는 전주교도소에 오래 근무하고, 교도소 홍보에 기여한 바를 인정받아 참여하게 되었어요. 다섯 명이 발로 뛰며 자료를 모아 석 달에 걸쳐 책 한 권을 완성했습니다. 이제 와 생각해 보면 어떻게 해냈나 싶기도 합니다. 막상 책을 만들려 하니 자료가 턱없이 부족했거든요. 말 그대로 ‘맨땅에 헤딩’하는 심정이었어요. 전주시립도서관에서 과거 신문들도 찾아보고, 원로 선배들을 찾아가서 이야기를 듣기도 하고. 전주교도소 자료가 있을 만한 곳은 어디든 찾아갔던 것 같아요. 그렇게 책을 만들다 보니 미처 몰랐던 역사적 사실들을 하나둘 깨닫게 됐어요.1908년 일제 강점기 당시 ‘광주감옥 전주분감’으로 시작해 ‘전주감옥’을 거쳐‘전주형무소’, ‘전주교도소’에 이르기까지, 전주교도소의 역사는 우리나라 근대 역사와 맞닿아 있었습니다. 큰 사건이 벌어질 때마다 수감자들은 급격히 늘어났고, 전주교도소는 더 큰 곳으로 이전하게 됐습니다. 나라의 굵직굵직한 사건들과 전주교도소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였던 것이죠. 책을 만들면서 힘든 와중에 만난 참 재미난 발견이었고, 깊은 깨달음이었습니다. 역사 기록물 수집은 ‘즐거운 수고’책 집필은 보다 적극적인 기록물 수집으로 이어졌습니다. 를 쓰면서 우리 역사에 대한 관심이 더욱 높아졌고, 역사를 제대로 알아야만 더 나은 나라를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리고 역사를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역사적 사실이 담긴 기록물을 찾아서 잘 보존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때부터 역사 기록물 수집에 대한 ‘즐거운 수고’가 시작됐습니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기록물을 수집했고, 필요하면 경매에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지난해 전주시에 기증한 도 경매를 통해 얻은 것입니다. 이 책은 1932년 12월 백범 김구 선생이 중국 상해 망명 당시, 한인애국단의 의열 활동을 알리고자 저술한 책이에요. 전주시에서 3・1운동 관련 자료를 찾는다는 소식을 듣고 두 번 생각할 것도 없이 기증했습니다. 우리나라가 5,000년 역사를 자랑한다는데 요즘 사람들은 이런 역사에 대한 자부심이 부족한 것 같아요. 그게 모두 역사적 기록물이 부족한 탓이라 생각합니다. 자랑스러운 역사를 증명할 수 있는 기록물이 있다면 우리나라 사람들의 역사의식도 고취되지 않을까요? 역사박물관 건립의 꿈, 삶의 원동력지난해 초부터 호남고속에서 시내버스 기사들의 배차 업무를 관리하고 있어요. 40년 가까이 일했으니 좀 쉴 만도 하다지만 그럴 수가 없습니다. 제겐 꼭 이루고 싶은 오랜 꿈이 있거든요. 바로 그동안 고생한 아내에게 ‘역사박물관’을 선물하는 거예요.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그날을 위해 더 열심히 일하고 있습니다. 문화 유물도 수집해야 하고, 전시 공간도 마련해야 하니까요. 물론 수익을 위한 공간은 아니에요. 그저 그 공간을 통해서 많은 사람들이 우리 역사에 대해 조금이나마 더 관심을 보인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 같습니다. 기록물 수집이라는 제 취미가 저만의 역사 사랑에서 끝나지 않고, 보다 많은 이들에게 기록물의 가치를 알리는 일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만호(63) 씨가 순창에서 태어났지만, 인생의 반 이상을 전주교도소에서 근무한 까닭에 전주에 대한 애착이 전주 토박이 못지않다. 현재는 호남고속에서 일하며, 수필가이자 수집가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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