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리 J
우리가 몰랐던 전주 이야기
천년의 관문, 붓끝으로 빚은 ‘전주’라는 두 글자
<p style="text-align: center; "><img src="https://daum.jeonju.go.kr/_data/sys_webzine_list/1774246833_6KiNMEZqze_EKLAQ6S5n2Kbp-duHFll96P9Lw8K4J69c0dbb1.jpg"></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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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atc_txt01">고속도로를 갤러리로 만드는 예술</p>
<p>전주 톨게이트의 현판은 일반적인 안내판과는 궤를 달리한다. 이는 서예가 효봉 여태명 작가가 쓰고, 대한민국 서각 명장인 김종연 작가가 나무에 정교하게 새겨 완성한 합작품이다. 우리나라 고속도로 나들목 중 예술적 필치가 담긴 ‘한글 서예’가 현판으로 걸린 사례는 전주가 독보적이다. 대부분의 도시가 가독성만을 고려한 규격화된 서체를 사용하는 것과 달리, 전주는 가장 한국적인 글씨와 서각을 통해 도시의 첫인상을 결정했다.<br>
여태명 작가는 조선 시대 민초들이 즐겨 썼던 자유분방한 ‘민체’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여 글씨를 썼고, 김종연 작가는 그 필력의 생동감을 그대로 살려 내어 입체적인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이는 전주가 단순히 옛것을 보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전통 예술을 현대의 삶 속으로 끌어들여 대중과 호흡하게 만드는 ‘문화 수도’임을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 도시의 관문에서 마주하는 투박한 서체와 나무의 질감은 방문객들에게 전주만의 독특한 정서를 전달한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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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atc_txt01">글자 속에 숨겨진 전주의 땅과 마음</p>
<p>이 현판의 진정한 가치는 ‘들어올 때’와 ‘나갈 때’의 글씨가 서로 다르다는 점에 있다. 작가는 전주를 찾는 사람과 떠나는 사람의 마음을 헤아려 자음과 모음의 크기를 세심하게 조절했다.</p><p>먼저 전주 시내로 들어올 때 마주하는 현판을 보자. 첫 글자인 ‘전’의 자음 ‘ㅈ’은 작게, 모음 ‘ㅓ’는 아주 크게 쓰여 있다. 작가의 설명에 따르면 자음은 자식(子)을, 모음은 어머니(母)를 상징한다. 즉, 타지에서 고단한 삶을 살다 돌아온 자식이 어머니의 넉넉한 품에 폭 안기는 형상을 표현한 것이다. 특히 ‘전’ 자의 ‘ㅓ’와 ‘ㄴ’ 사이의 여백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붓이 지나간 자리에 하얗게 남은 이 ‘비백’의 공간은 당시 전주시의 지도 모양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이다. 글자 하나가 전주라는 도시 전체를 품고 있는 셈이다.<br>
반면 전주를 떠나 서울로 향하는 쪽의 현판은 정반대의 구성을 취한다. ‘ㅈ’이 크게, ‘ㅓ’가 작게 그려져 있다. 이는 전주라는 비옥한 토양에서 기운을 얻은 자식이 장성하여 세상으로 당당하게 뻗어 나가는 ‘성공’과 ‘비상’을 의미한다. 떠나는 이의 뒷모습을 보며 아쉬워하기보다, 더 큰 세상에서 뜻을 펼치기를 바라는 어머니의 축복이 붓끝에 서려 있다. 전주로 들어올 때 받았던 위로가 나갈 때는 용기와 희망으로 변하는 드라마틱한 서사가 이 짧은 두 글자 속에 흐르고 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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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atc_txt01">가장 전주다운 첫인상이 만드는 힘</p>
<p>이 현판은 전주의 정체성을 담은 숨겨진 문화 콘텐츠다. 회색 콘크리트 숲을 지나 한옥의 곡선과 서예의 유연함을 마주하는 순간, 방문객은 전주가 지향하는 ‘풍류의 미학’을 본능적으로 체감한다. 이는 전주가 전통을 현대적으로 재창조하는 품격 있는 도시임을 증명하며, 지역민에게는 깊은 자부심을 선사한다. 한 글자 속에 담긴 환대와 축복의 서사는 오늘도 오가는 이들에게 다시 찾고 싶은 고향의 여운을 남긴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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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3.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