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의 꽃심
“당시 명륜학원 입학은 장원급제나 마찬가지였거든요”
김정순 어르신이 소개하는 선친의 명륜학원 졸업 사진
<p><span style="font-size: 14pt;"><b>오로지 책과 학문밖에 모르던 아버지 </b> </span><br>선친께서는 명예나 물욕보다는 오로지 공부밖에 모르던 분이셨죠. 제가 어렸을 적 아버지는 고서로 둘러싸여 있는 방 안에서 늘 책을 읽으셨어요. 종이도 귀한 때여서 벼루에 먹을 갈지도 않고, 밥상에 물을 묻혀 글씨를 쓰고 지우고 또 쓰던 모습이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시조창에 능하셨고, 가야금도 잘 타셨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학문에 풍류에 두루 능한 조선 시대 선비의 모습 그 자체였던 것 같습니다. 듣기로는 선친께서 일곱 살 때부터 공부에 매진하셨다고 해요. 열 살 이후에는 고창 문수사와 선운사에서 공부하셨다고 합니다. 그 당시에도 한적한에서 책을 읽는 걸 즐기셨대요. <b>그러다 서른이 다 되어 일제 강점기 조선총독부가 성균관에 설치했던 유교 교육기관, 지금의 성균관대학교의 전신인 명륜학원에 입학하셨습니다.</b> 당시 각 도에서 국비로 한 명씩만 뽑는 유생에 전라남·북도와 제주도 대표로 뽑히신 거예요. 그렇게 명륜학원에서 3년간 수학하신 후 고향에 내려오셔서 고창군에서 공무원으로 잠시 근무하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관직보다는 그저 초야에 묻혀서 책 읽고 글 쓰는 일을 더 좋아하셨대요. 광복 후에 전주북중학교에 재직하셨고,<br> 6·25 전쟁 후에는 고향인 고창으로 내려가셔서 고창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재직하셨습니다. 이리여자고등학교에서 퇴직하신 후에는 원광대학교에서 한학을 강의하기도 하셨습니다. 일평생 손에서 책을 놓지 않은 ‘수불석권(手不釋卷)’의 모습을 몸소 보여 주신 분입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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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style="text-align: center;"><img class="txc-image" style="clear: none; float: none;" alt="image" src="https://daum.jeonju.go.kr/data/sys_webzine_list/3740062266_ySsZbm7I_5782701b10bb73c4412781ebc58220f5eb9e2327.jpg"></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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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pan style="font-size: 14pt;"><b>사진으로 보는 명륜학원 시절 기록들 </b></span><br>당시 명륜학원은 각 도에서 유생들을 뽑았는데, 졸업 사진에도 고스란히 드러나 있습니다. 한반도 지도 위에 졸업생들의 사진을 출신 지역에 맞게 배치했는데, 선친 사진은 전라도 부근에 있는 걸 확인할 수 있습니다. 지도 밖으로 한자로 제6회 졸업 기념 2489년 3월 23일이라고 적혀 있어요. 2489년은 공자가 태어난 해를 기원으로 하는 공기예요. 그 공기를 서기로 바꿔 보면 1938년이 됩니다. 날짜 옆으로 있는 분들이 지금으로 치면 교수님이에요. 한복 차림은 우리나라, 양복 차림은 일본 교수들입니다. <b>아버지께 일본에서 명륜학원을 뺏어 가려 해서 학생들이 투쟁을 많이 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b> 화개사 대웅전 앞에서 찍은 화개사 소풍 기념사진에서도 학생들은 교복을 입고, 교수들은 한복과 양복을 입고 있어요. 사진 한 장으로 당시 시대적 특성을 확인할 수 있다는 게 놀랍지 않나요? 구룡폭포 앞에서 찍은 금강산 탐승 기념사진에는 사연이 있어요. 당시 배를 타고 대동강을 건넜는데 아버지는 배를 타지 않으셨대요. 선친께서 3대 독자셨거든요. 혹시라도 잘못되면 어머님께서 얼마나 걱정하실까 싶어서 차마 배를 탈 수 없으셨다 합니다. <b>선친께서는 책도 많이 남기셨는데요. &lt;담재유고&gt;와 &lt;호남인물지&gt;, &lt;한국의 열록&gt; 등은 전주시에 기증하기도 했습니다.</b> &lt;호남인물지&gt;는 전라도의 예술가와 기인 등 3,500여 명의 방대한 자료가 수록된 책입니다. 선친께서 쓰신 책들은 모두 무슨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기록하고 남기고자 하는 마음으로 집필하셨다는 점에서 더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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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pan style="font-size: 14pt;"><b>힘든 시기, 힘을 북돋울 자료가 되기를</b></span><br>제가 3남 3녀 중 막내예요. 선친께서 마흔여섯에 늦둥이로 저를 보셔서, 유난히 예뻐해 주셨어요. 무릎에 앉히고 가야금을 타시던 선친의 모습이 아직도 선명합니다. 살아생전 선친을 참 좋아했고, 존경했습니다. 돌아가시고 나서도 늘 생각을 하고 살아왔습니다. 1978년에 돌아가셨으니 40년이 훌쩍 넘는 세월 동안 한순간도 선친을 잊은 적이 없습니다. <b>힘들었던 일제 강점기 시절 고창에서 한양까지 유학을 떠났고, 돌아와서도 평생을 학문 연구에 몸 바치신 분을 많이들 알지 못한다는 사실이 참 안타깝고 속상했어요.</b> 당시 명륜학원 입학은 조선 시대로 치면 장원급제나 마찬가지거든요. 그런 분이 더 날개를 펴지 못한 것 같아 아쉽더라고요. 그리고 선친께서 처음 교편을 잡으신 곳이 전주북중학교여서인지 전주를 참 사랑하셨어요. 항상 전주를 생각하셨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 아버지의 마음이 전주 시민들에게 닿기를 바라는 마음에 선친의 유품들을 전주시에 기증하게 됐습니다. 요즘 시기가 참 힘들잖아요. 저희 선친뿐만 아니라 일제 강점기에 열심히 살던 분들을 생각하며, <br>이 시기를 잘 극복해 가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선친의 졸업 사진 한 장이 큰 힘이 될 순 없겠지만, 그 시절 선조들을 생각하며 힘을 냈으면 합니다. 그러면 광복이 온 것처럼, 더 좋은 날이 오지 않을까요?</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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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style="text-align: center;"><img class="txc-image" style="clear: none; float: none;" alt="image" src="https://daum.jeonju.go.kr/data/sys_webzine_list/3740062266_J3R69xo7_b407c3f193e267ce35893f38dfcaa8e9687165aa.jpg"></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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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김정순(69) 어르신은 오랜 세월 전주에서 활동해 온 국악인이자, 국가무형문화재 제23호 가야금 산조 및 병창 이수자다. 전주시 기록물수집공모전에 선친인 한학자 고 김봉문 선생의 명륜학원 졸업 사진을 기증, 최우수 기록물로 선정됐다.</p></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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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