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에 해당하는 글 310건
전주 여행
취향을 걷다
봄 향기에 젖은 푸른 논길 따라, 농가체험
유난히 길고 지루하게 느껴지던, 끝이 보이지 않던 겨울을 지나 보내고 찾아온 봄이 반갑다. 밤새 내린 봄비에 메말랐던 가지에 초록 잎이 올라오고, 꽃들이 얼굴을 내보이니 소리로 한 번, 색으로 한 번 진짜 봄이 찾아왔음을 느낄 수 있었다. 봄 향기 따라 자연으로 떠나는 여행“언제 밥 한번 먹자” 대신 “코로나 끝나면 만나자”라는 말이 인사치레가 된 지 어언 2년이 지났다. 코로나19가 없는 세상을 모두 그리워하고 있는 요즘, 나에게 가장 절실한 것은 ‘여행’이었다. 반복되는 일상에 휴식과 전환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 찰나, 출근길 따라 점점 피어오르는 꽃망울들을 보니 실감할 수 있었다. ‘정말 봄이 왔구나!’ 봄이 왔는데 어떻게 그냥 지나칠 수 있을까. 당장이라도 앉아 있던 의자에서 몸을 일으켜 봄바람에 몸을 맡기고 봄 향기에 젖어 보고 싶다는 생각뿐. 이렇게 봄을 보내면 안 될 것 같은 생각에 오랜만에 조심스럽게 친구와 약속을 잡았다. 하루하루를 습관처럼 살아가고, 바쁜 일상 속에 몸과 마음이 지쳐 있을 땐 휴식만큼 좋은 처방전도 없다. 어디를 가면 좋을까 곰곰이 생각해 봤다. 소셜미디어(SNS)에서 유명한 장소도 좋고, 관광 명소도 좋지만, 평소와 다르게 색다른 매력을 찾아 떠나 보기로 했다. 코로나19로부터 안전하고, 안심할 수 있는 그런 여행지 말이다. 유유자적 그림처럼 펼쳐진 풍경을 감상하며 찬찬히 걸어 보는, 마음이 쉼을 얻을 수 있는 그런 여행을 떠나야지 싶었다. 그러다 문득 소박하지만 아름다운 자연을 벗 삼아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농촌 체험이 떠올랐다. 비옥한 땅을 일구고, 그 땅의 청정한 산물이 만들어 내는 건강한 맛을 찾아 떠나는 여행. 처음엔 무슨 농촌 체험이냐고 손사래 치던 친구도 봄바람에 익어 가는 제철 딸기와 푸릇푸릇한 밀 싹을 보러 가자는 말에 못 이기는 척 함께해 줬다. 답답한 회색빛 도심을 뒤로하고, 드넓게 펼쳐진 푸르스름한 논길을 따라 지금이어야만 갈 수 있는 여행길에 발을 내디뎠다.봄 따러 가는 딸기체험 농장 제철 과일은 이번 여행의 즐거움을 더해 줄 포인트라고 생각했다. 지금 계절의 맛과 향이 입 안에 퍼지면 괜스레 계절과 더 가까워진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탐스러운 새빨간 색과 달콤한 과육, 생각만으로도 군침 도는 과일. 이맘때는 딸기가 주인공이다. 싱그럽고 향긋한 봄 내음이 입 안 가득 찾아드는, 누가 뭐래도 나에겐 이만한 봄 과일이 없다. 전주에도 도심과 가까운 곳에 딸기 수확 체험을 할 수 있다는 곳이 있어 서둘러 예약부터 했다. 친구와 체험을 떠나는 날, ‘이런 곳에 딸기 수확 체험장이 있다고?’ 싶을 때쯤 레인보우팜을 알리는 표지판이 보였다. 신난 발걸음으로 레드하우스로 들어서니 깨끗한 수경재배 시설에서 자라는 딸기들이 눈에 띄었다. 그래서인지 아이와 함께 찾은 가족 체험객이 많았다. 아이들이 고사리 같은 손으로 잘 익은 딸기를 직접 따고, 그 자리에서 맛을 보며 엄지손가락을 들어 올리거나 함박웃음 짓는 풍경이 곳곳에 펼쳐졌다. 처음 해 보는 체험이라 걱정했는데 아이들도 쉽게 하는 걸 보니 안심이 됐다. 인상 좋으신 사장님이 친절하게 딸기 따는 방법을 알려 주셨다. 눈으로 잘 익은 딸기를 보고, 그 딸기 머리에 브이 손가락을 살포시 올린 뒤 그 손가락을 ‘안녕하세요.’ 고개 숙여 인사하는 느낌으로 내리면 ‘똑!’ 하고 쉽게 따진다. 친구와 두런두런 이야기도 나누고, 누구 딸기가 더 큰지 비교해 보기도 하며 즐겁게 체험하다 보니 어느새 바구니에 딸기가 한가득 채워졌다. ‘벌써 끝났어?’ 싶을 때쯤 다음 체험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레드하우스 옆 그린하우스로 이동하니 딸기 모종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는데, 집에서 키울 수 있도록 컵에 심어 가져갈 수 있었다. 한쪽에 아담하게 마련된 작은 텃밭에서 컵에 흙을 담고, 적당량의 물을 담아 줬다. 흙에 모종을 심도록 구멍을 만들어 줄 도구를 이용해 구멍을 내고 모종을 넣어 다듬으면 끝. 눈으로, 입으로, 감성으로, 오감 가득 채워 준 이 체험은 나른한 몸에 활력을 불어넣기에 제격이었다. 한 손엔 딸기 가득 쌓인 바구니가, 한 손엔 딸기 모종 컵이, 양손을 가득 채운 만큼 행복한 추억도 한 아름 쌓였다.우리 땅에서 자라는 우리 밀 이야기 딸기 체험으로만 농가 체험을 마치기엔 아쉬운 마음에 인근 우리 밀 체험장으로 향했다. 밀가루로 완성된 모습에만 익숙해져 있어 우리 밀이 자라는 모습이 궁금했다. 우리 밀 첫 체험은 밀밭 밟기였다. 사장님의 안내를 따라 도착한 밀밭. 국내 밀 재배는 보통 벼를 수확하고 난 뒤 씨를 뿌리고 이듬해 6월에 수확하는 이모작 재배 방식으로 이루어진다고 했다. 처음으로 제대로 마주한 밀밭은 생각보다 소소했다. 이것이 밀이라는 사실을 알고 보니 보였지만 모르고 언뜻 보면 잡초같이 보이는 이 푸른 싹이 밀이었다. 겨울의 문턱에서 푸른 싹을 틔우고 온몸으로 혹독한 겨울을 견뎌낸 이 싹. 그런데 이 싹을 밟아야 한다고? 의아한 표정을 짓고 있으니 사장님은 겨울 동안 얼고 녹기를 반복하며 생긴 땅속 얼음으로 인해 들뜬 밀 뿌리를 밟아 땅에 밀착시킴으로써 밀이 잘 자라도록 돕기 위함이라고 설명해 주셨다. 작물은 밟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는데, 밀이나 보리 같은 겨울 작물들은 밟아 줘야 더 잘 자란다는 이야기를 듣고 잘 자라라는 마음을 담아 한 발 한 발 정성을 다해 꾹꾹 밟았다. 신나게 밀 싹을 밟은 후 실내로 이동했는데 이곳에는 맷돌과 아이들이 가지고 놀 수 있는 장난감도 보였다. 첫 시작은 맷돌 체험이었다. 맷돌에 통밀을 넣고 돌리면 곱게 갈아진 껍질과 가루가 나오게 되는데, 검은색 종이에 물풀로 글씨를 쓰고 부드럽고 곱게 갈아진 가루를 뿌리니 하나의 작품이 완성됐다. 오늘 날짜까지 새겨져 있어 오늘의 추억을 오래 기억하게 될 아이템 하나가 생겼다. 맷돌 체험이 끝날 무렵 그 옆으로 눈을 돌려 통밀이 가득 담긴 ‘통밀바다’에 뛰어들었다. 들어가기 전에는 통밀이라 까끌까끌하고 거친 느낌일 것 같다고 생각했었는데 생각보다 부드러운 촉감에 놀랐다. 통밀을 던져 보기도 하고, 몸을 통밀로 덮기도 하면서 놀다 보니 어릴 적 모래사장에서 모래를 가지고 놀던 기억이 떠오르며 동심으로 돌아간 기분이 들었다. 오늘의 마지막 체험으로 밀 싹을 심어 보기로 했다. 밀 싹을 심는 체험장에는 우리 밀이 자라는 모습을 한눈에 볼 수 있었다. 이제 막 싹을 틔운 밀부터 다 자란 밀까지. 이제 이 밀을 심어야 한다. 밀 싹 심는 방법도 간단했다. 지역 내 카페에서 받아 재활용한 플라스틱 컵에 4/5 정도 영양분이 가득한 흙을 담는다. 그리고 통밀을 넣은 다음 물을 넣고 남은 공간을 흙으로 덮어 주면 체험은 끝, 잘 자라길 바라는 마음으로 기다릴 일만 남았다. 오늘의 즐거웠던 추억만큼 푸른 싹도, 넉넉한 마음도 피어나길. 딸기 따고, 우리 밀 체험하러 가는 길 딸기 수확 체험을 하는 전주레인보우팜은 전주시 덕진구 용정동 263-1에 위치한다. 체험은 2월부터 5월까지 진행되며, 체험 가격은 입장객 1인당 15,000원으로 예약은 필수다. 예약 페이지( naver.me/xyUjUdRr)를 통해 날짜와 시간을 확인하고, 단체 예약은 전화(010-9252-5810)로 하면 된다. 푸른 싹, 우리 밀을 가지고 즐기는 농가 체험도 색다른 재미가 있다. 전주시 덕진구 용덕길 21에 자리한 전주우리밀영농조합법인에서는 우리 밀을 이용한 밀밭 밟기, 요리 등 다양한 체험을 즐길 수 있는데, 이곳 역시 예약(063-255-6386)은 필수다. 글 정진영 l 자유기고가전북에서 초·중·고·대를 졸업했다. 국어국문학을 전공한 후 전주에서 10여 년 동안 지역 회사를 다니며 경력을 쌓았다. 영상제작 및 광고홍보대행사, 출판디자인 회사를 거쳐 현재 전주에 있는 콘텐츠 제작사에서 작가로 근무하고 있다.
2022.03.24
#농가체험
#여행
#딸기
#전주레인보우팜
#전주우리밀영농조합법인
당신과 더불어
지지 않는 꽃, 한지 꽃을 피우다
한지플로리스트 이미나
한지플로리스트라는 직업이 낯선데요, 소개 부탁드려요.한지플로리스트는 한지로 꽃을 만드는 공예가예요. ‘플로리스트’가 살아 있는 꽃을 다루는 직업이라면, 한지플로리스트는 종이로 꽃을 탄생시키는 사람인 거죠. 사실 한지공예라고 하면 가구나 소품의 문양을 만드는 일을 흔히들 생각하세요. 저 역시 처음에는 일반적인 한지공예를 배웠는데, 날이 갈수록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깊어졌어요. 저만의 것을 찾고 싶다는 생각 끝에 시작한 일이 지화(紙花, 종이꽃)공예예요. 꽃을 워낙 좋아하거든요. 지화공예를 하는 선배가 있는 김제까지 2시간 거리를 버스를 갈아타고 오가며 배웠는데요, 꽃 한 송이를 만들어서 돌아오는 길이 그저 행복했던 기억이 나요.생화와는 다른 지화공예의 매력은 무엇인가요?한지는 자연에서 태어난, 살아 있는 종이예요. 자연으로 자연을 표현하니 자연스러운 느낌이 배가 돼요. 유해하지 않은 친환경적인 소재이기에 꽃이라는 자연물에 더없이 어울리는 것 같아요. 또, 일반 종이와는 다른 한지 특유의 질감이 은은한 꽃잎의 결을 표현하기에 알맞아요. 한지 꽃을 받아 보신 분들 중 “조화 맞아요? 진짜 꽃 같아요!”라고 반응하시는 분들이 많아요. 한지는 천 년을 간다는 말이 있지요. 꽃을 사면 길어야 1~2주일이면 시드는데, 그에 비해 오래 두고 볼 수 있다는 것도 큰 장점입니다.작가님의 대표적인 지화공예 작품을 소개해 주세요.지화공예를 하다 보니 우리 뿌리인 전통 꽃에 관한 관심이 생겼고, 고려 시대와 조선 시대 왕실에서 잔칫상에 올리던 꽃인 ‘궁중상화’를 알게 되었어요. ‘궁중상화’에 쓰이는 홍도화(복숭아꽃)는 영생과 장수를 나타내어 오래 살길 바라는 바람을 표현하며, 모란은 부귀영화를 상징한다고 해요. 옛 그림을 보면 꽃 주변에 나비와 꽃을 놓은 것을 알 수 있어요. 자연을 벗 삼았던 우리 선조들의 멋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작품이지요. 옛 문헌과 그림을 바탕으로 삼고 현대적인 색감을 가미해 저만의 궁중상화를 재현했는데요, 이 작품은 잡지와 드라마에서 촬영 소품으로 쓰이기도 했어요. 특히, 세계적 패션잡지인 한국판 300호 특집 기사에 실리기도 했는데 제 꽃이 더더욱 빛나 보였고, 부단히 노력한 결과를 인정받는 느낌이었어요. 현재 궁중상화의 맥을 이어 오고 계신 분들이 다들 연로하신데요, 제가 하지 않는다면 다음 세대에는 사라질 수 있다는 생각에, 전통을 이어 가겠다는 각오로 꾸준히 연구하고 있어요.대표님만의 작업 철학이 있다면 무엇일까요?자연만큼 완벽한 존재가 없다고 생각해요. 본래부터 완벽한 것을 다루는 일이다 보니, 아무리 노력해도 한계에 부딪히곤 해요. 그 한계점 안에서 저만의 색감과 색채를 살리려 합니다. 같은 종류의 꽃을 같은 물감으로 만들어도 만드는 사람에 따라서 다른 꽃이 탄생하기 마련이에요. 제 꽃은 저를 닮아서 따뜻하다는 말을 많이 듣곤 하는데요, 앞으로도 제 꽃을 보는 분들이 따스함과 편안함을 느끼셨으면 해요.앞으로의 계획과 목표가 궁금합니다!한지공예를 시작한 지 올해로 10년이 되었습니다. 그동안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소통하고 체험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문화축제에 참여하며 지화공예를 알려 왔어요. 10년 차가 된 올해부터는 주기적으로 개인전을 열 계획이에요. 때때로 힘든 시기를 겪으면서 ‘왜 이 일을 하고 있지?’라고 자문하곤 했는데요, 그 답을 조금은 찾은 것 같아요. 저는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싶어요. 세계에서 인정한 전통문화유산인 한지로 만든 작품을 지속적으로 선보이다 보면, 언젠가는 지금보다 많은 분이 지화공예의 가치를 알아주실 거라고 생각해요. 더불어 우리 꽃 문화로도 한류를 일으킬 날이 오지 않을까요? 지화공예에 관심이 있어도 엄두를 내지 못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제가 먼저 나서서 잘하고 있다는 걸 보여 드리며, 궁극적으로는 다 같이 더 큰 가치를 만들어 내는 날이 오길 바랍니다. 한지플로리스트 이미나학창 시절부터 손재주가 좋아 만들기를 즐기던 이미나 대표는 어린 시절 미술 수업에서 접한 한지공예에 흥미가 생겼다. 유아교육과를 졸업한 뒤 유치원 교사로 근무하던 때, 공방에 다니면서 한지공예를 배웠고, 이윽고 대학원에 진학하게 되었다. 2013년도부터 한지공예를 공부했으니 올해 10년 차가 된 베테랑 공예가이다. 손을 의미하는 ‘핸드’와 꿈을 의미하는 ‘드림’을 합쳐, 손으로 꿈을 이루겠다는 뜻을 담은 브랜드 ‘한드림’을 운영하고 있다.
#한지플로리스트
#지화공예
#궁중상화
#한지공예
전주 그곳
엠아이비㈜
대를 이어 올곧은 칫솔을 만들다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가업을 잇다 엠아이비㈜의 전신인 광하양행이 설립됐을 때만 해도, 칫솔 시장은 불모지나 다름없었다. 1972년 당시 락희화학공업(현 LG화학)이 칫솔 시장을 독점하다시피 할 정도로 규모가 작았다. 호기롭게 대기업이 선점한 시장에 뛰어들었고,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뻣뻣한 나일론 대신 천연 모(마모)를 활용한 너구리 칫솔이 그 시작이었다. 좋은 재료로 정직하게 만든 제품에 대한 소비자의 반응은 뜨거웠다. 나일론 모의 품질이 좋아지면서 질 좋은 국내산 나일론 모로 원자재를 바꾸며 기세를 이어 갔다.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좋은 반응을 얻었다. 1980년대 연 200만 달러를 수출할 정도로 승승장구했다. 칫솔과 함께 화장품 브러시(솔)도 함께 만들었지만, 이내 칫솔에 집중하기로 했다. 당시만 해도 국내에서는 화장품 브러시를 거의 사용하지 않았던 까닭이다. 그렇게 선택한 칫솔을 50년째 꾸준히 만들고 있다. 자사 제품을 만들고 OEM(주문자 위탁 생산)을 거쳐 다시 자사 제품을 생산하며 세월의 부침을 겪을지언정 꺾이진 않았다. 2015년부터는 창업자인 백남교 씨의 딸 백민정 씨가 아버지가 고수한 소신과 원칙을 지키며 회사를 이끌고 있다. “큰 포부를 안고 아버지와 함께한 건 아니에요. 평생을 칫솔만 보고 사신 아버지만큼 잘해 낼 자신이 없었으니까요. 하지만 칫솔에 대한 애정만큼은 진심이었고, 그 진심을 바탕으로 지금까지 기본에 충실한 제품을 만들고 있습니다.”백민정 대표가 엠아이비㈜에 합류했을 때가 2010년. 그녀의 나이 마흔한 살이었다. 오랜 서울살이에 지쳐 갈 때쯤 아버지의 부름을 받았고 자연스럽게 가업을 잇게 됐다. 워낙 어린 시절부터 칫솔과 함께했지만, 직접 만들게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기에 처음엔 겁도 났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젊은 나이에 무모한 도전이지 않았나 싶은데, 그때는 40대가 큰 어른처럼 느껴졌던 것 같다. 그래서 어른다운 책임감으로 용기를 낼 수 있었다. 다행히 대표직에 오르기까지 5년간 아버지가 옆에서 힘을 보탰다. 아버지의 제조 기술부터 철학까지 차근차근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갔다. 꼼수 부리지 않고 정직하게 만들다 백민정 대표는 넘치는 의욕으로 전국 곳곳에서 열리는 박람회는 물론 해외 박람회까지 모두 찾아다녔다. 아무리 좋은 제품이어도 찾는 이들이 없다면 무용지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러한 노력이 무색하게도 백민정 대표가 대표직에 오르자마자 회사가 휘청이기 시작했다. 대기업들이 중국에 생산공장을 짓기 시작하면서 OEM이 모두 끊긴 것이다. 다행히 정직하게 일해 온 세월 덕에 새로운 일이 들어왔다. 칫솔모를 심는 작업이었다. 50만 개 정도 작업 후, 새로운 모가 들어왔다. 이전 모의 1/10 가격의 저렴한 중국산 모였다. 국내산 모는 칫솔모끼리 물려 놓아도 하루가 지나도록 눌리지 않는데, 그 모는 한 시간만에 눌려 버렸다.백민정 대표는 이익을 좇느라 양심을 파는 기업들을 보며 그 옛날 너구리 칫솔을 만들었을 때처럼 우리만의 제품을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렇게 사탕수수와 옥수수 전분으로 만든 어린이용 칫솔을 개발했다. 숯 항균 모와 금 항균 모로 항균 효과도 높였다. 칫솔 헤드 뒤에 구멍을 뚫어 모가 잘 마를 수 있도록 한 통기성 헤드로 2015년에 이어 2017년에도 전주시가 인증하는 ‘바이전주’ 우수업체로 선정되며 내실을 인정받기도 했다. 국산 칫솔모만 고집한 원칙이 바탕이 되었음은 물론이다. 백 대표가 생각하는 좋은 칫솔은 단순하다. 좋은 재료로 기본에 충실한 제품을 만드는 것이다. 입 속에 들어가는 제품이기에 양심적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 그는 국산 모를 쓰고 정직하게 만드는 게 다라고 했지만, 이는 말처럼 간단한 일이 아니다. 현재 국내 칫솔 제조회사는 1,800개가 넘는다. 그리고 이 중 85%를 대기업 네 곳에서 소유하고 있다. 이처럼 포화 상태인 칫솔 시장에서 기본에 충실한 칫솔을 양심적으로 만들겠다는 제조 철학을 유지하는 일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는 지금껏 해 온 것처럼 욕심내지 않고, 정직하게 운영해 나갈 생각이다. 그저 바라는 게 있다면 오랜 시간 함께해 온 가족 같은 직원들을 챙기며 걸어가는 게 목표라는 백민정 대표. 살갑지 못해 표현하진 못했지만, 직원들에게 늘 고마운 마음이다. 아버지가 걸어온 길을 뒤따라 곧게 나아가는 백 대표와 엠아이비(주)의 행보에 응원을 보낸다.엠아이비㈜주소 l 전주시 덕진구 상리1길 46문의 l 063-214-0218홈페이지 l http://mibtoothbrush.co.kr
#엠아이비㈜
#광하양행
#칫솔
#바이전주
기획 특집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나를 찾고, 내일을 꿈꾼다 ‘야호학교’
꿈을 찾는 방과 후 수업, 나를 찾는 아카데미 지난해 3월, 인후동에 야호학교가 문을 열었다. 청소년 자치 배움터인 이곳은 청소년 스스로 만들고 배우는 학교다. 청소년들은 그들만을 위한 공간에서 청소년들이 스스로 기획하고 운영하는 청소년 자치 프로젝트를 비롯한 다양한 활동을 펼쳐왔다. 대표적인 사업이 전주형 전환 과정 도입에 앞서 시범사업으로 진행한 방과 후 프로젝트 ‘나를 찾는 아카데미’다. ‘나를 찾는 아카데미’의 모든 과정은 청소년 자치 프로젝트형 수업으로 진행됐다. 수업에 참여한 14~16세 서른 명의 청소년들이 스스로 친구들과 협력해서 하고 싶은 것을 찾아 기획․실행․성장하는 프로젝트형 수업이다. 이들은 가고 싶은 곳을 마음껏 디자인하는 여행 프로젝트부터 평소 해보지 못한 활동을 집중적으로 해보는 몰입 집중프로젝트 등을 통해 나를 알아가고, 또래와의 올바른 관계를 형성하는 법을 배웠다. 또, 재능 계발과 진로 탐색의 기회가 주어졌다.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사고력이 향상되고, 변화하고 성장하는 모습을 확인함으로써 높은 만족도를 보였다. 그리고 전환 교육 대상자인 17~19세 학생에게 도입할 경우, 더욱더 높은 만족도를 얻을 수 있다는 판단이 섰다. 이처럼 전주형 전환 교육 실행에 탄력을 더한 ‘나를 찾는 아카데미’가 올해도 2월 28일까지 신입생 30명을 모집한다. 이로써 전주지역 청소년들은 올해도 방과 후 수업으로 자기주도력을 키우고 진로를 탐색할 수 있게 됐다. 수업에 참여한 학생들은 자신의 관심 분야에 대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스스로 디자인하는 여행, 음원 제작(자작곡), 영상 제작 등 방학 몰입 집중프로젝트와 자기주도 학습 등을 경험하게 된다. 분기별 1회씩 주말 프로젝트도 진행한다. 교육비는 전액 무료이며, 수업이 방과 후에 진행되는 만큼 급식 및 귀가 차량도 지원된다. 방과 후 수업의 새로운 유형을 제시하는 야호학교의 ‘나를 찾는 아카데미’. 미래의 꿈을 찾고 세상을 보는 시야를 넓히고 싶은 청소년들은 ‘나를 찾는 아카데미’를 찾아보는 건 어떨까. 미래를 설계하는 대안학교, 야호전환학교 덴마크에서는 만 14에서 18세 사이 청소년들이 다양한 경험을 통해 진로를 탐색하는 학교 밖 학교인 인생학교가 있다. 160년 역사를 자랑하는 덴마크의 대표적 대안 교육과정 에프터스콜레(Efter Skole·After School, 덴마크 사립교육기관으로, 14~18세의 학생들이 고등교육을 받기 전에 입학하는 기숙학교)가 그것이다. 덴마크에 에프터스콜레가 있다면, 전주에는 ‘야호전환학교’가 있다. ‘야호전환학교’란 학교 밖에서 만나는 전주형 대안학교로, 청소년에서 성인으로 넘어가는 과정인 고등학교 1학년(17세) 이상의 청소년들이 자신의 인생과 진로에 대해 성찰할 수 있도록 지속 가능한 배움의 기회와 열정의 공간을 제공한다. ‘야호전환학교’는 올해 2월 중순 첫 신입생을 모집했다. 고등학교 진학 대신 야호전환학교에 입학한 학생들은 주 5일 종일반 형태로 자율적이고 창의적인 교육을 받게 된다. 교육비는 전액 무료다. ‘야호전환학교’ 신입생은 1년간 입시경쟁에서 벗어나 ‘난 뭘 하면 좋을까?’, ‘어떻게 살면 행복할까?’ 등에 대한 답을 주체적으로 찾아가게 된다. 수업은 먼저 개별 프로젝트를 통해 스스로 기획하고 실행하는 힘을 기른 후 팀원들과 협력하는 공동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공동 프로젝트는 예술·감성, 생활 자립, 인문사회, 여행 등의 분야 중 주제를 선정해, 기획하고 운영하고 평가하는 것까지 청소년들 스스로 진행하는 것이다. 다양한 프로젝트를 통해 지적, 정서적 균형 발달과 공감과 소통 능력까지 기르게 되는 셈이다. 전주시 관계자는 “전주형 전환 교육 야호전환학교는 ‘전주의 청소년들을 위해 어떤 교육이 필요할까?’라는 물음표에서 출발한다”면서 “청소년들이 해야 할 일이 아닌 하고 싶은 것을 실천하며 성장할 수 있도록 내실 있게 운영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성인이 되기 직전, 삶의 전환기 청소년의 가장 큰 고민은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 아닐까? 전주형 전환교육 ‘야호전환학교’를 통해 청소년들이 공부와 시험의 압박에서 벗어나 미래를 설계하며 마음껏 인생을 꿈꿔볼 수 있길 바란다. 야호학교 주소 l 전주시 덕진구 진버들5길 15-1 문의 l 063-281-6582
2022.02.25
#대안학교
#나를찾는아카데미
#야호전환학교
읽고, 듣고, 배우다 ‘전주시민독서학교’
책과 함께 놀고 배우다 전주시민독서학교는 책이 삶이 되고, 삶이 책이 되는 ‘책의 도시 전주’와 꼭 어울리는 배움터다. 이곳에서는 인문학부터 미술, 캘리그래피(손글씨), 영화사, 생태교육 등 책과 함께 다채로운 경험을 할 수 있다. 책 속에서 해답을 찾고, 지식과 지혜도 쌓는다. 전주시민독서학교가 열리는 교실은 전주시립도서관 ‘꽃심’을 비롯한 12개 시립도서관과 꿈밭장애인작은도서관이다. 독서·자녀교육·인문 교양 등 3개 분야 27개 과목으로 골라 듣는 재미까지 더했다. 독서 부문은 글쓰기부터 공연 시 낭송, 그림책 인형극, 영어 그림책 스토리텔링, 북 큐레이터, 책놀이 등 총 18개 수업으로 이뤄진다. 자녀교육은 자연생태교육과 전통 놀이 지도로 구성된다. 인문 교양은 때깔 좋은 우리 미술사, 영화로 보는 한국사, 색채 심리, 힐링이 되는 미술 교실, 화폐 속 경제학 등 총 7개 과목을 운영한다. MZ 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한 세대), 청․장년 세대, 노년층 등 세대별 꼭 맞는 특화 프로그램도 준비했다. 특화 프로그램은 평일 오전에 열리는 수업에 참여하기 힘든 이들을 위해 오후 시간대와 방학을 활용해 8주, 12주 과정의 특강으로 진행한다. 독서학교에 걸맞게 독서 심화 과정도 운영할 계획이다. 도서관별 특성을 살린 수업도 운영한다. 가령, 생태도서관인 건지도서관의 자연 생태교육 강좌, 영화 특화도서관인 인후도서관의 영화인문학 강좌, 시민 누구나 책을 읽고 쓰고 출판하는 도서관인 완산도서관의 ‘도전! 작가 되기’ 등이 그것이다. 강의가 끝나도 활동은 계속된다. 뜻이 맞는 시민들끼리 독서동아리 등 별도의 모임을 형성해 배움을 이어갈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배운 것을 토대로 도서관에서 봉사활동을 펼치거나 전주시립도서관에서 진행하는 다양한 프로그램에 직접 참여할 수도 있다. 단순한 강의가 아닌, 시민과 도서관이 함께 성장하고 돕는 밑거름이 되는 셈이다. 전주시민독서학교는 18세 이상 전주 시민이라면 누구나 수강할 수 있으며, 전주시립도서관 홈페이지를 통해 접수한다. 모든 강의는 선착순 모집이니 원하는 강의를 듣고 싶다면 망설이지 말고 서두르자!전주시립도서관 꽃심 주소 l 전주시 완산구 백제대로 306문의 l 063-230-1859
#전주시민독서학교
#전주시도서관
#꽃심
바람을 타고 풍경을 싣고, 버스 여행
‘백지 공포증’이라는 게 있다. 백지를 앞에 두면 글을 쓰는 것이 막막하고 두려워져 계속 고민하게 되는 증상인데, 재밌는 건 글을 전문적으로 쓰는 작가들 역시도 이 백지 공포증에서 벗어나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가끔 시간 앞에서도 비슷한 증상을 앓게 될 때가 있다. 반짝, 여유가 생겼는데 그 속에 무엇을 채워 넣어야 할까 궁리하느라 어떤 것도 선뜻 결정하지 못하고 망설이게 된다. 그럴 때는 무작정 집을 나서 첫발을 떼보는 것도 방법이다. 백지 앞에서 아득하고 막연할 때 우선 떠오르는 거로 첫 문장을 써보라고 많은 작가가 권하는 것처럼. 그저 한 발 떼는 게 답일 때가 있다. 모처럼의 여행, 전주 한옥마을을 슬렁슬렁 걸어서 버스정류장으로 간다. 전주 한옥마을에서 완주 한옥마을까지 버스 여행을 떠나기 위해.3월의 바람을 타고, 버스를 타고 나에게 전주 한옥마을은 앞마당 같은 곳이다. 한옥마을 근처에서 10년 가까이 살고 있어서 수시로 산책하는 코스이기 때문이다. 눈 감고도 골목 구석구석 그릴 수 있다. 봄이면 산수유 노란빛이 화사한 전주향교 대성전 뜰과 매화향 그윽한 전주동헌 뒷담, 홍매화의 안부가 궁금한 경기전, 그립고 살뜰한 이들의 일터인 최명희문학관과 전주부채문화관…. 조금도 서두르지 않고, 이집 저집 기웃대며 걷는다. 반가운 이를 만나러 가는 것처럼, 어쩌면 진짜로 곧 만날지도 모르니까.완주 오성 한옥마을로 가려면 전동성당 인근의 전동버스정류장에서 820번 버스를 타면 된다. 여행을 즐기는 다양한 방식이 있고, 사람마다 선호하는 것도 제각각일 테지만 단출하고 홀가분하게 잠깐 떠났다가 돌아오고 싶을 때는 버스 여행도 꽤 괜찮다. 조금 느리고, 또 그래서 불편한 구석도 있지만, 버스 여행만의 다른 ‘높이’가 있다. 차창 밖으로 흐르는 풍경과 버스를 타고 내리는 사람들의 모습. 무심히 넘긴 일상의 모습들이 다르게 다가온다. 아파트 사이의 앙증맞은 파란색과 주황색의 지붕들. 건물과 건물 사이 숨겨진 좁고 가파른 계단. ‘선비집’, ‘동쪽가맥’, 눈에 띄는 간판들을 소리 내 읽으면서 버스와 같이 출렁인다. 여행은 익숙함 속에 매몰되어 그동안 보지 못했던 것들을 찾아내는 연습인지도 모른다. 3월의 바람을 타고, 덜컹거리는 버스를 타고, 중앙시장, 모래내, 기린네거리, 징검돌 같은 버스정류장을 건너 징검징검 완주로 간다. 풍경을 가득 싣고 달리는 마을버스전주를 벗어나 ‘아래삼거리’, ‘웃삼거리’ 정류장을 지나면 완주 소양에 닿는다. 전주 한옥마을에서 소양면 소재지까지는 20여 분 거리. 소양농협 앞 정류장에서 내린 다음, 이곳에서 완주 마을버스로 갈아타야 한다. 지난 2월 19일 전주시 버스 노선이 개편되면서 전주에서 완주를 오가는 차편에도 변화가 생겼다. 예전에는 전주 시내버스를 완주군 각 마을 구석구석까지 운행해서 오성 한옥마을까지 한 번에 갈 수 있었지만, 이제는 읍면 소재지까지만 운행하기 때문에 환승이 필요해졌다. 전주 시내버스가 완주 구석구석 오가며 생기는 비효율성을 보완해 시민들의 편의를 높이려는 개편이니 풍경 속으로 한 발 더 들어가는 것으로 버스 여행의 번거로움을 잠시 잊는다. 행여 버스 시간이 터울이 진다고 해도 큰 걱정거리는 아니다. 있을 건 다 있다. 3천 원이면 깔끔한 멸치육수로 맛을 낸 국수를 맛볼 수 있는 국숫집도 있고, 소머리국밥을 파는 집도 있고, 중화요릿집도, 편의점도, 마트도 있다. 군것질거리를 사서 지척에 있는 소양초등학교 운동장을 휘휘 어슬렁거려 보는 것도 좋겠다. 한심할 정도로 한가한 사람처럼 시간이 흘러가는 것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것이다. 그게 또 여행의 묘미 아니겠는가. ‘앞멀’과 ‘상망표’를 오가는 ‘소양82-1’번과 ‘소양82-2’번 버스가 오성 한옥마을로 가는 버스. 장난감처럼 작고 귀여운 마을버스에 올라 소양천을 오른쪽 허리춤에 끼고 달리다 보면 둥치 굵은 벚나무들이 터널을 이루는 짧고 강렬한 벚나무길을 지난다. 오성제저수지까지 이어지는 오도천과 나란히 달리는 버스 안에 있으면 어딘가 먼 곳으로, 더 깊은 곳으로 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소양정류장에서 12개의 정류장을 거치면 ‘오성풍류학교’에 도착한다. 버스에서 내려 내리막길을 몇 발짝 내려디디면 비로소 오성한옥마을이다.한옥과 아름다움 사이의 작은 길들, 오성한옥마을오성 한옥마을은 한옥 20여 채가 모여있는 마을. 평지 위에 자리한 전주 한옥마을과는 다르게 오성 한옥마을은 가파른 언덕길에 마을이 조성돼 있다. 검은 기와지붕 위에서 미끄러지는 햇살, 대숲을 빠져나와 담 밑을 어슬렁거리는 바람과 함께 사이좋게 걷는다. 오성 한옥마을이 가까운 전주를 넘어 전국적으로 이름을 알리게 된 것은 아원고택과 소양고택을 빼놓고 얘기할 수 없다.소양고택은 호남 지역에 있던 전통 한옥들을 이축한 것이다. 100년이 넘은 ‘일(一)’자 형태의 안채는 전남 무안에서 옮겨 온 것. 숙소로 활용되는 안채와 낮은 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는 카페도 사람들로 북적이는 장소다. 카페 안에서 보든, 야외 테이블에 앉든, 감탄스러운 경치가 펼쳐진다. 소양고택에서 운영하는 북카페 ‘플리커’도 매혹적인 공간. 서가마다 단정하게 놓인 책들, 은은하게 베인 커피 향, 고풍스러운 고가구와 개나리꽃만큼이나 색이 또렷한 기념 상품들이 한데 모여 평화롭고 다붓하다.BTS가 영상과 화보를 찍으면서 전국적인 유명세를 치르게 된 아원고택 자리는 원래 산비탈과 논밭이었다. 250년 된 경남 진주의 고택과 150년 된 전북 정읍의 고택을 옮긴 뒤, 지금의 아름다움을 갖게 되었다. 아원(我園)은 ‘우리들의 정원’이라는 뜻. 아원고택에 들기 위해서는 아원갤러리를 통과해야 한다. 현대적인 콘크리트 구조물로 이루어진 이곳에서는 1년에 두세 차례 전시회가 열린다. 건물 바깥으로 난 좁은 계단을 오르면 다른 세상이다. ‘만사 제쳐놓고 쉼을 얻는 곳’이라는 뜻을 가진 만휴당 대청에 앉으면 종남산이 가깝다. 오성 한옥마을은 종남산과 서방산, 위봉산과 원등산이 에워싸고 있어 그야말로 자연의 품에 안겨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만휴당을 비롯해 안채와 사랑채의 마루에 앉으면 보이는 것이 조금씩 달라서 풍경을 머금는 호사로움이 있다. 두고 온 애틋한 이를 떠올리듯 전주 한옥마을의 골목들을 그려본다. 걷기 좋은 평지 위에 실핏줄 같은 골목들이 이어지는 전주 한옥마을에는 경기전, 오목대와 같은 역사유적이 있고, 소원을 이뤄준다는 500년 수령의 당산나무가 산다. 17년간 대하소설을 집필한 집념의 소설가, 최명희 작가의 생가터에는 늦봄부터 늦가을까지 진분홍 꽃 내거는 배롱나무가 길목을 밝힌다. 전주와 완주, 서로 다른 어여쁨이 있는 한옥마을의 골목을 찬찬히 음미해 보는 것도 좋겠다. 두 곳 어디든 한옥마을을 걷다 보면 ‘사이’가 좋아진다. 지붕과 대청마루 사이, 창과 풍경 사이, 토석담과 마당 사이, 집과 자연 사이. 전주로 돌아가는 버스를 기다리며 오래오래 사이좋게 지내고 싶은 이들의 이름을 가만히 불러보았다. 전주에서 시내버스 타고 완주 가는 길 전주에서 완주 오성한옥마을로 시내버스 여행을 떠나고 싶다면 이제 810번과 820번을 기억하자. 전주-완주 지간선제 시행에 따라 전주에서 시내버스를 타고 소양면에서 완주군 마을버스로 갈아타야 한다. 전주 시내버스는 평화동 종점에서 출발하는 810번 또는 이서 회차지에서 출발하는 820번 버스를 타면 된다. 소양작은도서관 정류장에서 하차해 82-1번 완주 마을버스로 갈아타고 오성풍류학교 정류장에서 내리면 산비탈에 자리한 오성한옥마을의 꼭대기부터 내려오며 편하게 둘러볼 수 있다. 글 김정경 l 시인2013년 전북일보 신춘문예에 시 이 당선되어 등단했다. 지은 책으로 시집 가 있다. 자칭 ‘산책중독자’. 오래된 골목을 유람하며 채집한 이야기로 시도 쓰고, 산문도 쓰며 살고 있다. 현재 전주문화재단 문예진흥팀장으로 일하고 있다.
#버스여행
#한옥마을
#BTS
#아원고택
아름답고 대담하게 춤추고 사랑하라!
현대무용가 강명선
강명선 현대무용단이 창단 24주년을 맞았는데, 쉽지 않은 여정이었겠어요.대학 등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전국 콩쿠르, 무용제 등에서 안무상, 지도자상을 탄 게 100회 가까이 돼요. 그만큼 출중한 제자도 많았죠. 이 아이들이 졸업 후 다시 저를 찾아왔어요. 당시 우리 지역에는 대학 두 곳에만 현대무용단이 있었고 현대무용 수준이 높지가 않았어요. 그런 현실에 갈증을 느끼고 있을 때 제자들이 모이니 결심이 섰어요. 제가 현대무용단을 창단한 1999년에 고작 스물아홉 살이었어요. 어린 나이에 이끌어주는 사람도 없이 창단해 처음엔 곱지 않은 시선도 많았지만, 꾸준히 신작을 발표하고 새로운 기획들로 무용수들과 제자들을 끌어내며 자리를 잡아갔죠.강명선의 현대무용만이 갖는 특징은 무엇인가요?힘을 강조하기보다 선이 아름다운 현대무용을 추구해요. 몸을 길게 써서 깨끗하고 선이 고운 동작을 만드는 거죠. 타악기 반주에 강렬한 동작 위주였던 예전의 현대무용계에서 뉴에이지 피아노곡에 서정적인 안무를 하는 저의 작품은 새롭다는 평을 많이 받았어요. 그래서 모던발레와 동양적인 한국 춤의 선이 겹쳐 보인다는 평도 많이 들었고요. 정답은 없지만, 여러 현대무용의 요소들이 어우러지는 가운데 아름답고 감성이 풍부한 몸짓을 만들어내는 것이 저만의 춤이라고 할 수 있어요. 평범한 무용수도 제 작품 안에 있다 보면 아름답게 변화하죠.직접 무대를 연출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요?춤만 이어지는 무대는 관객에게 너무 어렵잖아요. 게다가 현대무용은 동작 자체도 난해하고, 추상적인 표현들이 많다 보니 더욱 대중과 괴리가 생겨요. 그래서 연출이 중요한 거예요. 조금 더 구체적인 콘셉트와 음악, 무대미술, 조명 등 춤 이외의 요소들을 활용해 관객에게 작품을 해설하는 게 연출이니까요. 보통 대중들은 무용하는 사람은 춤만 춘다고 생각해요. 저 같은 무용연출가는 흔치 않죠. 요즘엔 사람들과 더 많이 소통하고 알려지는 것도 중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야 제자들에게도 무용가의 새로운 진로에 대한 다양한 길을 안내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요.지난해 현대무용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운동을 개발하셨다고 들었어요. 우리 지역에 현대무용 전공생이 한 해 6~7명밖에 배출이 안 돼요. 학교에서 무용 수업이 없어지니 아이들이 현대무용이 뭔지도 잘 몰라요. 현대무용이 존속하고 확산하려면 새로운 길을 모색해야만 하죠. 무대뿐만 아니라 일상 속에서 현대무용과 대중의 거리를 좁혀 더 많은 사람이 현대무용을 즐기는 문화를 만들어야 해요. 일반인을 위한 현대무용 취미반도 운영해봤는데 진입장벽이 좀 높았어요. 그래서 오랜 연구 끝에 ‘모던탄츠필라핏’이라는 새로운 프로그램을 개발했어요. 현대무용 동작과 필라테스를 접목한 프로그램으로, 근육을 길게 늘여 몸의 선을 살려주고 하체의 속 근육을 강화하는 운동이에요. 우울증이나 척추측만증에 대한 무용치료 효과도 탁월하죠.앞으로의 계획과 목표가 궁금합니다.‘모던탄츠필라핏’은 1단계부터 3단계까지의 과정이 있거든요. 1단계는 자세와 속 근육을 강화하고, 2단계는 움직임을 덧입혀 신체를 확장해서 몸의 라인을 살려주는 역할을 합니다. 3단계는 무용에 재능과 열정을 가진 일반인 무용단을 만드는 거예요. 지금 6개월 정도 운영했는데, 올해 안에 이 프로그램을 통해 무용을 사랑하는 비 전공생을 찾고 육성해서 일반인 성인 무용단을 창단할 계획이에요. 내년에 무대에 오를 수 있게요. 물론 모두가 무용단이 될 필요는 없죠. 대중들은 각자의 필요와 수준에 맞게 현대무용을 즐기면 돼요. 그리고 지역 무용계의 꿈나무가 될 어린이 무용단도 커리큘럼을 더 보강하고요, 내년이 현대무용단 창단 25주년이라 기념 작품집도 준비하고 있어요. 많이 기대해주시고, 전주 시민 여러분 모두가 자신의 몸을 더 사랑하셨으면 좋겠습니다. 현대무용가 강명선 강명선 무용가는 자연 설화, 역사적 공간, 음악, 미술을 창작 모티브로 무용의 불모지였던 전북지역 현대무용을 우리나라에서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리며 주목받았다. 1999년 을 창단했고, 안무가․연출가․무용평론가로서의 활동 영역을 넓혀왔다. 경희대, 전북대, 중국 연태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인재양성에 힘써왔고, 일반 아이들을 중심으로 어린이 무용단을 창단해 5년째 운영하고 있다.
#현대무용
#모던탄츠필라핏
#강명선현대무용단
남문소리사&남문소릿길
오래된 추억을 재생시키는 가게
추억을 재생시키는 손, 남문소리사어슴푸레한 새벽빛이 밝아오는 오전 여섯 시, 남문소리사의 사장 최철식 씨는 평화동에서 남부시장까지 걸어오며 아침잠을 깨운다. 매일같이 같은 길을 걸어온 지 어느덧 반백 년, ‘사람만 빼고 다 고친다’는 말이 과장이 아닐 만큼 화려한 ‘손의 내력’을 자랑한다. 음향기기뿐만 아니라 TV, 밥솥을 비롯해 갖가지 살림살이가 그의 손을 거쳐 갔다.군대에서 통신병으로 복무하며 음향기기와 첫 연을 맺었다는 그. 이후 라디오학원에 보내 달라는 동생의 부탁을 들어준 일이 그를 자연스레 소리사의 길로 안내했다. 국내산 라디오가 한창 생산되던 1970년대에는 전주 시내를 통틀어 전파사와 소리사가 80여 곳에 달했다. 세월이 흘러 하나둘 문을 닫은 뒤에도 남문소리사가 자리를 지킬 수 있었던 건, 그가 꿋꿋이 지켜온 ‘신용’ 때문이었다. 값이 싸고 고장이 빠른 물건이 아닌, 바른 물건만을 정정당당히 판매하는 것도 그의 신념이다.더는 부품이 생산되지 않아 고치지 못하는 옛것들을 돌려보내지 못하는 까닭이 있다. 물건마다 담긴 사연을 듣노라면, 제아무리 명이 다한 것이라도 쉽게 버릴 수 없다. 첫 월급으로 사서 간직해온 애장품에는 설렘이, 부모님이 남겨주신 유품에는 그리움이 스며들어 있다. 이렇듯 물건의 값어치는 쓸모로만 책정할 수 없다. 제 기능을 하지 못하지만, 손에 익고 정이 들어 차마 버리지 못하는 물건이 가게 한구석에 가득하다. 추억을 매개로 소통하는 동안 사람과의 정도 퍽 깊어졌다. 대를 이어 찾아오는 단골손님들은 물론이고, 전국 곳곳에서 물어물어 찾아온 손님들 한 분, 한 분이 귀하다. “우리 집 한 번 오면 다른 집 안 가요.” 웃으며 말하는 최철식 씨가 그저 미덥다. 40년 넘게 꼬박꼬박 쓴 일지에는 그날 다녀간 손님과 수리하고 판매한 물품의 내역뿐만 아니라, 주변 이웃, 나아가 세상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일들에 대한 소회가 담겨 있다. 개인적인 기록을 넘어 역사적인 가치가 충분한 사료이다.추억이 드나드는 길, 남문소릿길어린 시절부터 최철식 씨의 장사철학을 보고 배우며 자란 아들 최정완 씨. 아버지의 뜻을 따라 토목과에서 전기과로 전공을 옮겨 졸업한 뒤 가업을 물려받았다. 수리 장인이신 아버지와 한복 바느질을 평생의 업으로 삼으셨던 어머니의 손재주를 물려받은 그는, 가업을 이어가는 것에 그치지 않고, 더 큰 목표를 향해 한 발짝 내디뎠다. 청년들에게 저렴한 임대료로 점포를 내어주기 위해, 남문소리사의 창고로 쓰이던 오래된 건물을 뼈대만 남기고 리모델링해 남문소릿길이라는 공간으로 재탄생시키고 있다. 이곳은 남문소리사의 명맥을 이어갈 ‘길’이며, 창업을 꿈꾸는 청년들이 첫발을 뗄 ‘길’, 그리고 세대를 뛰어넘어 많은 이들의 추억이 드나들 ‘길’이다. 또한, 갈수록 사람의 발이 뜸해지는 남부시장으로 안내하는 ‘길’이기도 하다.1층에 자리한 10곳의 점포에는 청년들의 아이디어를 맛볼 수 있는 퓨전요릿집을, 2층에는 젊은 예술가들이 열정과 재능을 펼칠 무대를, 지하에는 입주자들이 공유하는 공간을 꾸릴 계획을 세웠다. 한쪽에는 옛것의 가치를 알리는 문화공간을 만들고자 한다. 라디오부터 레코드판, 카세트테이프, 녹음기 등 옛 시절의 음향기기를 전시하고 사라져가는 소리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 그가 그린 밑그림이다. 부모님을 모시고 와도 좋고 아이들을 데리고 와도 좋은 공간, 그리하여 3대가 공감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 꿈이 머지않았다. 나아가, 장학재단을 설립해 사회에 환원하는 것이 남문소릿길을 지은 궁극적인 목표이다. 이는 무일푼으로 장사를 시작해 힘겹게 자수성가하신 부모님의 업적을 기리는 일이다. 전주에서 가장 오래된 소리사인 남문소리사와 새로운 역사를 써 내려갈 남문소릿길. 묵묵한 걸음으로 백 년을 채우고, 대대손손 새 백 년을 이어갈 가게. 구시대와 신세대의 벽을 허물고 과거와 현재, 미래를 공존시켜 3대가 함께하는 공간으로 오래도록 자리하길 바란다.남문소리사 주소 l 전주시 완산구 풍남문1길 19문의 l 063-288-4097
#남문소리사
#남문소릿길
#전파사
#소리사
취향 저격 도서관 여행, 더욱더 다채로워진다
더 다양해진 도서관 여행전주 도서관 여행 ‘우리는 도서관으로 여행 간다’는 책 놀이터를 빨간 버스를 타고 둘러보는 여행 프로그램이다. 지난해 처음 진행된 이 프로그램은 책을 읽고 공부하는 공간으로 여겨졌던 도서관을 놀고 쉬는 여행지로 만들었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다.올해는 도서관 여행 운영 기간과 횟수는 늘리고, 프로그램은 더욱 다양하게 준비했다. 운영은 2월 중순부터 12월까지, 매주 토요일 하루 코스로 1회 운영하던 것이 주 3회(하루 코스 1회, 반일코스 2회) 사전예약제, 회차당 10명 이내로 운영된다. 여기에 단일 코스만 있었던 지난해와 달리 올해는 단일 코스에 4개의 주제별 반일 코스가 새롭게 더해졌다. 먼저, 하루 코스는 팔복예술공장 코스(매월 1․3․5주 운영)와 객리단길 코스(매월 2․4주 운영) 2개로 나뉜다. 여행자들은 전주시청 내 책기둥도서관, 팔복예술공장 이팝나무그림책도서관, 학산숲속시집도서관, 전주시립도서관 ‘꽃심’, 첫마중길여행자도서관, 다가여행자도서관 중 5개 도서관을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온종일, 여유 있게 돌아본다.주제별로 달라지는 반일코스는 총 4개가 마련되었으며, 취향에 따라 취사선택할 수 있다. ‘쉼’과 ‘힐링’을 주제로 하는 ‘책+쉼 코스’는 전주시립도서관 ‘꽃심’과 학산숲속시집도서관, 첫마중길여행자도서관을 돌며 도서관에서 심신의 휴식을 얻는다. 여행자도서관을 중점적으로 돌아보는 ‘책+문화 코스’는 시청 책기둥도서관을 시작으로 첫마중길여행자도서관, 다가여행자도서관을 돌아보며 문화예술을 누린다. ‘책+예술 코스’는 책기둥도서관, 첫마중길여행자도서관, 이팝나무그림책도서관을 찾아가 도서관에서 예술을 경험한다. 온 가족을 위한 ‘책+자연 놀이터 코스’는 전주시립도서관 ‘꽃심’, 학산숲속시집도서관, 책기둥도서관에서 돌아보며 여행을 즐길 계획이다. 반일 코스는 오전 코스와 오후 코스로 나뉘어서 운영되는데, 오전 코스는 9시 20분, 오후 코스는 13시 30분에 출발하며, 각 코스에는 3시간 정도가 소요된다. 여행자들의 만족도가 높여줄 체험 프로그램도 풍성하게 준비했다. 도서관에서 인생 사진 남기기, 필사 체험 등 특색 있는 체험 프로그램을 마련해 여행의 재미를 한층 높여줄 예정. 게다가 전주국제영화제 등 전주의 대표 축제 기간에는 특별 프로그램도 운영할 계획이라고 하니 2022년 전주 도서관 여행은 일 년 내내 새로운 모습으로 다가오겠다. 신청 방법 | 전주시립도서관 홈페이지(https://lib.jeonju.go.kr/) 도서관 여행 게시판체험료 | 하루 코스 성인 6,000원, 어린이․청소년 5,000원 반일 코스 성인 5,000원, 어린이․청소년 4,000원 *식비, 여행자보험 미포함문의 | 전주시 책의도시여행과(063-230-1842)
#도서관여행
#책놀이터
#여행자도서관
#첫마중길
#객리단길
전주 음식
전주 한옥마을 전통 찻집 4
찬바람 부는 오후에 만나는 한 잔의 여유
경기전 맞은편 최강 뷰 맛집, 마시랑게요즈음 한옥마을을 찾아온 여행객이라면 그냥 지나치지 않고 꼭 들른다는 ‘핫플레이스’가 있다. 이미 전국 방방곡곡 이름난 이곳은 그 이름도 정겨운 ‘마시랑게’. 입에 착 달라붙는 사투리로 친근하게 안내하는 이곳에 들어서자마자, 2층 테라스에서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경기전 전경에 시선을 온통 빼앗긴다. 신비로운 비밀의 문을 활짝 열고 한 발자국 내디디면, 사시사철 계절마다 달라지는 풍경이 눈을 반긴다. 울긋불긋 단풍철도 절경이지만, 새하얀 눈이 살포시 내려앉은 설경을 기다리는 마음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설렌다.감탄사가 절로 나오는 경기전 경치에 한 번 반하고, 오로지 ‘마시랑게’에서만 맛볼 수 있는 독특한 음료에 두 번 반한다. 화선지에 번지는 먹의 느낌을 표현한 ‘수묵화라떼’는 오묘한 맛으로 잠들어있던 미각을 깨우고, 유자청과 레몬청에 히비스커스를 살짝 끼얹은 ‘수채화에이드’와 블루레몬청에 히비스커스로 장식한 ‘청사초롱에이드’는 긴 여행에 지친 몸에 활기를 깨운다. 그리고 흑임자, 쑥, 녹차, 단호박, 인절미 등 전통 식재료들을 정성스레 손질해 만든 디저트와 입 안에서 사르르 녹는 빙수까지, 한옥 느낌으로 꾸민 카페에 안성맞춤인 고운 색감의 메뉴가 침샘을 자극한다.내 손으로 직접 전통 차를 우려 마시는 다도 체험을 즐길 수 있는 것도 이곳만의 색다른 재미. 다소곳이 차려입은 한복 옷매무새 가다듬고 자세를 바르게 고쳐 앉으면, 마음가짐마저 덩달아 정갈해지는 듯하다. 이토록 특별한 오늘을 오래오래 간직하고 싶다면, 부지런히 셔터를 누르며 ‘인생샷’을 남기길 권한다. 제아무리 속절없이 세월이 흘러도 추억의 빛깔은 쉬이 바래지 않을 테니.주소 l 전주시 완산구 전동성당길 100문의 l 010-4114-8558영업시간 l 10:30~22:00(연중무휴)새소리 물소리 노니는 고옥, 명천재진짜배기 한옥의 정취를 느끼고 싶거든 여기가 제격. 100년 고옥이 고른 숨을 쉬는 이곳은 치명자산과 고덕산 자락에 폭 안긴 ‘명천재’이다. 새소리 ‘명’ 자에 내 ‘천’ 자를 써서 새소리와 물소리가 들리는 명당이라는 뜻을 지녔다. 화가이신 아버지의 작업실을 물려받아 찻집을 열었다는 주인장은 세월에 낡아가는 나뭇결을 덧칠하고 창호지를 갈아 끼우느라 온종일 여념이 없다. 공을 많이 들인 한옥 찻집답게 메뉴 역시 다양한 전통 차를 선보인다. 동의보감 처방에 홍삼을 넣어 정성껏 달인 쌍화차부터 자연에서 자란 찻잎을 덖어 만든 보이차와 말차, 녹차, 우롱차. 이와 함께 찻상에 나란히 올라오는 손수 구운 크로와상이 뜻밖에도 찰떡궁합이다. 전통 차는 커피나 다른 음료에 비해서 맛이 강하진 않지만, 입 안에 오래 머금고 음미할수록 깊이 우러나는 향에 그 매력이 있다. 날씨와 기분에 따라 또 찻잔에 따라 그 맛이 달라진다. 더욱이 전통 방식을 지키며 손님상에 내어주면 대접받는 기분까지 더해져 맛에 격을 높인다. 이곳에선 되도록 오랜 시간 머물다 가길 권한다. 찬찬히 둘러보면, 처음엔 눈에 띄지 않던 수묵담채 풍경화에 하나둘 눈길이 간다. 집 한 채를 수놓은 화가의 일평생을 슬쩍 엿보고 가자.주소 l 전주시 완산구 외원당길 15문의 l 010-9258-6002영업시간 l 11:00~22:00(화요일 휴무)할머니가 물려주신 레시피, 차경어릴 적 할머니의 손맛이 고스란히 자매의 레시피가 되었다. ‘경치를 빌려오다’라는 뜻의 ‘차경(借景)’의 창가 자리를 차지하고 차 한 잔을 마시노라면, 창 너머 슬몃슬몃 몸을 흔드는 바람이 말벗이 되어 준다. 예부터 선조들은 한옥의 창과 문을 ‘풍경을 담는 액자’로 보았다. 경기전 돌담길과 은행나무, 시야에 언뜻언뜻 걸리는 기와지붕과 처마까지. 아름다운 풍경에 둘러싸인 곳이지만, 주변의 경치를 내 것인 양 소유하기보다는, 잠시 빌려 즐길 수 있는 여유를 선사한다.고색창연한 풍경에 전통 차와 커피 향이 몸을 섞는 겨울날의 한때. 차 한 모금에 양갱 한 조각이 풍미 깊은 조화를 이룬다. 보존재를 넣지 않고 재료 본연의 맛을 살리며 당도를 줄인 수제 양갱은 팥, 흑임자, 호박, 쑥까지 네 가지 종류를 기본으로 하되, 계절 따라 재료를 달리하여 새로운 맛을 선보인다. 주인장 자매의 할머니가 물려주신 방법대로 고아낸 대추차와 부드러운 버터크림 위에 은행잎 모양을 얹은 달달한 커피가 고즈넉한 멋을 더한다. 우리네 전통 간식인 양갱을 보며 반가워하시던 어느 할머니는, 자녀들과 또 손녀들과 두 번, 세 번 다시 찾으며 단골이 되었다. 어르신부터 아이들까지 편안히 드나들 수 있다는 게 ‘차경’의 매력이다.주소 l 전주시 완산구 경기전길 61문의 l 063-282-4820영업시간 l 화~금 12:00~20:00, 토 11:00~21:00, 일 11:00~20:00시골집처럼 편안한 그곳, 이르리한옥마을을 찾은 모든 이들이 한 번쯤 편하게 이르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카페 이름을 ‘이르리’로 지었다. 이름에 걸맞게, 어릴 적 명절마다 찾던 시골 할머니 댁 같은 정겨움과 아늑함이 가득하다. 오래된 한옥 특유의 고풍스러운 느낌은 살리되, 구석구석 신경 써서 손본 티가 역력하다. 굴뚝과 우물, 정자가 예스러운 느낌을 한몫 보태고, 군데군데 메주와 고추 등 한국적인 소품으로 정감을 덧대었다. 2021년 8월에 문을 열었으니 이제 막 두 계절을 지난 참이지만, 한옥마을 방문객들 사이에선 제법 입소문이 자자하다. 품이 너른 마당 중정에 떡하니 자라 있는 배롱나무가 이곳의 명물. 배롱나무꽃이 흐드러질 무렵 정자 2층에 올라 마당을 내려다보면, 마치 커다란 꽃다발을 선물받은 듯 마음이 절로 풍족해진다. 동서남북 사방으로 풍채 좋은 한옥에 안긴 까닭인지, 이곳의 배롱나무는 바깥에서 자라는 배롱나무에 비해 꽃을 오래 피운다. 집이 주는 온기는 이렇듯 힘이 세다.여름엔 복숭아와 청귤, 가을엔 홍시. 제철 과일로 담그는 수제 과일청을 맛보고 싶거든 때를 놓치지 말고 찾아올 것. 오색 고운 색감의 떡크로플도 이곳만의 별미이다. 인심까지 꾹꾹 눌러 담은 손맛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주소 l 전주시 완산구 은행로 69문의 l 063-231-1528영업시간 l 9:30~22:00(연중무휴)
#마시랑게
#명천재
#차경
#이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