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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밖의 전주

추억을 싣고 숲으로 돌아온 금암분수정원

2021.05
누군가가 ‘전주에서 좋은 정원이 어디냐’고 묻는다면 나는 망설임 없이 금암분수정원을 추천한다. 크고 작은 분수가 있고, 흔히 볼 수 없는 다양한 꽃과 나무들, 그리고 잠시 머물다 갈 수 있는 쉼터가 있어서다. 봄볕 쬐기 좋은 4월 중순, 서신동 공유공간 수공예학교 ‘잇다’ 김나리, 장영분 회원들과 함께 금암분수정원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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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만의 재탄생, 금암분수정원.
중학교 시절, 버스를 타고 통학하면서 늘 금암분수대를 지나쳤다. 그래서일까. 분수대가 있을 때나 없었을 때나 내 기억 속에 이곳은 항상 금암분수대로 남아 있다. 그만큼 금암분수는 도시의 랜드마크였고, 시민들에겐 추억의 장소다. 1991년 기린대로를 확장하면서 분수를 철거한 지 30년, 금암광장 교차로에 다시 분수가 들어서고 정원이 만들어졌다. 옛 금암분수를 더 생태적으로, 더 넓은 쉼터로, 더 아름다운 정원으로 복원한 것이다.
지난겨울에 공사를 마친 금암분수정원은 가장 먼저 지름 15m의 거대한 수반형 분수가 눈에 띈다. 그 둘레를 제주도의 특수목과 꽃과 풀이 빙 둘렀는데, 이제 막 파릇파릇하게 새 생명이 움트고 있다. 꽃과 나무 주변으로는 원목 재질로 만든 둥근 플랜터(planter, 화초를 심기 위하여 멋스럽게 잘 만든 화분)가 자리했다. 벤치 기능을 겸하고 있는 플랜터에 앉아 금암분수의 시원한 물줄기를 감상해 본다. 거대한 수반형 분수에서 흘러내리는 물소리가 도시에 생기를 불어넣는 것 같다.
금암분수정원이 재탄생하면서 주변의 보행광장도 새롭게 단장했다. 모양이 좋은 교목(다간형)과 화관목, 초화류, 크고 작은 돌로 촘촘히 만든 길이 어우러져 도시에서 흔히 볼 수 없는 정원의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보행광장 가운데에는 커다란 산벚나무가 우뚝 서 있다. 벚꽃 철이 지나 그 화려함은 보지 못했지만, 내년 봄엔 올해보다 무성한 꽃을 보여 주리라. 산벚나무 옆에 있는 지름 5m의 소형 분수대는 오가는 이에게 잠시나마 쉼의 여유를 건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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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 그대로의 수형이 아름다운 나무들
금암분수정원을 둘러싼 수십 종의 나무들을 가만히 바라보니 마치 숲에 온 듯 마음이 편안해진다. 다른 도심 속 공원에서는 느껴보지 못했던 여유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그러다가 나무의 모습이 남다른 것을 발견했다. 금암분수정원의 나무들은 기존의 도심 공원이나 가로수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한 줄기로 곧게 뻗은 나무들이 아닌 것이다.
산에 가야 볼 수 있는 굽이굽이 여러 줄기가 굽은 나무들이 정원을 채우고 있다. 여러 갈래로 자라는 다간형 수형의 나무, 자연스럽고 자유로운 모습의 나무들이 금암분수정원을 편안한 숲으로 만들고 있다.
심는 방식도 다르다. 공원, 아파트 등에는 키가 크게 자라는 나무 3~5주씩을 모아 심고, 작게 자라는 나무인 철쭉, 회양목 등도 대부분 여러 나무를 모아 심는다. 하지만 이곳에는 나무 한 그루 한 그루를 독립적으로 심어 각기 종이 다른 나무와 나무가 어우러질 수 있도록 했다. 어느 무리의 일원이 아니라 나무 한 그루 자체가 주인공이 되도록 배려한 것이다.
이곳에서 생전 처음 본 크기의 나무도 있다. 금암분수대 중앙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참빗살나무는 그동안 내가 접했던 것 중 가장 키가 크다. 보통 3~4m가 대부분이었는데 금암분수정원의 참빗살나무는 8m는 되는 것 같다. 처음 보는 솔비나무도 눈길을 끈다. 솔비나무는 전북의 산에도 자라는 다릅나무 사촌 격인 나무로, 제주도 한라산에서 자라는 나무인데 이곳에서 만나게 되니 감회가 새롭다. 윤노리나무, 꽃아그배나무, 참꽃나무, 한라백당 등 지역에서 쉽게 볼 수 없는 멋진 수형을 가진 63주의 나무가 제주도에서 이주해 심어져 있다. 이 외에도 산벚나무, 산딸나무, 서어나무, 팥배나무, 마가목, 화살나무, 이스라지, 노랑말채나무 등 셀 수 없이 많은 꽃과 나무들이 금암분수정원의 주인으로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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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보다 내일이 더 기대되는 정원
사람마다 미의 기준이 다르듯, 금암분수정원에 대한 평은 천차만별이다. 꽃이 피는 튤립, 알리움과 같은 초본이 많았으면 좋겠다고 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어떤 이는 키 크고 곧은 나무들이 일년 내내 초록초록 했으면 좋겠다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공공정원에서는 사람의 손길이 많이 필요한 초본 중심의 정원 양식을 선택하기란 쉽지 않다. 이곳뿐만 아니라 기존에 조성된 많은 공원과 가로수 등도 관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금암분수정원은 초본 대신 유지 관리가 덜하면서도 자연을 느낄 수 있는 억새 종류를 많이 도입해 더 자연스러운 멋이 있다.
정원 디자이너의 성향이 반영되었겠지만, 예전에는 나무 아래 튤립, 삼색제비꽃, 팬지, 수선화, 지면패랭이 등을 넓은 면적에 심곤 했었다. 보는 이에 따라 예쁘다는 사람도 있지만, 인위적이라는 의견도 많았다. 반면, 금암분수정원은 자연스러운 경관 연출을 위해 다양한 교목과 꽃이 피는 초본을 적절히 배치해 심었다. 기존 정원들은 지금이 가장 아름답도록 조성되는 경우가 많았는데, 금암분수정원은 앞으로 시간이 지날수록 더 아름답고 편안하게 변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오늘보다 내일이 더 기대되는 정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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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 도시의 꿈은 이루어진다
‘천만 그루 정원 도시 전주’의 이상적인 모습을 생각해 본 적이 있다. 도시를 상징할 만한 규모가 있는 식물원과 수목원 그리고 정원이 있는 모습, 도로마다 ‘가로 정원’이 가꾸어져 있고 꽃이 예쁘게 핀 소공원이 도심 곳곳에 있는 모습, 도시 주요 건물에는 벽면 녹화가 되어 있고 옥상에도 정원을 가꾸는 모습, 또 좁은 골목도 특색 있게 정원으로 꾸며져 있고, 상가나 주택도 공간에 어울리는 정원을 갖추고 있는 모습, 이런 게 진짜 정원 도시가 아닐까 한다.
그런 거라면 전주는 정원 도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전주시가 소유하고 있는 크고 작은 공간들을 금암분수정원처럼 특성을 살려 정원으로 조성하고 시민들은 아파트, 상가, 골목 등을 아름다운 정원으로 만들어 간다면 전주는 정원 도시로 성장할 수 있다. 전주에 큰 정원이 없다고 정원 도시가 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 공간이 작더라도 생활공간들을 아름다운 정원으로 만들어 간다면 전주 정원 도시의 꿈은 이루어진다.
봄이 무르익어 가고, 여름 향기가 조금씩 묻어나는 이때 금암분수정원에 가 보자. 분수대 물줄기의 시원함, 나무와 꽃이 주는 청량감을 즐기기에 더없이 좋다. 도시의 바쁜 일상을 뒤로하고, 도심 속 작은 정원이 주는 특별한 쉼이 필요한 사람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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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최현규 | 천만그루정원도시추진위원회 운영위원장
시민행동21 사무처장과 전주생태하천협의회 사무국장을 맡고 있으며, 최근에는 전주정원도시추진위에서도 활동하고 있다. 반딧불이 복원, 호랑나비 복원, 정원 도시에 관심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