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 사람
“사회에서 받은 혜택, 고향 사랑으로 갚겠습니다.”
정순우 전미동 은평마을 (전)통장
<p><img src="https://daum.jeonju.go.kr/data/sys_webzine_list/3232243990_Ah5QpoOl_dbdfc7668fb772888b38b514994343a1e444f7af.jpg" class="txc-image" alt="image" style="clear:none;float:none;" /></p><p><br></p><p style="line-height: 1.8;"><span style="font-size: 14pt;"><b>Q. 은평마을이 특별한 애정과 봉사의 대상이 된 배경이 있나요?</b></span></p><p style="line-height: 1.8;">스물다섯 살에 고향을 떠나 송천동으로 이사를 가고, 직장 생활을 마친 예순네 살 때 다시 고향인 은평마을로 돌아왔습니다. 고향으로 돌아와 보니 개선해야 할 점들이 눈에 보이더라고요. 제가 받은 삶의 행복을 사회에 환원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고, 주변 마을의 발전부터 시작해 보자는 뜻에서 출발했습니다.</p><p style="line-height: 1.8;"><br></p><p style="line-height: 1.8;"><span style="font-size: 14pt;"><b>Q. 통장 활동 중 이것 하나만큼은 잘했다고 자부하는 일이 있다면?</b></span></p><p style="line-height: 1.8;">마을의 1/3 정도는 혼자 사시는 어르신들이십니다. 기초생활수급 대상이신지도 모르고 계시는 점이 안타까웠습니다. 행정적 도움을 알아봐 드린 것이 힘이 되신다는 말을 듣고 참 보람찼습니다. </p><p style="line-height: 1.8;"><br></p><p style="line-height: 1.8;"><span style="font-size: 14pt;"><b>Q. 통장으로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가 있다면?</b></span></p><p style="line-height: 1.8;">우선 ‘안전’이 떠오릅니다. 1990년대 중반까지 저희 은평마을로 들어오는 진입로가 많이 위험했어요. 실제로 사망 사고도 여러 차례 있어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행정과 지방의회의 도움을 받아 마을 진입로를 개선한 뒤, 교통사고가 일어나지 않은 것이 참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p><p style="line-height: 1.8;"><br></p><p style="line-height: 1.8;"><span style="font-size: 14pt;"><b>Q. 최근에 펼치고 계신 봉사활동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b></span></p><p style="line-height: 1.8;">후대에 물려줄 환경을 잘 가꾸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1주일에 한번씩 제 손수레를 끌고 전당네거리부터 회포대교, 만경강가의 고내천변로 총 3km 구간의 쓰레기를 줍고 있습니다. 건강이 허락한다면 여든 살까지는 계속해서 마을의 정화 활동을 이어 나가고 싶습니다.</p><div style="line-height: 1.8;"><br></div><p><br></p>
2024.04.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