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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향 따라 걷다
동이 트는 시간, 생생한 삶을 만나는 새벽여행
남부시장, 기억을 두드리다여행이라는 단어를 듣자마자 눈빛이 반짝거리던 이모가 남부시장에 도착하니 조금은 실망한 눈치다. 하지만 “참된 여행은 새로운 풍경을 찾는 게 아니라 새로운 눈을 갖는 것이다”라고 했던 마르셀 프루스트의 말처럼 여행의 진정한 고수는 일상을 여행처럼 즐기는 사람일 테다. 게다가 ‘여행 장소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함께 여행하는 사람이 아닐까?’라고 생각하며 새벽시장의 활기 속으로 성큼 들어선다.벌써 200년의 역사를 품은 전주 남부시장. 전국의 이름난 전통시장 중에서도 가히 최고의 역사를 자랑한다. 한때는 남부시장을 거치지 않고서는 결혼을 못 한다는 말이 있었을 정도로 남부시장은 전주 사람들의 일상에 빠지지 않는 공간이자 지역 경제의 버팀목 역할을 해 왔다. 한옥마을과도 접근성이 좋고 청년몰 등 볼거리도 많아 젊은 여행객들이 손꼽는 전주 관광 코스 중 하나이기도 하다.1982년 사랑하는 남편을 따라 낯선 스위스로 떠난 이모가 기억하는 남부시장의 모습은 어떠했을까? 기억 또한 하나, 둘 세월을 이기지 못하고 사라지지만 어떤 기억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마치 사진처럼 또렷하게 뇌리에 남는다. 이모가 떠올린 남부시장에 대한 기억은 천변 앞에서 펼쳐진 신기한 서커스라고 한다. 그 시절 사람들은 저마다 손에 무언가를 들고 걸어가다가 왁자지껄한 소리에 발걸음을 멈추고 그 장면을 홀린 듯 바라보았으리라. 하긴 조선 시대부터 남부시장이 자리한 천변은 사람들의 마음을 훔치는 공간이었다. 한양에서도 전주에 내려오면 꼭 들렀다 갔다던 서포(옛 서점)가 있었고, 싸전 다리 밑에서는 전기수(책 읽어주던 사람)가 사람들의 마음을 애태웠다. 세월이 흘러서는 내로라하는 소리꾼들이 기량을 뽐내는 장소이기도 했다. 이렇게 보면 남부시장은 단순히 물물을 교환하던 장소가 아니라 시간이 지나도 쉬이 사라지지 않는 강렬한 기억을 선물받는 곳이기도 하다.선물이라고 하면 내게도 떠오르는 어린 시절의 기억이 있다. 스위스에 살던 이모가 몇 년 만에 한 번씩 귀국할 때마다 두 손 가득 선물을 가져왔던 기억이다. 어린 마음에 언제쯤 이모가 한국에 올까 기다렸던 건, 지금 생각해 보니 이모가 아니라 선물을 기다렸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때 받은 선물을 품에 안고 그대로 동네에 나가 친구들에게 자랑하기 바빴으니까. 몇 년을 기다려서야 겨우 몇 주 만날 수 있었던 이모는 그렇게 선물을 나눠주고 때가 되면 사라졌다. 마치 푸른 불빛으로 자신의 존재를 나타내다가 아침이 되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 사라지는 도깨비불처럼. 반짝반짝 도깨비 유혹에 빠져 보자새벽, 남부시장 입구에서 천변 주차장 계단을 내려가면 멀리서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형형색색의 파라솔들이 눈에 띈다. 바로 동트기 전에만 연다는 남부시장 도깨비 장터다. 파라솔 밑으로 상인들의 분주한 삶이 펼쳐지는데 깻잎, 시금치, 대파 등을 펼쳐 놓고 흥정에 열을 올린다. 엊그제 직접 경북 의성에 가서 육쪽마늘을 가지고 왔다며 맛이 기가 막히다고 자랑을 하는데 그 입담에 솔깃해져 자꾸 이모에게 마늘이 필요 없느냐고 묻는다. 시장에서 살아남으려면 물건보다 입담이 좋아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이러한 풍경이 이모에게는 신기하고 낯선가 보다. 스위스에서는 물건값을 깎는 경우가 없다 보니, 상인들에게 비싸다고 조금만 깎아 달라고 조르는 내 팔을 이모가 툭 친다. 이른 새벽부터 물건을 가지고 온 상인들에게 예의가 아니라는 뜻일 게다. 오늘 새벽시장엔 가지런하게 놓인 채소들이 유독 신선하고 예뻐 보인다. 도깨비시장이라는 이름대로 지나가는 사람들을 유혹해서 그런지 나도 그 유혹에 넘어가 호박을 다섯 개나 사 버리고 만다. 이모와 함께 호박전을 부치고 남은 호박은 채를 썰어 점심 때 국수에 넣어 먹을 생각을 하는데, 슬슬 배가 고파진다. 아침 식사로 남부시장의 유명한 콩나물국밥을 먹어 보기로 한다. 서민 음식의 대표답게 남부시장 콩나물국밥의 유래는 우리네 삶과 연결된다. 오래전 상인들이 물건을 팔러 시장에 나올 때면 주먹밥을 싸 왔는데 겨울에는 꽁꽁 언 주먹밥이 먹기 힘들어, 값이 저렴한 콩나물을 넣고 끓인 국물에 차가운 주먹밥을 말아서 먹었다고 한다. 그때의 국물도 지금처럼 시원하고 칼칼했을까? 다진 마늘과 청양고추가 입맛을 살려 주고 피로를 깨운다. 역시 여행의 백미는 맛있는 음식이다. 개운하게 한 그릇을 비우고 나서 다시 힘을 내어 힘차게 천변을 걸어 본다. 천변, 길 위에 추억을 남기고1995년 내가 처음 스위스에 가서 놀랐던 건 호수 위의 백조였다. 근처 벤치에서 바게트 같은 빵 부스러기를 사람들이 나눠 주면 백조가 자연스럽게 다가와 받아먹었다. 동화책에서만 보던 백조를 눈앞에서 본 것이다. 더욱 놀란 건 백조가 있는 호수에서 사람들이 아무렇지 않게 수영을 하다가 나와서 집으로 돌아가는 모습이었다. 무엇보다 스위스 사람들에게 호수는 없어서는 안 될 삶의 일부다. 어느 때부터인지 전주의 천변도 시민들에게 빼놓을 수 없는 일상이 되었다. 이른 아침 산책부터 저녁 식사 후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길이 천변인 것이다. 나는 아직 한 번도 보지 못했지만, 가끔 천변을 산책하다가 수달을 만나서 신기했다는 이야기도 듣게 된다. 한번은 천변을 걸어가다가 아는 사람을 네 명이나 만난 적도 있다. 다들 바람이 좋아서, 밥 먹고 소화시키려고, 그냥 걷고 싶어서 등 다양한 이유로 천변을 산책하고 있다. 특별한 목적이 없어도 나와서 쉴 수 있는 시민들의 공간이자 매일매일 추억이 쌓이는 그곳이 바로 전주 천변이다. 길을 걷다가 눈을 들어보니 저 멀리 전주 시민들의 여름밤을 시원하게 달래 주던 청연루가 보인다. 코로나19가 발생하기 전 열대야에 지친 날이면 시원한 수박을 가지고 달빛 아래 지인들과 청연루의 낭만적인 밤을 보내던 때가 생각난다. 얼마 있으면 곧 떠나게 될 이모가 이곳에 다시 돌아오는 날, 그 낭만을 함께 즐겨 봐야지. 특별한 여행은 멀리 가지 않아도 일상을 두드리면 우리에게 언제나 문을 활짝 열어 준다. 남부시장 도깨비시장에 가면 아침 일찍 반짝 열렸다 사라진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도깨비시장. 전주의 아침을 깨우는 도깨비시장은 남부시장 맞은편 천변(전주시 완산구 동완산동 70 주변)에서 열린다. 동트기 전부터 상인들은 장사판을 분주히 펼쳐 놓는다. 각종 채소와 제철 과일 등 직접 키운 싸고 싱싱한 농산물부터 생선, 닭고기 등 도매상에서 떼어 온 신선식품, 소소한 잡화까지 판매하는 품목도 다양하다. 운영은 대략 새벽 5시부터 8시 사이로 보면 된다. 전주천을 낮게 가르는 돌다리를 건너 도깨비시장에 입장하는 것도 하나의 묘미다. 천변 주차장을 이용하면 주차료는 한 시간이 무료이다. 글 | 김소라(뮤지컬 극작가)뮤지컬 극작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현재 ‘아트컴퍼니 두루’ 예술감독이다. 주요 작품으로 창작 뮤지컬 , , 등이 있다. 이 외에 무대공연 연출, 행사 기획, 인문학 강의 등 다양한 분야에서 관객과 소통하고 있다.
2022.08.23
#남부시장
#도깨비시장
#미라클모닝
#전주여행
기획 특집
올여름 전주의 하루, 새벽부터 밤까지
새벽부터 밤까지, 여름에 만난 전주의 하루
어김없이 8월이 찾아왔습니다. 8월은 왠지 더위를 잊기 위해, 일상에서 벗어나기 위해 어디론가 훌쩍 떠나야 할 것 같은 그런 달입니다. 하지만,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끝날 듯 끝나지 않는 코로나19가 시민들의 발걸음을 붙잡습니다. 백신 접종이 빠르게 진행되고는 있지만, 코로나19 4차 대유행이 본격화되면서 모두의 안전을 위해 거리 두기와 생활 방역이 필요한 때입니다. 대신 올해는 우리의 일상이 펼쳐지는 전주에서 안전하면서도 조금은 특별하게 여름을 보내 보면 어떨까요?여행은 ‘살아 보는 거’라고 합니다. ‘여행이 곧 일상이고 일상이 곧 여행’이라는 얘기겠지요. 그런 의미에서 이번 여름 특집호는 멀리 떠나기 부담스러운 시민들에게 특별한 전주의 하루를 제안합니다. 새벽부터 밤까지 거리 두기를 하며 전주의 하루를 오롯이 즐길 수 있도록 다양한 이야기들을 담았습니다. 남부시장 도깨비시장에는 힘차게 하루를 여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명상음악으로 주말을 여는 시민들의 이야기와 슬리퍼 신고 동네 산책하듯 자연의 품에서 여유를 즐기는 이웃들의 말소리가 싱그럽게 들려옵니다.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전주의 도서관으로 여행을 떠나고, 휴가 기분을 만끽할 수 있는 브런치로 여유를 느껴 보세요. ‘뜻밖의 미술관’에서 전시도 보고, 전주디지털독립영화관에서 색다른 영화도 한 편 보면서 알찬 문화생활을 즐기세요. 숨 가쁜 도시의 리듬을 뒤로하고 시민이지만 여행자처럼 한옥마을로 떠나 보는 건 어떨까요? 시원한 간식으로 더위를 잊고, 밤에 열리는 공연과 축구 경기를 관람하고, 야외 테라스에서 맥주 한잔으로 추억을 쌓는 것도 좋습니다.낯선 곳에서만 여행의 기쁨을 누릴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익숙한 도시에서도 새로움을 발견한다면, 그것도 멋진 여행이 아닐까요?
2021.07.22
#도서관여행
#한옥마을
전주의 새벽 4시
새벽 4시, 숲의 향기 속으로
새벽 숲은 여름날 특별한 하루를 시작하기에 더없이 근사한 공간이다. 아직 세상이 적막한 시간, 문득 잠이 달아났다면 새벽 숲에 오르자. 건지산 울울한 편백나무 사이로 난 길을 따라 차가운 새벽을 걷는다. 막 잠에서 깨어난 새소리에 박자를 맞춰 걸음을 옮기다 보면, 어느새 가슴 가득 숲 내음이 차오르고, 숲처럼 싱그러운 하루가 시작된다.전주의 새벽 5시아침을 깨우는 시장, 도깨비시장알뜰하고 부지런한 전주 어머니들의 단골 시장인 남부시장 도깨비시장. 여름이면 더욱 이른 시간부터 상인들의 발걸음이 분주하다. 손수레 소리가 새벽을 깨우고 공터가 장사하려는 이들로 조금씩 채워지면서 도깨비시장에 활기가 감돈다. 새벽 5시, 나란히 열을 맞춘 찰옥수수와 대파가 손님 맞을 준비를 마쳤고, 갓 튀겨 낸 고소한 어묵도 한 자리를 차지했다. 이제는 손님이 등장할 차례. 시간이 지나면서 시나브로 손님이 늘어나 오가는 길목이 정체된다. 이때를 놓치지 않고 “하나 먹어 봐도 돼요. 잡숴 봐. 진짜 달아. 내가 새벽에 따온 거야.”, 목청을 높이는 상인들이다. 그 목소리에 발길이 잡히면 어느새 양손이 무거워진다. 싸고 싱싱한 재료로 건강한 아침 한상을 차리고 싶다면, 꼭 남부시장 도깨비시장에 들러 보자.색다른 아침명상으로 시작하는 하루일요일엔 좀 더 색다르게 하루를 시작할 수 있다. 동문거리에 있는 예술공간 '동문창창'에서 새벽 5시 가 열리기 때문. 대금과 콘트라베이스의 편안한 선율이 50분 동안 반복되면서 공간을 가득 채운다. 새벽이기에 더욱 집중할 수 있고 온전히 나에게 빠질 수 있어 좋다. 8월 22일과 9월 12일에도 사전 예약을 하면 참여할 수 있으니, 나에게 집중할 소중한 기회를 놓치지 말자.주소 l 전주시 완산구 동문길 92 문의 l 동문창창(010-9026-4344)
#새벽숲
거 리 두 기 여 름 나 기 - 쇼핑해요
나홀로 새벽 장보기, 남부시장 도깨비시장
모두가 잠든 새벽. 아직 동이 채 트기도 전인데 전주천변 공터로 하나둘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한다. 매주 토요일 어스름한 새벽녘이 밝아 오면 남부시장 앞 전주천변에는 일명 ‘도깨비시장’이라 불리는 새벽 시장이 열리기 때문이다. 새벽 3시부터 오전 8시까지만 만날 수 있는 특별한 이 시장에는 육·해·공 없는 것 빼고 다 펼쳐져 있다. 작은 상자에 옹기종기 담겨 있는 감자, 여름철에 제맛인 복숭아, 직접 기른 텃밭 채소, 수산시장에서 받아 온 싱싱한 생선 등을 진열하며 분주히 손님 맞을 준비를 한다. 기지개 켤 틈 없이 바쁘게 준비하다 보면 어느새 손님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수박 한 통에 만 원~”, “고등어 한 마리 오천 원~” 상인들은 저마다의 방법으로 손님들의 귀를 쫑긋하게 만들어 발길을 붙잡는다. 원하는 물건을 양껏 주고도 부족한지 덤까지 챙긴 손님들의 양손은 훈훈한 인심으로 묵직하다. 물건을 파는 사람들과 사는 사람들의 흥정이 뒤섞인 이곳에는 넘치는 인심만큼이나 다양한 풍경으로 가득하다. 이색적인 볼거리와 삶의 활기가 필요할 때 새벽 시장을 찾아가 보자. 기분 좋은 미소가 지어질 것이다.
2020.07.27
#새벽시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