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진 하루
전주 기린봉
묵묵히 거기 있어 더욱 빛나는 산
2019.10시리도록 아픈 기린봉의 추억
기린봉 이야기를 하자면 30여 년 전으로 올라가야 할 것 같다. 작고 아담한 시골 마을. 산으로 가로막힌 버스 종점이 있었고, 종점 뒤편에 허름한 한옥이 있었다. 그 뒤채에 자리한 2만 5천 원짜리 사글셋방이 참으로 가당찮지만 세상을 바꿔 보겠다고 여러 번 답사 끝에 얻은 안전 가옥, 나의 자취방이었다. 그곳이 바로 기린봉 아래였고, 주인집 할머니와 나와의 동거는 거의 1년을 넘겼던 것 같다.
시절은 하 수상하였다. 기린봉 산 그림자에 복학생 운동권의 삶도 녹록하지 않았다. 부모님이 주신 등록금은 분실로 위장하고 선거를 준비하는 후배의 등록금으로 사용하였다. 그리고 나는 휴학을 했다. 멀리 대륙에선 이념의 한 축이 무너져 내리고 있었고, 자고 나면 대학생들의 죽음이 연일 지면을 달구던 시절이었다. 이른바 열사 정국이었다. 참으로 시리도록 아픈 기린봉 시절이었다. 그리고 1년 뒤, 나는 그곳을 떠났고, 가슴이 답답할 때 하릴없이 올라 지친 심신을 달랬던, 내 청춘이 잠시 머물렀던 기린봉은 오랜 세월 기억 저편 아득한 곳에 구겨 넣고 잊고 살았다.
이두황 단죄비를 세우다
20여 년 뒤, 민족문제연구소 전북지부장을 맡으면서 기린봉과 다시 만났다. 한때 시대에 울분한 한 청춘의 호흡을 고르게 해주던 기린봉이 아닌, 다소 불편한 기린봉으로…. 기린봉 초입 양지바른 언덕에 누워 있는 친일 반민족행위자 이두황의 무덤 때문이었다.
이두황은 동학 농민군 진압부대의 우선봉장으로, 명성황후 살해의 일본군 길잡이로, 정미 호남의병에 대한 ‘대토벌’ 작전의 혁혁한 공로자로 용서할 수 없는 역사의 죄인이다. 어이없게도 기린봉이 품은 성정과는 전혀 다른 인물이 기린봉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전주성을 내려다보며 죄인 이두황의 행각을 묵묵히 지켜본 기린봉인데 말이다. 기린봉은 그들에게도 몸을 의탁할 수 있는 좋은 안식처로 보였던 모양이다. 결국 이두황 사후 100년이 되던 해인 2016년에 이두황 단죄비를 기린봉 사거리에 세웠고, 구천을 중음신으로 떠돌던 농민군과 의병들의 혼백을 위로하는 진혼굿을 열었다. 그러고 나니 마음이 조금 편안해지고 비로소 기린봉이 온전히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어찌 보면 기린봉은 늘 그 자리에 있었다. 무념 무상 비로자나불의 모습으로 희로애락애오욕의 모든 인간들에게 늘 곁을 내어주었다. 샐쭉하게 토라진 가시내의 모습도, 속세의 들뜬 허영과도 애당초 인연이 없이, 없는 듯 있는 듯 조용히 미소 짓고 있었던 것이다. 진산(鎭山)이 아니면 어떻고 주산(主山)이 아니면 어떠리. 기린토월(麒麟吐月), 우백호(右白虎)의 거추장스러운 장삼도 부담스럽게 느끼며 벗어 버리고 싶은 것이 기린봉의 진면목 아니었던가.
일상의 삶조차 보듬어 주는 기린봉
민족문제연구소와 전북민언련에서 같이 활동하는 정혜인 선배와 오랜만에 기린봉에 올랐다. 속살 드러내 놓고 솔향, 흙향, 풀향을 그윽하게 객들에게 풀어놓는 기린봉. 하찮은 미물조차도 함부로 내치지 않는 배려가 미덥다. 속세에 찌든 일상의 삶들에 이렇게 가까이서 이렇게 다정하게 안아주는 산이 얼마나 있을까. 정상에 오르니 자신의 몸을 지탱하며 밟고 서서 저 넓은 세상을 보라 한다. 어떠한 금기도 없이 넉넉한 품으로 세상을 껴안으며 역사를 품어 왔던 순교자의 모습이다. 전주천 물기를 머금은 동고사 풍경 소리가 바람에 실려 오고, 저 멀리 모악산에서는 미륵이 걸어 나온다. 완산칠봉 등성마다 일자진을 친 갑오년 동학 농민의 함성도 들려오고, 변복을 하고 전주성 동문을 빠져나가는 전라감사 김문현의 줄행랑도 보인다. 남부시장 아낙의 흥정 소리도, 멀리 비비정 만경강 기슭을 거슬러 오는 만선의 황포돛배도 품 안에 들어온다.
우리는 가까이 있는 존재에 대한 소중함을 모르고 사는 것 같다. 기린봉이 딱 그렇다. 칭얼거리지 않고 묵묵히 거기 있음으로 더욱 빛나는 게 기린봉이다. 드러내지 않음이 드러냄이다. 마주 보면 서로 닮아 간다 했던가? 일망무제 호남평야의 넓은 들을 바라보다 스스로 넓어진 것이 기린봉이 아닌가 싶다.
지짐지짐 가랑비가 내린다. 내려갈 채비를 서두른다. 맑은 가을날, 기린봉이 아중저수지의 물로 목욕하고 색색의 옷으로 꽃단장하는 날 다시 와야겠다.
글 김재호 | 민족문제연구소 전북지부장
김재호 씨는 2011년부터 민족문제연구소 전북지부장을 맡아 굴절된 역사를 바로 세우고자 일제 잔재 청산에 앞장서고 있다. 사람과 역사를 위해 조그마한 힘이나마 보탬이 되고자 늘 분주히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