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년전주2025. 07
상생과 통합의 역사로 이어지는
만경강 철길
그림. 정인수
수탈과 함께 경계로 이어졌던 만경강 철길
만경강 철길은 1912년 전북경편철도주식회사가 설립되면서 처음으로 목교 형식으로 건설되었고, 이리와 전주를 잇는 경편철도 개통과 함께 전북 농산물의 집산과 수송을 담당했다. 그러나 1920년대 후반 일제는 호남평야의 농산물 수탈을 극대화하기 위해 경편철도를 국유화하고 레일 폭을 넓히는 광궤화 사업을 추진하였으며, 1928년에는 기존 목교를 철교로 재건축하며 지금의 만경강 철교가 준공되었다. 스틸 거더(Steel-Girder) 형식(강철을 하중 지지 부재로 사용하는 교량)의 구조를 가진 이 교량은 건립 당시 한강철교 다음으로 긴 규모를 자랑했으며, 당시 기술의 집약체로 여겨졌다. 그러나 그 화려한 명성 이면에는 호남평야에서 생산된 쌀이 일본으로 수탈되던 일제강점기의 뼈아픈 역사가 스며 있다. 이는 단순한 철도 시설을 넘어 일제 식민지 수탈의 흔적이자, 근대화 과정에서 희생된 지역 농민들의 삶을 상기시키는 역사적 증거물이기도 하다. 이후 수십 년간 지역민의 애환과 함께한 만경강 철교는 2011년 마지막 열차 운행을 끝으로 철도 기능을 멈췄다. 하지만 그 역사적 가치가 인정되어 2013년 12월 20일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되었고, 현재는 완주군이 관리하며 비비정예술열차 등 관광자원과 연계되어 활용되고 있다. 한때는 수탈의 상징이었지만 이제는 그 기억을 간직한 채 새로운 가치로 재탄생하고 있는 셈이다.
만경 강변(비비정) 일몰
역사문화 공간으로 상생하고 연결될 만경강 철길
전주시와 완주군은 2023년 12월 ‘전주·완주 상생협력사업 협약(9차)’을 체결하며, 지역 간 경계를 허물고 상호 발전을 도모하는 데 뜻을 모았다. 그 상징적 사업으로 떠오른 것이 바로 ‘완주·전주 상생 철길 조성사업’이다. 이는 전주 화전동과 완주 비비정을 잇는 옛 만경강 철교를 시민들의 휴식처이자 문화관광 공간으로 새롭게 조성하는 프로젝트로, 총 40억 원의 사업비가 투입되어 추진된다. 완주군은 옛 철교 상부에 약 475m 길이의 보행로를 설치하고, 전주시는 철교 접근이 용이하도록 주차장과 도로 등 기반 시설을 정비한다. 단절된 철로에 다시 생명력을 불어넣는 이 사업은 단순한 경관 개선을 넘어, 전주 시민과 완주 군민이 함께 걷고 머무는 상생의 장소를 만들어 간다는 데 큰 의의가 있다. 특히 이 철길이 과거에는 일제의 수탈을 위한 통로였다면, 이제는 지역 간 화합과 미래지향적 발전을 위한 ‘통합의 상징’으로 자리 잡게 되는 것이다. 철도에서 보행길로, 수탈의 기억에서 문화의 공간으로, 만경강 철교는 그 상징성과 실용성 모두를 아우르는 변화를 앞두고 있다. 전주시는 올해 내로 실시설계와 행정절차를 마무리하고 조성을 완료할 계획으로, 이 철길이 전주 시민과 완주 군민 모두에게 새로운 여가와 역사 체험의 장이 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과거를 기억하고 현재를 걷고 미래를 바라보는 길. 만경강 철교는 이제 전주와 완주를 잇는 또 하나의 따뜻한 다리가 되어, 지역 공동체의 새로운 미래를 설계하는 디딤돌로서 거듭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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