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년전주
기품을 간직한 어르신들의 쉼터, 전주 기령당
<p class="center"><img src="https://daum.jeonju.go.kr/_data/sys_webzine_list/1761120690_n3x0sj2kq1AIglTXAhnbZGp1FpsPJCP4RvCL_Im_f68f891b2.jpg"><br></p>
<p style="text-align: center; font-size:0.9em;color:#999;padding-top:10px;line-height:1.2em;">그림. 정인수</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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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atc_txt01">정유재란 잿더미 위에서 군자정, 그리고 기령당으로</p>
<p>기령당에 관한 최초 기록으로는 정유재란 직후인 1597년 운영 기록이 남아 있다. 그러나 본격적인 기원은 조선 시대 활터였던 군자정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현재 기령당 건물은 1844년 건립된 군자정 건물로, 정면 5칸, 측면 3칸 규모의 목조 한옥이다. 1767년 전주부성 내 큰 화재가 발생했을 때 군자정이 불탔고, 광풍에 날린 현판이 현재 기령당 자리에 떨어졌다고 전해진다. 사람들은 이를 길한 징조로 여기고 그곳에 다시 정자를 세웠다. 경로당으로서의 역사는 1899년 전주부사청 내 양로당 창설로 공식적으로 시작됐다. 1921년 진사 이건호가 완산동 가옥과 대지를 기증하며 ‘기령당’이라는 이름을 얻었고, 1949년 지역 부호 인창섭이 군자정 건물을 구입해 기증하면서 현재의 모습을 갖추었다. 기령당은 조선 시대부터 지역 유지들의 정성과 헌신으로 오랜 세월 그 명맥을 이어왔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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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center"><img src="https://daum.jeonju.go.kr/_data/sys_webzine_list/1761120581_gtGUmJq3nAL2tiVXvSqHE6pgfnj-Idbk7SO97MM3W68f89145.jpg"><br></p>
<p style="text-align: center; font-size:0.9em;color:#999;padding-top:10px;line-height:1.2em;">1950년대 기령당 정기총회 ©기령당 제공</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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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atc_txt01">전주의 전통을 계승하는 여유로운 쉼터</p>
<p>뒤뜰의 오래된 소나무가 그늘을 드리운 기령당은 느림의 정취가 살아 있는 공간이다. 근대 한옥 살림집 건축 특성을 지닌 기령당 건물은 조선 후기부터 근대까지의 한옥 변화 과정과 뛰어난 건축 수법을 보여 준다. 문과 창문의 정교한 제작 기술과 다양한 문양의 창호는 높은 예술적 가치를 인정받는다. 단정하면서도 화려한 창호 하나하나에는 기령당을 거쳐 간 기품 있는 전주 어른신들의 손길이 담겨 있으리라. 기령당에는 조선 시대 전라도선생안(전라도관찰사 명부)과 전주부선생안(전주부윤 명부)이 소장되어 있다. 현재도 역대 도지사와 시장 명부 및 방명록으로 이어지며, 살아 있는 기록물로서 가치가 유지된다. 또한 매년 음력 4월 10일에는 창립 기념행사가 열리고, 2008년부터 음력 9월 9일 중양절에는 기로연이 개최된다. 기로연은 조선 시대 기로소의 전통을 이어받아 사회에 헌신한 은퇴 관료 9명을 초청해 연회를 베푸는 행사다. 이러한 전통은 전주라는 공동체 유지에 대한 감사와 효의 가치를 후세에 전하는 살아 있는 무형문화유산이다. 기령당은 오늘날에도 온고을 완산 어르신들이 모여 세월 이야기를 나누는 전주의 뿌리이자 쉼터이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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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