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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과 더불어
생의 끝자락에서 희망을 엮어 내다
백혈병 투병기를 책으로 엮은 작가 이주완
지난해 잠시 멈춰 있던 고3 생활로 돌아가 수능시험을 봤다는데, 4년 만의 수험생 생활은어땠나요?저는 고등학교도 다녀 봤고, 고3 생활도 해 봤으니까 힘든 것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지만, 제가 직접 겪어 보니까 ‘아이들이 정말 힘들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사람 일은 직접 겪어 봐야 아는 것이고, 그래서 우리는 상대방의 처지에서 더 생각해 보고 공감해 보려고 노력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제 작가 이주완이라는 또 하나의 직함이 생겼어요. 주변 분들 반응이 궁금한데요?친구들이 했던 말 중 제일 재밌었던 말은 살면서 별의별 녀석을 다 봤지만, 책 쓴 작가는 처음 본다고 했을 때예요. 친구라는 이유로 책을 사서 읽었겠지만, 책을 읽고 나서 ‘이젠 이주완이 정말 작가 같다’고 말해 주더라고요. 가장 기분 좋았을 때는 책을 읽고 나서 영화를 보듯이 잘 읽었다고 얘기해 줄 때였어요. 많은 분들이 책을 처음 보고는 두껍고 글자도 작아서 지루할 것 같다고 느끼시는 듯해요.(하하) 백혈병 투병기를 책에 담았어요. 책을 통해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을까요?우리가 하는 일이나 공부, 모든 것들이 한 가지 목표를 향해서 존재하는 거잖아요? 바로 행복해지기 위해서죠. 그런데 사실 ‘행복하다’고 느끼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 같아요. 저는 행복은 좇는 게 아니라 함께 머물러 있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병원에 있을 때, 많은 분들이 힘들었을 것으로 생각하시는데, 나름대로 행복했던 순간들도 있었거든요. 누구에게나 평범한 일상 속에 행복은 존재하잖아요. 저도 돌이켜 보면 아프면서 행복을 배웠고, ‘행복은 늘 우리 곁에 있다’는 깨달음도 얻었어요. 여러분이 제 경험을 통해 각자의 희망과 행복을 찾았으면 하는 게 제가 여러분께 하고 싶은 이야기예요. 투병하기 전과 후, 삶에 대한 자세가 달라진 게 있나요?제 책의 독자들이 ‘아픔이 너를 성장시켰구나’ 내지는 ‘네 삶의 전환점이 되었구나’, 말씀하세요. 저는 투병 전과 후, 사실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 같아요. 하지만 크게 깨달은 것들은 분명 있어요. “하루를 감사하며 살아야 한다, 건강만큼 소중한 게 없다”라는 말들을 많이 하는데, 그 이유를 많이 실감하지 못했던 것 같아요. 저도 아프고 나서 ‘왜 우리가 건강이 최고라고 얘기하는가, 왜 우리에게 하루가 소중하고 감사한 것이었나’, 그 이유를 알게 됐다는 거죠. 아픔을 통해서 제가 바뀌었다기보다는 우리가 이미 알고 있던 것들의 이유를 알게 된 것, 그게 가장 달라진 점인 것 같아요. 앞으로 이루고 싶은 꿈이 있을까요?저는 지금 많은 분들이 주신 사랑과 고마움으로 오늘을 살아가고 있어요.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은 ‘희망 맛집’을 차려 그분들로부터 받은 사랑과 고마움에 보답하고 싶어요. 그래서 현재 ‘희망 레시피’를 개발하고 연구하는 중이에요. ‘희망 맛집’을 차리면 언제든 오셔서 많이들 드시라고요. 그 값은 활짝 웃는 모습으로 받을 거예요. 소박한 꿈이지만, 지금 제가 꿈꾸는 제 인생의 목표예요. 이주완 | 도서출판 레드우드평범한 고3 수험생이었던 이주완 씨가 급성 백혈병 진단을 받은 날로부터 1,009일간의 투병기를 일기 형식으로 담담하게 풀어썼다. 하지만 이 책은 단순한 백혈병 투병기가 아니다. 겨우 열아홉의 나이에 예기치 못한 불행을 맞았으나 그만의 긍정적인 생각으로 암을 이겨낸 행복 메시지를 담고 있다. 고통을 희망으로 읽는 법과 아프면서도 행복을 찾는 법을 전하고 싶었다는 작가 이주완. 2021년 오늘을 살아가는 힘들고 지친 이들에게 희망을 떠올리게 한다.
2021.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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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의 꽃심
“전주 사람의 역사가 곧 전주의 역사이지요”
신동수 어르신 선친의 유언장과 개인 기록물
삶의 좌우명이 된 선친의 유언장제가 무녀독남 독자예요. 그 옛날 독자로 태어났으니, 외아들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은 이루 말할 수 없었지요. 1971년 남기신 선친의 유언장에도 저에 대한 사랑과 당부가 가득 담겨 있습니다. 선친께서는 후두암으로 오랜 시간 투병하시다 돌아가셨는데요, 임종 보름 전 유언장을 작성하셨습니다. 유언장에는 다섯 가지 당부가 담겨 있습니다. “어머님께 효도해라, 우리 논을 지켜라, 상급 학교 교사가 되어라, 장례는 가정의례 준칙대로 치러라, 곧 태어날 네 아들 교육에 힘써라”가 그것입니다. 그 유언장을 좌우명 삼아 최선을 다해 살았습니다. 당시 완주군 간중초등학교에 재직 중이었는데, 선친의 유언을 받들어 중·고등학교 교사가 되기 위해 공부를 시작했습니다.노송동에 지금의 전주대학교 전신인 영생대학이 있었어요. 완주에서 근무를 마치고 야간에 영생대학을 다니며 중·고등학교 교원 자격증을 땄습니다. 사실 제가 근무하느라 선친의 임종을 지키지 못했어요. 그게 한스럽고 죄송해서 마지막 남기신 말씀은 꼭 지키겠다고 다짐했거든요. 선친의 유언장이 제가 열심히 살아가는 원동력이 된 것입니다. 얼마 전 제 아들이 세상을 떠났어요. 서울에서 4년, 전주에서 4년 9개월을 희귀병에 걸린 아들을 수발했는데 하늘도 무심하게 떠나 버렸지요. 그런데 돌이켜 생각해 보니,아들에 대한 제 사랑은 모두 선친에게 물려받은 게 아닌가 싶더군요. 자식을 사랑하는 선친의 마음이 제게 고스란히 전해진 것이지요. 그래서 10년 가까운 그 힘든 세월을 잘 견딘 것 같아요. 그런 생각을 하니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더욱 사무쳤습니다. 전주와 함께한 내 청춘의 기록물들 제 고향이 초포리인데, 옛날에는 완주군 하리였어요. 훗날 전주시에 편입되면서 초포리가 되었지요. 한마디로 전주시 외곽에 살았습니다. 그곳에서 전주북중학교까지 왕복 50리 길을 걸어 다녔어요. 새벽에 일어나 별 보고 출발해서 학교에 갔습니다. 당시 전주북중학교가 지금 전주고등학교 자리에 있었거든요. 한 울타리 안에 앞쪽 건물이 북중, 뒤쪽 건물이 전주고였습니다. 그 당시 학교 앞에 전주역이 있었고, 그 역 앞으로 개천이 흘렀어요. 그 옆으로 미나리꽝이 있었던 기억도 선명합니다. 제가 선친의 유언장과 함께 제 개인적인 기록물들을 전주시에 기증했는데요. 북중학교 졸업 앨범도 그중 하나입니다. 당시 졸업 사진을 한벽루 앞에서 찍었어요. 제 졸업 앨범 속에 과거의 전주가 살아 있는 셈이지요. 1963년 육군사관학교 입교생 수험표에도 전주의 역사가 담겨 있습니다. 그때만 해도 육사가 성공의 지름길이라고 많이들 선호했습니다. 육사만 나오면 탄탄대로였던 시절이었으니까요. 당시 덕진동에 육군병원이 있었어요. 그때만 해도 호반촌도 개발되기 전이라 병원 주변은 허허벌판이었습니다. 전라북도 육사 지원생들은 모두 그 병원에서 신체검사를 했어요. 신체검사가 무척 엄했는데, 저는 결국 신체검사에서 탈락했습니다. 그때 수험표를 ‘백로지(갱지)’라고 질이 좋지 않은 노란 종이로 만들었거든요. 그 수험표를 보관하고 있다가 전주시에 기증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그저 오래된 종이 한 장일지 몰라도 제게는 참 의미 있는 기록물입니다. 원래도 노란 종이가 세월이 쌓여 더 빛바랜 종이가 되었지만, 제 청춘과 전주의 역사가 담겨 있으니까요. 1964년 호성동사무소에서 발급한 병역신고필증도 그런 의미에서 함께 기증했습니다. 1960년대 전주 시민의 생활상을 보여 주는 자료가 되지 않을까 싶었어요. 개인의 기록물로 전주의 생활상을 보여 주고파제가 전주시에 기증한 선친의 유언장과 제 졸업 앨범, 수험표, 병역신고필증 등은 모두 전주에서 있었던 일을 기록한 것입니다. 모두 전주가 만들어 준, 가족의 역사가 담긴 기록물인 거예요. 전주에서 태어나 전주에서 살아오면서 전주에서 남긴 전주가 준 기록물 말입니다. 그러니 전주시에 기증해야 하는 게 맞지요. 전주 사람의 역사이면서 전주의 역사이기도 한 기록물을 전주시에서 보존했으면 하는 마음에 기증하게 됐습니다. 제 기록물이 요즘 사람들에게 ‘옛날 전주 사람들은 이렇게 살았다’는 걸 보여 주는 자료가 되었으면 합니다. 요즘 여러모로 참 힘든 상황인데요, 돌이켜 보면 역병은 주기적으로 돌았습니다. 제가 초등학생 때인 1950년대에는 ‘뇌염방학’이란 게 있었어요. 흔히 전염병이 창궐한다고 하죠? 당시 뇌염이 창궐할 때 일주일 이상 방학을 했습니다. 그런 시기를 겪은 사람으로서 지금 상황이 참 안타까워요. 제가 2005년 전주생명과학고등학교에서 정년퇴직했는데요. 30년 넘는 교직 생활 동안 전라북도 곳곳으로 전근 다니면서도 늘 전주를 생각했습니다. 제 기록물이 전주와 전주 시민들에게 조금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합니다. 일흔여덟 살 할아버지의 삶이 담긴 기록물을 보며 젊은 사람들이 조상들의 생활상을 만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신동수(77) 어르신은 전주북중학교, 전주고등학교, 전주교육대학교, 영생대학을 졸업하고 초·중·고등학교에서 교직 생활을 했다. 제9회 전주 기록물수집공모전에 선친의 유언장과 개인 기록물을 기증하여 최우수 기록물로 선정됐다.
2020.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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