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특집
전주에서 만나는 ‘자치와 평등’의 역사
동학농민혁명
<p style="text-align: center; "><img src="https://daum.jeonju.go.kr/_data/sys_webzine_list/1787272974_NJgMsNk2DjTY1VKWsBWEtyDHyArXmIdrOuhS3neRM6a879f0e.jpg"></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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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atc_txt01">동학농민혁명 전적지 완산칠봉, 전주입성비와 투구봉</p>
<p>완산칠봉은 동학농민혁명 전적지다. 1894년 태인, 원평을 지나온 동학농민군이 전주성에 무혈입성하고 나서, 뒤쫓아 온 관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였던 역사적 장소다. <br>
완산칠봉 매곡 골짜기를 지나 장군봉 오르는 길목의 완산공원 초입에 동학농민군 전주입성비와 동학전적비가 우뚝 서 있다. 농민군이 전주성에 진입해 변혁의 기치를 높이 들었던 ‘자치와 평등’의 역사를 말해 주는 상징이다.<br>
전봉준이 이끈 농민군은 전주성에서 달려 나와 이 골짜기를 뛰어올랐고 관군과 치열한 백병전을 벌였다. 농민군과 관군이 전투를 벌인 완산칠봉 여러 봉우리와 골짜기 중에서도 가장 치열했던 곳이 바로 투구봉이다. 수많은 이들이 숨지며 붉은 피로 물들었던 골짜기는 지금 아름다운 꽃동산을 품에 안고 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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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atc_txt01">추모와 기억의 공간, 녹두관과 초록바위</p>
<p>완산칠봉 투구봉 꽃동산 숲길을 걸어 오르면 정상 가까이 숲속에 전주동학농민혁명 녹두관이 있다. 100년 만에 귀환한 이름 모를 동학농민군 지도자의 영령을 추모하는 공간이다. <br>
1995년 일본 북해도대학 표본실 창고에서 발견된 먼지 쌓인 유골함, 고국으로 봉환해 왔으나 끝내 이름을 밝혀내지 못한 무명의 동학농민군 지도자를 전주시가 이곳에 모셔 안장했다. <br>
완산도서관 밑에도 동학농민혁명을 기억하는 공간이 있다. 혁명의 연대기를 시각적으로 구성한 전시관, 동학농민혁명 관련 도서와 문학작품을 그 자리에서 읽을 수 있는 자료관이 역사를 생생하게 전해 준다.<br>
이어 건너편 전주천을 내려다보는 절벽, 초록바위다. 동학농민혁명의 지도자 김개남 장군을 비롯한 농민군들이 처형당했던 아픈 역사의 현장이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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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style="text-align: center; max-width:1200px;margin:auto;"><img src="https://daum.jeonju.go.kr/_data/sys_webzine_list/1787538427_hfjRQN_GUjhfmOSjqzMFkIHhGfgz1WUYGw7eRwuIn6a8babfb.jpg">
<p style="text-align:right;font-size:0.9em;color:#999;padding-top:6px;"><동학농민혁명의 역사와 정신을 만나는 (좌)녹두관 (우)동학혁명기념관></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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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atc_txt01">전라감영에 내건 ‘자치와 평등’의 기치, 그리고 동학혁명기념관</p>
<p>동학농민군이 내건 ‘자치와 평등’의 기치는 전주성 안에서 만날 수 있다. 농민군과 조선 조정이 ‘관민상화’의 전주화약을 맺은 전주성에서 전라도 관찰사가 전봉준을 초청해 농민군의 집강소 체제를 공인한 곳이 전라감영이다. <br>
‘전라감영 선화당’은 전라도 동학농민군 집강소의 총본부인 대도소가 자리 잡았던 곳이다. 동학농민군 집강소는 우리 역사상 처음 민(民)에 의한, 민을 위한, 민의 통치가 이뤄진 소중한 경험이었다.<br>
전주한옥마을 가운데 있는 ‘동학혁명기념관’은 ‘사람이 하늘’이라는 동학사상의 정신을 일깨워 주는 배움터다. 동학농민혁명의 사상과 역사를 기념하기 위해 조성된 전시·교육 공간, 문을 여는 순간 우리는 자연스레 ‘자치와 평등’의 위대한 역사 속으로 들어서게 된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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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8.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