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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고쳤다 이 집

옛 여관이 여행자의 명소로

대명여관

2019.04
“나는 무거운 구두를 벗고 꽃나무 아래를 온종일 걸을 테다”라고 황인숙 시인은 <추운 봄날>이라는 시에서 노래한다. 따스한 봄날에도 구두는 여전히 무겁고, 그 버거운 생활을 잠시 벗어 놓을 곳을 찾아 사람들은 여행을 떠난다. 여기, 지친 두 발을 위로하는 한 채의 꽃나무 같은 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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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은 간판도, 방에서 나온 물건도 모두 그대로 두세요
전주시 중앙동에 있는 ‘대명여관 전주 갤러리 게스트하우스’는 산벚꽃 같다. 비슷비슷한 높이의 건물 사이에서 흰색 테두리와 붉은 벽돌이 어우러진 3층 건물은 눈에 얼른 들어오지만, 막상 가까이 가려면 골목 안쪽으로 들어가야 한다. 그러나 건물 앞에 서면 활짝 핀 산벚나무 아래 섰을 때처럼 활짝 열린 문이 발밑을 환하게 밝힌다. 이 문은 60여 년의 시간을 통과하는 문이기도 하다. 1950년대에는 ‘대명여인숙’이었다가 1969년에 ‘대명여관’이 되었다. 그리고 김은희 씨 부부의 손길이 닿아 지난 2016년 봄, ‘대명여관 전주 갤러리 게스트하우스’라는 새로운 이름을 갖게 되었다. 호주에 사는 부부는 김은희 씨의 친정인 전주에서 종종 시간을 보내곤 했는데, 우연히 빈 건물인 채로 방치되던 ‘대명여관’을 발견했다. 부부는 보자마자 “정말 멋지지 않아?” 하고 동시에 외쳤다고 한다. “우리 가족은 전주를 좋아해요. 그래서 나중에 전주에서 살 집이 필요하겠다고 생각하던 중에 이 집을 만난 거죠. 현재는 호주와 전주를 오가야 하는 상황이니까 여행자들을 위한 공간으로 만들게 됐어요.”라고 김은주 씨는 이야기한다. 그녀와 남편이 이 공간을 꾸미는 동안 가장 많이 한 말은 “그대로 두세요!”였다. 색 바랜 옛 간판과 항아리들, 방마다 놓여 있던 작은 TV와 낮은 탁자, ‘용건만 간단히’라고 써 놓은 전화기, 여관 주인이 사용한 붉은 자개장과 재봉틀 등을 이리 옮기고 저리 옮기는 고생을 자처했다. 부부에게 이곳의 가치는 대명여관이 거쳐 온 ‘시간’이었던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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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여행하는 곳, 옛것과 새것이 도란도란 나누는 이야기
사람이 모이는 곳에 시간이 고이면 이야기들이 생겨난다. 지금의 ‘대명여관’도 마찬가지. 1950년대부터 사람이 모이는 장소였으니 말해 무엇 하랴. “50대 한 여성분이 오셨는데, 여기에 살면서 대학을 다녔노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때 주인 할머니가 마당에서 빨래하시던 모습이 기억난다고 하시면서 반가워하셨어요. 예전에는 잠깐 하숙집으로 운영되기도 했던 모양이에요.” 김은희 씨가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중매쟁이’ 역할을 하게 된 일도 있다. 익산에서 영어 강사로 일하던 외국인들이 이곳에서 모임을 한 적이 있는데, 그날 만난 인연으로 결혼까지 하게 된 사람들이 있단다. 그래서 결혼 축하연도 이곳에서 열었다고 한다. 행여 이곳을 찾게 되거들랑 옛것과 새것이 도란도란 나누는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볼 일이다.
앞으로 김은희 씨 부부는 카페와 갤러리를 겸하고 있는 1층 공간에서 꾸준히 전시회를 열 예정이다. 또한, 이 공간과 어울리는 작품 활동을 하는 작가들에게는 무료로 장소를 내어줄 계획도 갖고 있다. 여행자들 마음속 꽃나무가 향기를 머금겠다.


대명여관 전주 갤러리 게스트하우스
주소 | 전주시 완산구 풍남문4길 25-10
문의 | 010-7528-2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