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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전주2025. 09

전주부의 행정 중심에서 전통문화 교육 터전으로

전주 동헌

오랜 세월의 풍파를 견뎌내고 우리 곁에 다시 선 건축물은 단순한 유산을 넘어,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과거의 이야기를 전해 주는 소중한 존재이다. 이들은 그 자체로 살아 있는 역사책이며, 지금도 시민들의 소소한 추억과 함께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가고 있다. 그중에서도 옛 전주 동헌 건축물로 그 당당한 멋과 전통을 전주 시민들에게 나누고 있는 전주전통문화연수원 이야기를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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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정인수


풍락헌에서 음순당으로

조선 시대 전주는 전라도의 수부로 전라감영과 함께 전주부가 설치됐다. 오늘날 산업은행과 기업은행 주변이 전주부 자리였다. 전라감영에서 전라감사가 업무를 보던 공간이 선화당이라면 전주부에서 전주부윤이 업무를 보던 공간이 바로 전주 동헌이었다. 하지만 전주부의 위상이 워낙 높았던 까닭에 지금의 전주시장 격인 전주부윤은 전라도 관찰사가 겸임하는 경우가 많아 전라감영 선화당을 이용했고, 전주부의 동헌은 실무를 보던 전주부 판관이 주로 이용했다. 

전주 동헌은 다양한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원래 풍락헌으로 불렸으며, 음순당이라는 이름도 함께 사용됐다. 풍락헌은 “풍패지향 전주를 안락하게 하는 집”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으며, 음순당은 “임금의 덕이 가장 순수한 술을 마신 것처럼 평화롭고 편안한 세상을 만들어 가자는 의미”로, 당시 유교적 통치 이념을 대변하는 이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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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부 동헌으로 사용되던 풍락헌(연도 불명) ◎전주전통문화연수원


일제강점기의 시련과 70여 년 만의 귀환

조선이 망하고 일제강점기에 들어서면서 전주 동헌의 시련이 시작됐다. 일제강점기, 일제가 민족말살정책을 펴면서 수많은 관아 건물이 파괴되거나 사라졌지만, 전주 동헌은 기적적으로 그 시련을 견뎌냈다. 1934년 민간에 매각된 전주 동헌은 완주군 구이면 덕천리로 옮겨져 전주 유씨 문중의 제각으로 사용되는 아픔을 겪었다. 

이 과정에서 정면 한 칸이 소실되는 등 원형이 훼손되기도 했다. 

그러나 전주 동헌의 상징성과 역사성을 되살리고자 하는 전주시의 노력, 그리고 소유주였던 유인수 선생의 쾌척(2007년) 덕분에 동헌은 2009년, 75년 만에 한옥마을의 현재 위치로 귀환할 수 있었다. 2008년 6월부터 2009년 11월까지 진행된 이전 및 복원 공사를 통해 소실되었던 한 칸까지 원형이 복원되어 28칸의 위용을 되찾은 전주 동헌은 문화유산 복원과 새활용의 모범적인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전통문화 교육의 새로운 거점

현재 전주 동헌은 전주전통문화연수원으로 새롭게 태어나 다양한 전통문화 체험 및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시민들과 관광객들에게 우리 문화의 아름다움을 알리고 있다. 2011년 개원한 이곳은 동헌 외에도 독립운동가 장현식 선생의 고택 두 채가 연수생들을 위한 숙소로 활용되며 역사적 의미를 더하고 있다. 또한 임실 진 참봉 고택 사랑채도 함께 자리하여 전통 한옥의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다. 이곳에서 아이들은 전통문화를 배우고, 어른들은 잊었던 역사를 되새기며, 각자의 소소한 추억을 더해 간다. 한 세기가 넘는 세월 동안 굳건히 서 있는 전주 동헌의 모습에서, 우리는 시간을 초월한 문화의 힘과 그것을 지켜 온 사람들의 마음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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