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리 J
서서학동 공수내다리
사라진 다리를 건너는 방법
<p class="center"><img src="https://daum.jeonju.go.kr/_data/sys_webzine_list/1769046723_92nKrsCFNXs9iF97fj6hjair2-wnz2ZFrB0GvlSR6697182c3.jpg"></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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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atc_txt01">흑석골에서 내려온 물길의 기억</p>
<p>지금은 도로로 채워진 공수내 일대지만 예전에는 흑석골에서 내려온 물길이 자연스럽게 흘러내리는 작은 계곡이었다. 계곡 주변에는 한지 공방과 빨래터가 있었고, 징검다리와 물레방아가 생활공간과 자연스럽게 맞닿아 있었다. 물길은 당시 마을의 생활 기반 시설이자 생산 활동의 중심이었다. 한지 제작에는 깨끗한 물이 반드시 필요했고, 주민들은 생활용수 대부분을 이 하천에 의존했다. <br>
그러나 도시화가 본격화되면서 풍경은 빠르게 변했다. 계곡의 물길은 점차 좁아졌고, 집중호우 때 불어난 물을 감당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하천 정비 논의가 이어졌다. 지금 우리가 눈으로 그 흔적을 찾을 수 없는 이유는 이러한 과정 속에서 하천이 차츰 구조물 아래로 편입되었기 때문이다. 현재는 전주천년한지관이 당시의 생활 풍경과 물길의 의미를 간접적으로 전하고 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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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atc_txt01">땅속으로 내려간 하천의 자리</p>
<p>전주의 도심이 확장되던 시기, 가장 먼저 추진된 과제는 도로망 정비였다. 그 과정에서 규모가 작거나 우수가 집중될 때만 흐르는 하천들은 도로로 덮였다. 공수내도 예외가 아니었다. 흐르던 물 위에는 도로가 놓였고, 주변 토지는 개발됐다.<br>
이 변화는 공수내만의 사례가 아니라 전주 전역에서 나타났다. 노송천, 모래내, 구화천 등 여러 중·소하천이 같은 방식으로 복개되었다. 도시 기능 확충과 교통 인프라 확보가 우선시되었기 때문에 하천의 자연성보다는 효율성과 실용성이 중요하게 평가되었다.<br>
그럼에도 복개된 물길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싸전다리 인근에는 공수내가 땅 아래를 흘러 전주천으로 합류하는 작은 수문이 남아 있다. 이는 복개 이후에도 하천의 흐름 일부가 지하에서 유지되고 있음을 보여 주는 단서다. 자연 물길이 도시 구조 속에서 어떻게 재편되었는지를 이해하면, 현재 남아 있는 지명·지형과 과거 사이 연결성을 더욱 명확하게 읽어 낼 수 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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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atc_txt01">이름이 남아 지형을 기억하다</p>
<p>‘공수내다리’라는 이름은 하천과 다리가 눈앞에서 사라진 이후에도 계속 사용되고 있다. 이는 단순한 지명 보존이 아니라, 도시가 과거를 기억하는 방식 중 하나다. 행정 명칭과 주민들의 구전 속에 남아 있는 이름은 그 자체로 작은 기록이다. 공수내는 전주가 겪어 온 도시화의 과정과 그 속에서 사라진 자연 요소를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사례다. <br>
전주시는 전주천을 중심으로 자연·환경 기반의 도시계획을 강화하고 있다. 공수내 같은 숨은 하천의 존재는 향후 도시 정책에서 의미 있는 참고점이 될 수 있다. 물길의 물리적 복원이 현실적으로 쉽지 않더라도 이름과 기록으로 남은 흔적을 정확히 이해하는 일은 도시의 미래를 설계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공수내다리는 그런 점에서 단순한 옛 지명이 아니라 전주가 품은 시간을 해석하게 하는 하나의 단서다.</p>
2026.0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