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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과 더불어
전통에 첨단을 더해 대중 곁으로 가다
탄소전자해금 개발자 유재업
탄소전자해금 ‘C-아랑이’를 소개해주세요. 정식 이름은 ‘전통과 it의 융합 듀얼 모드 전자해금’입니다. 전통 해금과 일렉트로닉 해금, 두 가지의 기능을 갖춘 악기이지요. 평소에는 전통해금 소리를 내고, 음원을 확장시키면 전자해금 소리가 납니다. 게다가 앰프 기능을 내장시켜 휴대가 편리하고 가 격도 저렴하고요. 전통해금이 지닌 전통·문화적 가치를 유지 하는 동시에 대중적 요구를 최대한 반영한 악기이지요. 탄소전자해금을 개발하게 된 과정이 궁금합니다. 탄소전자해금을 만들기 전까지는 바이올린과 아코디언 등 서양 악기를 만 들어왔습니다. 그러다 국악 부흥의 시대에 맞춰 전통악기인 해금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어요. 처음에는 원천 기술만 믿고 시작했지만, 서양악기와 국악기에는 차이점이 많아 애로사항이 뒤따랐지요. 기술을 극복하기까지 새로운 모험과 수많은 실험을 반복하다 탄소를 만났습니다. 전통해금의 재료인 목재는 날씨나 온도의 영향을 많이 받는 소재로, 일정 한 음향 출력과 연주가 자유롭지 못하다는 취약점이 있는데요. 이러한 한 계를 극복하기 위해 신소재인 탄소소재를 사용하게 되었지요. 그리고 언제 어디서나 맑은 소리를 낼 수 있는 탄소전자해금을 완성하게 되었습니다. 탄소전자해금을 만들기 위해 경상도에서 전주로 오셨다고 들었는데요, 그 사연을 듣고 싶습니다. 전주는 탄소도시로 특화된 도시인 데다가, 전국에서도 이름난 국악의 도시이지요. 전통문화와 신기술이 적절히 공존하는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전북창조경제혁신센터 ‘6개월 챌린지 플랫폼’ 지원사업에 선정되어 시제품을 만들면서 전주에 오게 된 것이 시작이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전문가 멘토링을 통해 애로사항을 해결하며 제품 양산 단계까지 왔고요. 이제 본격적인 시장 판매를 앞두고 있습니다. 이렇게 전주에 와서 많은 도움을 받았고, ‘C-아랑이’를 세상에 내놓을 준비를 마쳤습니다. 앞으로의 목표가 있다면요? 전통악기라고 해서 국내에서만 통용되라는 법은 없지요. 탄소전자해금을 해외 학교에 보급해서 재외동포 학생들에게 알리고 싶다는 포부를 가지고 있어요. 이를 위해 영어 버전의 동영상 커리큘럼을 준비 중이지요. 재외동포들이 탄소전자해금의 사절단이 되어 자연스럽게 외국인들에게 전달하고, 우리 문화의 우수성을 널리 알릴 수 있다면 좋겠어요. 또한 해금 전공자들이 해외 무대에 진출하도록 독려하고 싶고요. 탄소전자해금으로 영화 와 드라마, K-팝을 잇는 새로운 한류를 일으키고 싶습니다. 탄소전자해금이 전주 시민에게 어떤 악기가 되길 바라시나요? 무엇이든지 시작이 가장 중요하지요. 전주에서 탄소전자해금이 탄생했다 는 것에 시민들이 자부심을 가질 수 있도록, 더 뛰어난 악기를 만들기 위 해 꾸준히 노력할 것입니다. 또한 전주세계소리축제 등 전주에서 펼쳐지는 다양한 공연과 프로그램을 활용해 많은 분들 앞에 탄소전자해금을 선보이고 싶습니다. 탄소전자해금이 ‘전주의 악기’로 전주 시민의 마음속에 자리 잡게 되길 바랍니다. 카본플레이(주) 천재 바이올리니스트 유진박의 전자바이올린과 일렉 아코디언 개발자로 유명한 악기 개발자 유재업 대표거 설립한‘카본플레이(주)’는 2017년 설립, 탄소전자해금을 개발했다. 현재 한국탄소융합기술원 창업보육센터에 입주해 있으며, ‘JEC asia 국제복합소재 박람회’에 참가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현재 탄소전자해금의 본격적인 생산과 판매를 앞두고 있으며, 국악기 대중화에 힘쓰고 있다. 주소 l 전주시 덕진구 반룡로 110-11 문의 l 063-286-6373
2020.11.27
#탄소
#해금
#탄소전자해금
멋진 하루
전주-군산 시간여행
근대와 현대 사이 시간 위에 펼쳐진 역사를 만나다
아득한 기억 속의 보물창고“햇살이 아프도록 따가운 날에는… 난 거기에 가지.” 미세먼지로 뿌옇던 하늘이 걷히고 며칠 만에 맑은 하늘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을까. 전주에서 광역투어버스를 타고 군산으로 가는 길 내내 나는 노래를 흥얼거렸다. 단 두 장의 앨범으로 전설이 되어버린 포크듀오 ‘어떤날’의 노래다. 군산은 외갓집이 ‘있었던’ 곳이다. 굳이 과거형을 쓴 이유는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모두 돌아가셔서 이젠 나에겐 외갓집이라는 장소성이 사라진 탓이다. 외갓집은 군산 근대역사박물관의 맞은편에 있었는데, 지금은 도로가 되었다. 할머니는 조그마한 선술집을 하셨다. 그때만 해도 내항에 배가 들어왔고, 배가 들 때마다 밀물처럼 선원들이 거리로 쏟아졌다. 그들에게 할머니는 막걸리와 음식을 파셨다. 외갓집은 나에게, 선원이 주고 간 바나나와 미군PX에서 흘러나온 온갖 초콜릿과 사탕을 맛볼 수 있었던, 일종의 보물창고였다. 아픈 식민지의 기억, 군산근대역사문화거리아득한 기억을 더듬다보니 금세 군산 경암동이다. 철길이 동네를 가로지르고 있어서 유명해진 경암동은 사실 묘한 경관을 지닌 곳이다. 십여 년 전만 해도 찾는 사람이 드물고 살림집이 남아 있었지만, 지금은 사람도 많고 가게가 많이 들어섰다. 군산근대역사박물관이 있는 곳은 지번으로 ‘장미동’이다. 어렸을 때 나는 단순히 외갓집의 동 이름이 참 예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쌓을 장(藏)에 쌀 미(米) 자를 쓴 이름이었다. 일제강점기 때 일본으로 수탈되던 쌀이 항상 쌓여 있었던 곳이어서 그렇게 불렀던 것. 그래서 군산 구도심은 식민지시대의 유산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조선은행과 나가사키18은행, 군산세관과 미즈상사 등 식민지 수탈의 거점으로 쓰였던 건물들뿐 아니라 일본인이 거주하던 집들도 많이 있다. 그중에 대표적인 곳이 히로쓰 가옥과 동국사다. 히로쓰 가옥은 전형적인 일본 무사의 집 형태를 지녔다는 점에서, 동국사는 현재 우리나라에 몇 남지 않은 일본식 사찰 중 하나라는 점에서 가치가 크다. 최근 군산시는 이 건물들을 식민지시대를 기억하는 공간으로 재조성하고, 문화관광자원으로 활용하려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해가 다르게 거리가 변하고 있고 방문하는 사람이 많이 늘었다. 일본식 전통 가옥, 군산 히로쓰 가옥식민지 시대의 대표적인 유산, 군산 신흥동에 위치한 히로쓰 가옥은 일제강점기 포목점과 농장을 운영하던 히로쓰 게이샤브로가 지은 목조 주택이다. 근대 역사를 한옥으로 새긴 공간, 전주한옥마을 좀 걸었다고 피곤해졌는지 전주까지, 송재학의 시를 빌자면 “홑치마 같은 풋잠에 기대어” 순식간에 왔다. 관광지로 개발된 후부터는 전주한옥마을을 자주 가지 않는다. 사람이 너무 많고 나에게 의미 있는 장소들이 하나씩 없어졌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전주한옥마을의 가치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전주를 처음 방문하는 손님이 오면 나는 그들이 경기전과 전동성당 사이에 서서 풍남문을 바라보게 한다. 그리고는 조선 왕의 초상을 모신 경기전과 천주교인이 최초로 순교한 곳인 전동성당이 바로 코앞에 마주보고 있다는 사실도 기막힌데, 일제에 의해 전주성곽이 허물어질 때 나온 돌로 전동성당을 지었다는 사실이 더욱 기막히다는 설명을 해준다. 한옥마을이 현재의 모양을 갖추게 된 때는 일제강점기이다. 웨딩거리라 불리는 중앙동 일대가 중심 상가로 조성되고 풍남동에 일본인이 거주하게 되면서 밀려난 조선인들이 교동 인근에 터를 잡아 마을이 되었다. 그래서 중앙동과 풍남동, 교동으로 이어지는 길은 조선시대와 일제강점기의 한옥부터 해방 이후에 지은 생활 한옥까지 한꺼번에 볼 수 있는 매우 독특한 공간이다. 가히 근대 100년의 역사를 한옥으로 새긴 공간이라고 볼 수 있다. 전주한옥마을은 선비촌이기도 하다. ‘정승 열 명이 왕비 한 사람만 못하고, 왕비 열 명이 산촌의 선비 한 사람만 못하다’는 속담이 있을 정도로 조선시대 선비는 각별한 대우를 받은 존재였다. 성리학적 이상을 삶 속에서 실천하는 자라고 볼 수 있는 선비가 집단으로 모여 사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그런데 일제강점기의 한옥마을은 달랐다. 금재 최병심, 고재 이병은, 강암 송성용, 성당 박인규 등 근현대 호남유학의 대를 잇는 큰 학자들이 모여 살았고, 그분들이 생활했던 집과 후학을 양성했던 건물이 남아 있다. 일제의 탄압으로 전주향교가 위험해지자 전북 각지에 살던 유학자들이 하나둘씩 향교를 지키기 위해 모여든 것이다. 기린대로를 중심으로 이목대 쪽에는 금재가 후학을 양성했던 옥류정사와 성당이 살았던 구강재가 있다. 그리고 오목대 쪽에는 고재가 학문을 닦았던 남안재와 강암의 묵향이 담긴 아석재가 있다. 그러나 보통 관광객이 이런 역사적인 장소를 찾아다니기는 쉽지 않다. 일단 정보가 부족하고 정보가 있더라도 골목골목 유심히 보지 않으면 지나치기 십상이다. 향교 옆에 있는 남안재를 멀리서 바라만 보고 지나쳤다. 고재의 아들이자 향교전의를 지낸 이남안 선생이 살았던 곳이다. 2000년대 초, 처음 한옥마을을 조사하면서 알게 되어 가끔 인사도 드리고 막걸리도 한잔씩 하곤 그랬는데,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얼마 전에서야 들었다. 참 쓸쓸하다. 나에겐 또 하나의 장소가 사라졌다. 어떤 의미에서 전주한옥마을은 우리 역사의 ‘실루엣’일지도 모른다. 조선과 근대의 기억이 비극적으로, 때로는 혁명적으로 시작되던 그 어떤 순간을 저장한 세계 말이다. 그래서일까 나는, 오늘처럼 ‘햇살이 아프도록 따가운 날’이 또 오면 다시 ‘거기’에 가고 싶을 것 같다. 태조 어진을 모신 사당, 경기전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어진을 모신 사당이다. 경기전 어진은 현존하는 태조의 유일한 초상화로 전주에서는 해마다 태조 어진 봉안 의례를 행하고 있다. 글 이경진 | 문화기획자이경진 씨는 한때 시를 썼던 시인이지만 여러 직업을 전전하면서 문화기획자나 중간지원조직활동가로 더 알려져 있다. 현재는 완주문화특화지역조성사업 단에서 마을조사 총괄 매니저로 일하고 있다.
#광역투어버스
#근대역사문화거리
#전주한옥마을
#선비촌
#향교
기획 특집
다시 새롭게, 희망을 품다
시민이 발견한 숨은 여행지 지속 가능 여행학교
주민의 눈으로 바라보는 ‘진짜 전주’ 찾기어둑어둑해진 오후 6시. 서학동 예술마을 피크니크 아트카페에 사람들이 하나둘 모이기 시작했다. 3주 차 교육을 받기 위해 모인 지속 가능 여행학교 ‘시민들의 눈으로 전주 다시 보기’ 1기 교육생들이다. 지속 가능 여행학교는 전주 시민이 직접 전주의 관광자원을 찾도록 돕는 시민교육 프로그램으로, 10월 23일 개강해 오는 12월 10일까지 진행된다.이번 교육은 지속 가능 여행학교의 세 번째 시간으로, 1주 차에는 개강식과 함께 초대 지속 가능 여행학교 교장 김용택 시인의 강연으로 진행되었고, 2주차에는 박찬주 관광두레PD와 함께 대전시 대덕구의 공정 관광 프로그램을 체험했다. 이번 시간부터는 서학동 예술마을, 전라감영, 팔복예술공장 등을 돌아보며 시민의 눈으로 숨어 있는 진짜 전주의 관광자원을 찾아낼 참이다.서학동 예술마을 부촌장인 강이소 작가와 함께 서학아트스페이스를 시작으로 달빛 아래 골목 탐방이 시작됐다. 전시 중인 작품들에 대한 설명을 듣고, 마음에 드는 작품들의 사진도 찍으며 자유롭게 즐긴 뒤 찾은 곳은 알록알록 색실로 짠 자수 작품들이 가득한 620 공방. 원래 40년간 막걸리 집이었던 곳이 공방으로 탈바꿈했다는 부촌장의 설명이 탐방에 재미를 더한다. 갤러리와 작가 작업실, 게스트하우스 등 각 공간을 찾을 때마다 질문을 쏟아내는 교육생들의 모습에서 남들이 미처 보지 못하고 있는 특별하고 색다른 공간을 찾겠다는 굳건한 의지와 뜨거운 열정이 엿보였다.한옥마을 관련 콘텐츠 사업에 종사하는 유수정(29) 씨는 “전주의 대표 관광지인 한옥마을과도 가깝다는 이점을 살려 서학동 예술마을 관광 콘텐츠를 만들면 좋겠다”며 서학동 예술마을의 관광 콘텐츠화에 긍정적인 생각을 밝혔다. 다른 교육생들 역시 이번 탐방이 평소 휙 둘러보고 말았거나, 몰라서 지나쳤을 공간들을 발견한 소중한 시간이었다며 입을 모았다.가장 전주다운 여행 콘텐츠를 준비하는 시간달빛 아래 골목 탐방을 마친 교육생들은 사계절공정여행 백영화 대표의 ‘마을과 함께 꿈꾸는 여행’ 강연을 듣기 위해 출발지에 다시 모였다. 사계절공정여행은 주민과 함께 문화, 역사, 자연, 산업, 사람 등 다양한 자원을 발굴해 활용함으로써 지역경제 활성화를 이끄는 곳이다. 백영화 대표는 “왜 하필 성동구 마을 사업을 하게 됐을까” 하는 화두를 던지며 자연스럽게 교육생들의 집중과 관심을 끌어냈다. 정답은 자신이 오랫동안 살아온 터전이라는 것. 이는 곧, 전주가 지속 가능한 여행도시가 되기 위해서는 그 누구보다 주민 스스로가 나서야 한다는 의미였다. 백 대표는 성수동 담벼락을 꽃으로 채운 할아버지의 소소한 이야기부터 양평 두물머리 ‘뚜벅뚜벅’ 시리즈, 제주도 ‘하례리 이틀 살기’ 등 공정여행 사례를 선보이며 전주에서 발굴할 수 있는 관광콘텐츠에 대해 교육생들과 함께 심도 깊은 논의를 이어 갔다. 강의 후 이어진 질문 시간. 교육생들은 전주다운 것들을 어떻게 관광콘텐츠화할 것인지에 대해 질문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단순히 자원을 발굴하고 콘텐츠화하는 걸 넘어 현지인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될 만한 것인지, 전주만의 차별화를 담아내고 있는지 등 날카로운 의견을 내기도 했다.서울에서 여행사에 다니다 휴직 중이라는 이호준(25) 씨는 “지속 가능한 여행학교를 통해 전주의 숨겨진 관광콘텐츠를 확인하고, 소소한 소재도 관광자원으로서 충분한 가치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며 “생각의 틀을 깨고 색다른 관점에서 여행을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고 소감을 전했다. 그의 말처럼 지속 가능 여행학교가 전주의 숨겨진 관광콘텐츠를 발굴해 전주가 먹고 마시고 노는 게 전부인 관광도시가 아니라 여행을 통해 그 도시를 존중하고 사랑하게 되는 지속 가능한 여행도시로 새롭게 출발하는 데 초석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2020.11.23
#국가대표
#관광거점도시
#공정여행
#착한여행
“전주다움 찾기가 지속 가능 여행의 출발”
김용택 시인, 지속 가능 여행학교 교장 인터뷰
지속 가능 여행학교 교장을 맡게 된 이유가 궁금합니다.전주시가 ‘전주다운 여행도시’를 준비한다기에 참여하게 됐어요. 이번 지속가능 여행학교는 그 새로운 출발을 돕는 학교라 할 수 있겠네요. 선생님께서 생각하시는 지속 가능한 여행도시는 무엇일까요?과거의 여행이 유명 관광지를 찾아다니는 여행이었다면, 요즘엔 소소할 곳일지라도 지역 특색을 즐길 수 있는 로컬여행이 대세입니다. 잘 알려지지 않았더라도, 지역색을 담은 새로운 것들로 채워진 도시가 지속 가능한 여행도시입니다. 그렇기에 전주는 음식, 판소리, 덕진공원 등 늘 봐 온 것들이 아닌 가장 전주적인 것들을 발굴해서 활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일을 시민이 직접 할 수 있도록 판을 깔아 주는 게 지속 가능 여행학교지요. 판을 깔아 준다는 게 구체적으로 어떤 말씀일까요?시민들이 스스로 관광자원을 찾아내는 힘을 길러 주는 거지요. 가령, 시민이 알지 못하는 곳, 혼자서 할 수 없는 일들을 소개해 주는 거예요. 그러면 시민들은 이 지속 가능 여행학교를 통해서 몰랐던 전주를 알게 되고, 알던 전주는 더 깊이 이해하게 되는 거죠. 지속 가능한 여행도시는 결국 그 지역 사람들이 만들어 가는 것이거든요. 그렇다면, 여행학교의 궁극적인 역할은 무엇인가요?전주 시민들로 구성된 교육생들이 익히 알고, 봐온 것들 말고 전주의 새로운 것들을 알아가고, 콘텐츠화 하도록 돕는 게 지속 가능한 여행학교의 역할입니다. 시민들이 전주의 숨겨진 보물 같은 새로운 여행지를 찾고, 프로그램이나 관광상품을 만들어 전주가 지속가능한 관광도시로 나아가는 데 기여한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요.
#섬진강시인
전주 밖 전북
전주에서 진안까지
세상의 모든 예술은 ‘수작’으로 어우러진다
아름다운 수작, 전주공예품전시관과 목우헌등잔 밑이 어두울 때가 있다. 지척에 두고도 그 매력을 쉽게 알아차리지 못할 때도 이 속담은 유효하다. 전주공예품전시관이 위치한 태조로를 거닐며 뜻하지 않게 늦가을의 햇살을 선물로 받는다. 길게 늘어선 회화나무와 간간 알맞게 서 있는 단풍나무 그리고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가 방짜 유기 같은 그림자를 도량에 맞게 펼쳐낸다. 그 순간 나무의 그림자를 통해 제 존재를 드러내는 늦가을의 마지막 햇살이 마치 판소리의 한 대목처럼 반갑기만 하다. 전주공예품전시관 오목대 전통 정원 앞 작은 연못에 잠시 발길을 묶는다. 마침 연못에는 어디에서 날아들었는지 단풍잎 몇 장이 수면 위 가을 하늘을 덮고 있다. 그 옛날 전주 땅에 이름 붙이고 살았을 이름 모를 장인의 거친 손처럼 단풍잎이 유독 붉다. 작은 연못에서 단풍잎에 깃든 손 하나를 주워 든다. 붉은 단풍잎 하나를 주워 들고 옛사람이 새긴 무늬를 요모조모 상상하고 있을 즈음, 전주공예품전시관의 육중한 나무 대문이 빗장을 연다. 전주공예품전시관은 ‘손의 도시’ 전주의 수공예품 문화를 다각적으로 느끼게 하고 체험하고 판매하는 ‘수공예 종합 플랫폼’이다.여섯 채의 한옥 중 명품관과 판매관 사이 앞마당이 유독 눈에 환하다. 한옥에 산다면 이런 마당 하나쯤 소유하고 싶다는 욕심이 불현듯 솟구친다. 명품관 옆에 전시된 까치호랑이 목공예품도 그 욕심에 한몫 더한다. 한옥 처마를 비집고들어서는 공짜 햇살을 오래 밟고 서 있다가 판매관 쪽으로 발길을 옮긴다. 판매관은 전국 수공예품 740여 종을 전시·판매하는 공간답게 눈요깃거리가 가득하다. 종류도 매우 다양하여 마치 수공예가들의 재미있는 수다를 한자리에서 듣는 기분이다. 어떤 수공예품은 굳이 그 쓰임을 모르더라도, 오묘한 기품을 선물하기도 한다.그런 뜻밖의 감정을 더 오래 간직하고 만끽하고 싶다면 곧장 명품관으로 향하는 것도 좋은 선택이다. 명품관은 전라북도 무형문화재의 작품을 관람할 수 있는 공간이다. 이곳에서는 가장 전주다운 것이 무엇인지를 새삼 깨닫게 된다. 만약 마음에 드는 작품을 오래 들여다보다가 오리무중 갈피를 잃는다면, 그곳에 상주하는 해설사에게 설명을 청해보는 것도 좋은 수공예 감상법 중 하나이다. 나머지 명인명장관과 전시1관은 판매보다는 전시를 주목적으로 조성된 공간이다. 마침 명인명장관에 발길을 더 했을 때는 특별기획전 전시가 한창이다. 과거 조선의 사내들이 전장(戰場) 혹은 의례나 심신 단련을 위해 사용했을 활과 화살 앞에서 오목대 전통 정원 앞 작은 연못에서 만났던 동심원이 오랜 호흡을 붙든다.순간 명인명장관에서 쏘아 올린 화살이 전주공예품전시관과 지척에 있는 목우헌에 날아가 꽂힌다. 목우헌은 전주한옥마을 목공예 공방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장소다. 명인명장관에서 본 화살촉은 어쩌면 목우헌의 주인장인 김종연 명장의 손때 묻은 조각도가 되어 전통 목침과 다식, 약과 틀, 서각 등의 장식품을 그동안 새기고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목우헌 공방에 놓인 한 쌍의 까치호랑이를 다시 보면서 전주공예품전시관과 목우헌은 어쩌면 처음부터 서로에게 아름다운 수작이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멀고 아득한 수작, 진안 손내옹기와 도통리 청자 요지전주가 등잔 밑이 어두웠다면, 진안은 멀고 아득하다고 표현하는 게 맞을 것 같다. 진안 백운면 평장리에 있는 손내옹기를 찾아가는 길에서 스치는 마령 뜰은 잘 빚은 옹기를 닮았다. 태초에 그 뜰에서 흙을 떠다 옹기를 구웠을 옹기장이들의 손은 과연 어떤 모양이었을까. 끝내 불을 이기고 돌아온 옹기를 마주하며 미소 지었을 그 표정은 홀연 어떤 빗살무늬토기를 닮아 있었을까.손내옹기의 주인장인 이현배 진안고원형 옹기장을 만난다. 그의 손끝에서 봄과 여름과 가을과 겨울이라는 시간이 모두 한 옹기의 빛깔에 담긴다. 이현배 옹기장은 1993년부터 진안 백운면 평장리에 정착했다고 한다. 이후 독자적으로 손내옹기를 빚어오면서 다양한 전시 활동을 기획하고 추진하기에 이른다. 특히 2018 평창올림픽에서는 ‘평화의 밥상’이라는 주제로 남과 북의 화합을 기원하는 전시회를 열기도 했단다. 요즘에는 아이들과 노인을 위한 공공 미술 프로젝트에도 마음 한 조각을 내주면서 진안 전통 옹기에 스며 있는 옛 무늬들을 다양한 방식으로 복원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이현배 옹기장과 몇 마디 대화를 섞다 보면 어느샌가 둘의 대화는 잔잔한 섬진강의 물줄기를 타고 흐른다. 어느 지점에서는 의미의 물살이 빠르고, 어느 지점에서는 대화의 물살이 한없이 느리다. 또 어느 지점에서는 징검돌을 놓을 수 있을 만큼 옹기에 관한 모든 이야기가 잔잔하고 고요하기도 하다. 그 대화는 마치 옹기를 굽는 전통 가마처럼 아늑하고 웅숭깊다. 물레를 왼발로 수없이 당기며 수시로 흙과 물과 침묵을 섞어 손내옹기의 넓은 어깨를 다듬어 나갈 때도, 그는 반은 알아듣고 반은 알아듣지 못할 이야기로 시간을 건넌다. “이 장독에 두른 띠를 눈썹이라고 불러요.” 그 말과 동시에 이현배 옹기장은 장독의 눈썹에 일곱 개의 점무늬를 연이어 찍어 낸다. 무슨 의미가 담겨 있느냐고 묻는 물음에 그는 소리 없는 웃음만 빚어내며 특별한 의미는 없다면서 물레를 멈춘다.특별한 의미가 없다는 말의 의미가 마치 1,000도가 넘는 불길을 견디고 나온 잘생긴 손내옹기 같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그는 옹기를 굽는 가마 앞에서도 불을 넣을 때는 뜸을 들이듯 지긋이 지펴야 함을 재차 강조한다. 그래야 흙이 불을 이길 수 있다는 말을 들릴 듯 말 듯 곁들인다. 마지막 인사 끝에는 진안역사박물관의 매사냥 특별전에 전시한 새 모양 토기에 관한 이야기를 곁두리로 전한다. 문득 생각한다. 흙이 한 마리의 새로 빚어져 비화하기까지는 얼마나 뜨거운 시간을 견뎌 내야 하는 걸까. 그 시간을 돌이키며 다시 텅 빈 가마 안을 들여다보니, 모든 옹기가 멀고 아득하게만 보인다.손내옹기를 빠져나와 성수면 중평마을에 있는 도통리 청자 요지를 찾는다. 마을 사람에게 물어물어 찾은 도통리 청자 요지에는 정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고요함만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문득 이현배 옹기장의 ‘특별한 의미가 없다’라는 말이 순간 떠올라 한참을 혼자 웃는다. 어쩌면 흔적도 없이 사라진 그 가마터에서 우리가 진정으로 마주할 수 있는 것은 켜켜이 쌓아 온 ‘산산조각의 힘’일지도 모른다. 도통리 청자 요지 작은 느티나무 아래 무더기로 쌓여 있는 그 옛날의 청자 조각들을 보면서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을 얻을 수 있지’라고 말하던 한 시인의 문장이 전주와 진안의 여행길을 이으며 오랜 수작을 걸어 온다. 글 김정배 | 글마음조각가, 원광대 교수진안 달구름 마을에서 태어나 전주에서 살고 있다. 오른손으로는 글을 쓰고, 왼손으로는 그림을 그리는 가장 무명한 예술가. 시평집 와 포토 포엠 를 펴냈으며, 현재 원광대학교 융합교양대학의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전주공예품전시관
#목우헌
#손내옹기
노송동에 찾아온 책방, 물결서사
7인의 예술가 물왕멀 팀
아티스트 랩(Artist Lab) ‘물왕멀’ 팀을 소개해주세요.전주에서 활동 중인 일곱 명(임주아 시인을 포함해 서양화가 서완호와 에니메이션 크리에이터 최은우, 한국화가 고형숙, 영상 크리에이터 민경박, 성악가 김성혁, 사진가 장근범)의 청년 예술가들로 이루어진 프로젝트 팀입니다. 각기 활동하는 분야가 달라서 함께 작업할 기회는 많지 않았어요. 그러다 2017년 선미촌에서 열린 ‘양성평등’ 전시를 준비하며 함께 작업을 시작했고, ‘물왕멀’ 팀을 만들게 되었어요. 대표인 임주아 시인이 북 매니저이자 책방 기획자 경력이 있어 책방을 여는 데 많은 도움을 받고 있답니다. 책방 이름인 ‘물결서사’의 의미는 무엇인가요? 물결서사의 도로명 주소는 ‘물왕멀’로, 물이 많은 마을이라는 뜻입니다. 중노송동의 옛 지명이기도 하고요. 책방 이름에 동네 이름을 담아보자는 팀원들의 의견을 반영해서 지은 이름이에요. 지명에서 풍기는 물의 이미지를 살려 ‘물결’이라는 단어와 오늘날의 서점을 뜻하는 ‘서적방사(書籍放肆)’의 줄임말 ‘서사’를 결합했지요. 예술가들은 자기만의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잖아요. ‘이야기’의 의미도 지닌 ‘서사’라는 말에 확 이끌렸어요. 선미촌에 책방을 여는 특별한 까닭이 있다면요? 선미촌은 유리성 같은 공간이에요. 눈에 빤히 보이지만, 쉬이 발길이 가지 않는 지역이니까요. 수십 년 전주의 그늘이 될 수밖에 없었던 선미촌을 활력 넘치는 공간으로 변화시키자는 것이 ‘물결서사 프로젝트’에요. 한편으로는 전주시에서 매입한 건물을 예술가들이 활동 공간으로 활용할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어요. 근데 왜 하필 책방이냐고, 많이 물어 보세요. 내가 사는 동네, 내가 걷는 골목에 책방이 하나쯤 있었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을 오래전부터 해왔어 요. 획일화된 프랜차이즈 서점이 아닌 사람 냄새 나는 작은 책방들이 점점 늘어나야 한다고 생각해요. 책방이야말로 동네의 문화예술 거점 공간으로 사람과 사람을, 저자와 독자를 다정하게 이어주는 곳이니까요. 또한 선미 촌이 간직해온 인권 억압의 역사를 전달할 매개로 ‘책’만한 것이 없지요. 전주에도 꽤 많은 동네 책방이 있는데요. ‘물결서사’만의 특징은 무엇인가요? 책방 운영자들이 각기 다른 분야의 예술가들로 이루어졌다는 점이 큰 특징입니다. 예술가들이 다달이 돌아가며 문화예술 워크숍을 진행할 예정인 데요. 저마다 주제를 가지고 발표회, 파티, 체험 등 자유로운 형식의 프로그램을 선보이려 합니다. 도서 선정에도 차별화를 두려 해요. 워크숍 주제와 짝을 이루는 책과 함께 사회・예술과 관련한 화제의 책을 선정하려 해요. 그달의 가장 뾰족한 이슈를 다룬 책, 예술가들의 취향과 정서가 담긴 책,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소개하고 싶은 책 등이 서가에 꽂히겠지요. 물결서사가 전주 시민에게 어떤 책방이 되길 바라나요? 시민들이 자주 찾아와 마음에 맞는 책 한 권 사갈 수 있는 책방이 되었으면 합니다. 책을 살 수 있는 동네 서점이면서, 주민들뿐 아니라 시민들의 발길을 선미촌 일대로 유도하는 문화공간이 되었으면 좋겠구요. 또한 독서문화를 전파하는 책방을 꿈꾸고 있어요. ‘물결서사’에서 책을 구입한 방문객들이 집으로 돌아가 ‘나만의 책장’을 꾸밀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책방 ‘물결서사’ 예술가들이 추천하는 책들을 만나볼 수 있는 전북 최초 예술도서전문 책방. 선미 촌의 폐공가를 리모델링한 책방이다. 선 미촌을 활력 있는 공간으로 만들기 위한 고민과 인권에 대한 고민이 만나 문을 열 게 되었다. 또한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 되는 문화예술 공간이기도 하다. 주소 l 전주시 덕진구 물왕멀2길 9-6
2020.11.10
#물결서사
#책방
#물왕멀
전주의 꽃심
“전주의 뿌리를 찾는 일에 함께하겠습니다”
송현석 씨가 소개하는 보물 같은 수집품
묵은 추억을 한 권 책으로 지금은 관광지인 전주한옥마을 한복판에 낙타표 문화연필 공장이 있었다고 해요. 1940년대니까 제가 태어나기 한참 전이에요. 문화연필은 전주에 본사가 있는 향토 기업이었지요. 공장 전경이 담긴 안내서를 비롯해 여러 장의 포스터와 연필 케이스까지 문화연필에 관련된 이 많은 자료를 어떻게 가지고 있냐고요? 수집 활동을 하는 이들과 교류하던 중, 각종 자료가 덕지덕지 붙어 있는 낡은 연습장을 우연히 손에 넣게 되었어요. 말 그대로 고물이었어요. 아마 쓰레기 더미에 버려져 있었을 거예요. 그 자료들을 일일이 오려서 시험지 종이 위에 붙이고 비닐을 씌운 뒤 앨범에 철을 했어요. 그런 과정을 거쳐 한 권의 책을 완성했어요. 얼굴도 알지 못하는 누군가의 묵은 추억을 새로이 옮겨 보물로 되살려 냈다고 생각해요. 평범한 졸업 앨범이 기록 유산으로 전주농고와 전주여고 졸업 앨범 역시 수집가들과의 교류를 통해 구했어요. 각각 1937년과 1940년도 앨범인데 상태가 썩 좋은 편이에요. 한 장, 한 장 넘기다 보면 의미 있는 사진이 눈에 띄어요. 운동장에서 일장기를 올리는 장면을 통해 우리 근대사의 아픔을 만날 수 있어요. 풍남문과 오목대, 한벽굴 같은 명소들의 당시 풍경을 발견하면 새삼 반가운 마음이 들지요. 학생들의 모습을 엿보는 것도 재미있고요. 80여 년 시간 동안 대부분의 졸업 앨범이 불에 타거나 분실되고, 제지공장에 팔리는 등 수명을 다했을 거예요. 지금껏 용케 살아남았다는 사실만으로도 희소가치가 충분한 기록 유산이지요. 이 밖에도 전주 소재의 양조회사인 월성소주에서 만든 달력, 전주 태생인 김해강 시인 친필 편지 등 전주의 근현대사를 통과해 온 자료들을 가지고 있어요. 지금은 사라진 것들을 찾아서 예전엔 각 도별로 ‘도민증’이라는 게 있었어요. 지금의 신분증이었죠. 1948년 런던 올림픽을 앞두고 국가대표팀의 참가 비용을 마련할 목적으로 ‘올림픽 후원권’이 발행되었어요. 우리나라 최초의 복권인 셈이죠. 이 외에도 우표와 옛날 동전, 호롱불과 성냥갑까지. 지금은 쓰이지 않지만 한때는 서민들과 일상생활을 함께하던 것들을 수집하고 있어요. 본격적으로 수집을 시작한 건 20여 년 전이에요. 어릴 적부터 우표나 동전 모으기를 즐기다가 성인이 된 후까지 쭉 이어 왔으니 꽤나 오랜 취미이지요. 단순히 소장을 목적으로 수집을 시작했는데, 역사적 가치가 있는 수집품을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다는 생각에 이르게 되었어요. 학창 시절과 비교해 오늘날의 전주 풍경은 몰라보게 달라졌어요. 특히 등․하굣길을 걷던 기억이 향수로 남아 있어요. 완주군 소양에서 출발해 아중리를 지나 시내에 이르는 도로 양옆으로 포플러 가로수가 아름드리 늘어서 있었어요. 그 풍경이 사라진 게 안타까워요. 하물며 사람들의 생활상이 변화한 건 말할 것도 없겠지요. 기록물이 없었다면 그 변천사를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우리의 뿌리를 잇는 뜻깊은 일 오늘날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모든 것이 훗날에는 기록물이 될 수 있겠죠. 지난날의 기록물을 통해 과거의 역사를 속속들이 이해하듯이, 지금 우리의 삶을 내일에 알릴 귀한 사료가 될 거예요. 하찮은 물건이라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 있다면 말이에요. 그런 마음으로 모아 온 물건들을 전주시의 기록물 공모전에 꾸준히 출품할 생각이에요. 전주시에서 뜻깊은 일을 하는 만큼, 저도 작게나마 보탬이 되고 싶어요. 기록물 중에는 부식되기가 쉬워 보관이 까다로운 것들이 많거든요. 개인이 보존하기에는 한계가 있는데, 전주시가 나서서 관리해 주니 고마울 따름이에요. 앞으로도 우리의 뿌리를 찾고 이어가는 작업에 동참하겠습니다. 완주군 소양면에서 태어나고 자랐으며, 전주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송현석 씨는 전북을 거의 떠나본 적 없는 우리지역 토박이이다. 어릴 적부터 수집이 취미였던 타고난 수집가이다.
2020.11.04
#복원
#역사
#수집
3·1운동 100주년, 전주 그날의 기억
전주 3·1운동의 숨결이 머문 곳
학생들의 독립운동을 주도한 신흥고신흥고는 기전여학교와 함께 전주 지역 학생 독립운동의 산실이다. 1929년 항일학생운동 등 신흥고 학생들은 항일독립투쟁을 적극적으로 전개하였다. 1937년 신사참배 종용에 거부하면서 일제에 의해 학교가 폐쇄되기도 했다. 현재 신흥고등학교 기념관 내에는 전주 3·1운동의 치열했던 기록들이 남아 있다. 전주시는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이러한 역사를 기리기 위해 신흥고 앞 버스정류장을 3·1운동 테마정류장으로 조성할 예정이다. 정류장에는 지역 작가들이 만든 3·1운동 상징 조형물과 함께 역사 기록 현판이 전시된다.주소 | 전주시 완산구 서원로 399 전화 | 063-232-7070 전주 3·1운동의 횃불 밝힌 서문교회서문교회는 1893년에 세워진 호남에서 가장 오래된 교회이자 전주 3·13만세운동을 총지휘한 김인전 목사가 담임으로 있던 교회이다. 또한 1921년 부임한 배은희 목사 역시, 항일민족단체였던 신간회의 전주지부장을 맡아 교육과 농촌부흥운동에 힘썼다. 현재 서문교회 내에는 전국에서 가장 오래된 종탑이 남아 있다. 직경 1m의 커다란 종이 달려 있는 이 종탑은 1908년에 세워져 1944년 일제 말기에 강제 공출되었으나, 해방 후 다시 제작된 아픈 기억을 가지고 있다.주소 | 전주시 완산구 전주천동로 220 전화 | 063-287-3270 독립운동가 김인전 서문교회 목사1876.10.7. ~ 1923.5.12.일제 강점기의 목사이자 독립운동가이다. 충남 서천에서 태어나 1914년 평양장로회신학교를 졸업하고 목사 안수(按手)를 받았다. 1914년 전주서문교회 제2대 목사로 부임해 비밀리에 독립운동단체를 조직하고 전주 3·1운동의 지도자로 활약했다. 중국 상하이로 망명 후 대한민국 임시정부 임시의정원 의장을 지냈다. 1921년 안창호 등과 함께 한·중 연대 조직인 ‘중한호조사(中韓互助社)’를 조직하였고, 1922년에는 김구·여운형 등과 함께 한국노병회(韓國勞兵會)를 발기하여 군대 양성과 독립운동 비용 조달에 주력했다. 1923년 48세의 나이로 순국하였으며, 1980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받았다. 김구 선생이 머물렀던 학인당1949년 해방 정국, 백범 김구 선생과 해공 신익희 선생이 전주를 방문해 학인당에 거처를 정하고, 이곳에서 임시정부 인사들과 회동했다. 그들이 머물렀던 방은 현재 ‘백범지실’, ‘해공지실’이라는 이름이 붙여져 온전히 보존되고 있다. 임시정부 인사들을 비롯한 귀빈들이 주로 머물렀던 인재 고택 학인당은 일제하에서도 민족 문화 보존에 앞장을 선 상징적인 건물이다. 주소 | 전주시 완산구 향교길 45 전화 | 063-284-9929 꼿꼿한 시인의 기개가 서린 비사벌초사신석정 선생은 친일 시를 한 편도 남기지 않았으며, 일제 말기에 창씨개명을 끝까지 거부한 시인이다. 노송동에 위치한 비사벌 초사는 시인이 1954년 전주고등학교 교사로 재직할 때부터 별세한 1974년까지 시인이 직접 가꾸고 살았다. 오직 시를 향한 열정만으로 집을 채웠고 비사벌 초사에서 예순여덟을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신석정 시인이 떠난 후 이 집을 인수한 부부는 현재까지 이곳에 머물면서 ‘비사벌초사’라는 전통찻집을 운영하고 있다.주소 | 전주시 완산구 관선4길 42-9 전화 | 063-231-3118
2020.10.29
#3·1운동
#신흥고
#서문교회
#학인당
#비사벌초사
한국도로공사 전주수목원
풀 한 포기에서도, 봄을 느끼다
숲이 좋은 것은 누구나 다 안다자연에 관심이 많아지고 여가를 활용하고자 하는 이들이 늘어나면서 삼림욕이나 숲 산책, 숲 해설 등 다양한 방식으로 숲과 자연을 느끼고 싶어 한다. 그런 분들이 자주 묻는 질문이 있다. “가장 추천하고 싶은 산은 어디인가요?”, “전주에서 제일 좋은 숲은 어딘가요?”, 그럴 때면 늘 내 대답은 같다. “제일 가까운 산이요.” 쉽고 자주 갈 수 있는 곳이 좋은 숲이다. 그래서 자연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먼저 집 앞에서부터 시작하는 게 좋다. 하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이 주로 도시이다 보니 콘크리트와 아스팔트 투성이다. 길가나 담 틈에 자라는 식물을 발견하기도 어렵고 발견한다고 한들 그 이름도 알지 못하니 궁금증과 답답함이 더할 따름이다. 나무나 풀 이름을 알고 싶어 하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숲해설가도 아니고 따로 두꺼운 도감을 사지도 않았다면 가볼 만한 곳으로 식물원, 수목원, 휴양림을 추천한다. 식물원은 너무 인공적이고 휴양림은 너무 멀다. 그래서 수목원이 그나마 가장 가기 쉬운 숲이다. 아이들과 함께 떠난 수목원 나들이 공기가 제법 차가웠던 어느 날, 한국도로공사수목원 전주수목원을 찾아가 보았다. 생기 넘치는 봄을 느끼고자 들렀는데 아직 봄이 덜 왔다. 덜 왔다는 것은 다른 한편으로는 이미 오기 시작했다는 말이기도 하다. 숲이 어떻게 한 해를 시작하는지 생기발랄한 모습을 보기 위해서 아이들과 함께했다. 이제 막 여덟 살이 된 하서준 군과 장도율 군이다. 아이들은 관찰이나 산책 등 정적인 활동보다는 달리고 소리 지르고 노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아이들과 산책하며 중간중간 놀아 보았다. 아이들이 커다란 나뭇잎 한 장을 주웠다. 버즘나무가 작년 한 해 열심히 광합성을 하고 가을에 떨어뜨린 잎이다. 만져 보니 겨울을 나면서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하여 바삭하게 말랐다. 구멍을 내 가면처럼 써 보기도 하고 손으로 부셔 보기도 한다. 나뭇가지에 나뭇잎을 꿰어 들고 다니다 휙 버린다. 내달리다가는 술래잡기를 하자고도 하고 퀴즈를 내기도 한다. 그런 게 어린이의 자연스러운 모습이다. 자연은 마치 어린이처럼 술래잡기하듯 어디로 숨어 버리고 알쏭달쏭 퀴즈처럼 내게 정답을 찾아보라고 문제를 던져 주기도 한다. 자연의 아름다움과 놀라움을 쉽게 찾아내면 좋겠지만 수목원에서 깊이 있는 원시 자연의 맛을 느끼기란 쉽지 않다. 계절의 변화에 따라 거기에 맞게 대응하는 자연의 모습을 살짝 엿볼 뿐이다. 남도의 정취가 느껴지는 한국도로공사 전주수목원집 앞 공원의 조경도 계획적이다. 계절별로 항상 볼 수 있는 자연이 있어야 한다. 하물며 수목원의 설계와 조경은 더 하면 더하지 못하지 않다. 수목원마다 각자의 특징을 갖고 있고, 그 안에서 조화롭게 배치가 되어 있다. 한국도로공사 전주수목원에는 담양의 죽녹원을 연상시키는 대나무숲, 겨울에도 잎을 떨어뜨리지 않고 녹색을 간직하는 늘푸른넓은잎나무(상록활엽수)들이 많이 심어져 있고, 바늘잎나무, 잎지는넓은잎나무(낙엽활엽수)들도 적절히 배치가 되어 있다. 이국적 정취를 느낄 수 있는 다양한 양치식물과 선인장, 관엽 식물들이 잘 가꿔진 유리온실, 현대적인 정원의 모습을 엿볼 수 있게 꾸며진 정원박람회 작품, 중간중간 조각상들도 있고 그네도 매져 있다. 연인이나 가족끼리 오면 딱 좋은 곳이다. 한국도로공사 전주수목원의 특징을 한 가지만 말하라고 한다면 한눈에 봐도 남도의 정취를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남부 수종들이 눈에 많이 띈다. 늘푸른넓은잎나무(상록활엽수)들과 배롱나무, 대나무가 그것인데 특히 신석정 시인이 “내가 죽거든 무덤 앞에 태산목을 심어 달라”고 말할 정도로 사랑했다는 나무, 태산목이 여러 그루 심어져 있다. 개인적으로 태산목을 좋아하는데 목련과 중에 유일한 늘푸른나무(상록수)이며 꽃이 크고 화려하며 향이 좋다. 아직 꽃은 피지 않았지만 잎이 반들반들하니 한번 만져 보고 싶은 질감을 갖고 있다. 아직은 한 아름이 안 되는 나무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힘들고 지친 이들이 기댈 수 있는 거목이 될 것이다. 애기동백도 붉게 정열적인 모습을 수줍게 드러내며 피어 있고, 배롱나무도 매끈한 나무껍질을 자랑한다. 다른 수목원에서 보기 어려운 모습들이다. 꽃을 피우며 새봄을 준비하는 자연아직은 앙상해 보이는 나무들도 가지 끝마다 겨울눈이 통통해져서 조만간 새잎을 낼 준비를 하고 있다. 잎을 떨어뜨리는 나무들은 햇빛을 가로막지 않으니, 햇빛이 그대로 땅에 내려와 풀들이 햇빛을 만날 수 있는 시간을 준다. 이미 많은 나무들 아래엔 셀 수 없이 많은 봄풀들이 자라고 있다. 주로 가을에 싹을 내고 그대로 겨울을 난 후 이른 봄 누구보다 빨리 꽃을 피우는 로제트 식물들이다. 우리가 흔히 아는 달맞이꽃, 냉이, 민들레, 뽀리뱅이, 질경이가 바로 그런 로제트 식물들이다. 이른 봄, 거대한 나무 틈 속에서 조용히 꽃 피울 준비를 하는 로제트 식물들은 새봄을 준비하는 우리의 마음도 설레게 한다. 하지만 이러한 의미와 이야기는 관심이 없는 이에겐 보이지 않는 것이다. 결국 자연에 대한 이야기는 관심과 사랑을 가지고 꾸준히 관찰하는 것이 제일 좋은 방법이다. 너무 멀리 있는 희귀한 식물을 보기보다 발아래 가까이 있는 풀 한 포기부터 시작하는 것이 바람직한 자연 공부라고 생각한다. 글 황경택 | 생태만화가황경택 씨는 만화가이자 생태놀이 안내자다. 숲에서 그림을 그리며 배운, 지혜로운 동식물의 생존 방법을 알려주기 위해 만화를 그리고 재미있는 생태놀이도 만들고 있다.
2020.10.28
#숲
#나무
#전주수목원
#유리온실
#정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