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궁원, 전주
위대한 기록의 성지,
전주사고
<p class="center"><img src="https://daum.jeonju.go.kr/_data/sys_webzine_list/1779454366_QpfxdA03dSWEYY4m9s7TgkGL1cT1bxPtj_NMgc17r6a10519e.jpg"></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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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atc_txt01">역사가 머물고 종이가 숨 쉬는 곳</p>
<p>조선 왕조는 기록의 나라였다. 왕이 서거하면 실록을 편찬해 전국 네 곳에 보관했는데, 전주에 사고가 들어선 것은 세종 21년(1439년)의 일이다. 전주는 조선 왕실의 뿌리인 ‘풍패지향’이었기에, 태조 어진을 모신 경기전이라는 가장 신성하고 안전한 품에 실록을 맡기는 것이 마땅하다고 판단한 결과였다.<br>
전주사고의 건축적 특징은 ‘습기 및 화재와의 전쟁’이다. 사고는 1층 바닥을 지면에서 높게 띄운 고루식 구조로 설계되어 습기가 종이를 썩게 하는 것을 차단했다. 사방에는 통풍을 위한 창문이 촘촘히 달려 있어 실록이 숨을 쉴 수 있게 배려했다. 왕조차 함부로 열어 볼 수 없었던 이 성역은 조선의 사관과 기록 정신을 상징하는 건축적 결실 그 자체였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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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atc_txt01">6,400여 권의 사투와 ‘뒤바뀐 표지’</p>
<p>1592년 임진왜란이 터지자 전국의 사고는 모두 잿더미가 되었다. 오직 전주사고의 실록만이 오희길, 안의, 손홍록 등 전주 사람들의 손에 의해 기적적으로 살아남았다. 이들은 실록 6,400여 권을 60여 개의 궤짝에 담고 정읍 내장산 용굴로 향했다. 1년 넘게 굴속에서 노숙하며 기록을 지켜 낸 헌신 덕분에 전주본 실록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빛나고 있다.<br>
하지만 이 위대한 생존기에도 아쉬운 빈틈은 있다. 바로 ‘문종실록 제11권’의 영구 손실이다. 편찬 당시 실수로 제11권의 표지를 제9권에 입히는 바람에, 전주사고에는 제9권만 두 권이 보관되었다. 전쟁 후 유일하게 살아남은 전주본을 바탕으로 실록을 복원했기에, 결국 문종 1년 12월과 2년 1월의 기록은 역사 속으로 영원히 사라지고 말았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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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atc_txt01">다시 깨어난 기록의 밤, 왕의 궁원에서 놀다</p>
<p>오늘날 전주사고는 박제된 유적이 아니라 살아 있는 문화 콘텐츠의 산실이다. 특히 2026년에는 한지 인형극 ‘한지를 품은 전주사고 이야기’가 3월부터 10월(7~8월 혹서기 제외)까지 매주 주말 관람객을 맞이하며, 전주한지의 보존과 사고의 역사에 대해 친근하고 재미있게 전한다.<br>
교육·해설 프로그램인 이 공연은 실록에 쓰인 한지의 우수성과 임진왜란 당시 실록을 지켜 낸 긴박한 과정을 극으로 풀어내 기록 문화를 즐겁게 이해하도록 돕는다. 또한 실록을 말려 해충을 막던 ‘포쇄’의 지혜도 함께 배울 수 있다.<br>
이러한 시도들은 전주를 ‘기록의 가치를 아는 품격 있는 도시’로 각인시킨다. <br>
과거의 유산이 ‘한지 인형극’과 판타지 프로그램 ‘좀비실록’ 등 오늘날의 문화 콘텐츠로 살아나는 곳, 왕의 숨결과 한지의 온기가 서린 전주사고에서 역사를 지켜낸 이들의 뜨거운 심장 소리를 느껴 보길 바란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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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5.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