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년전주
지역사회를 살리는 빛으로,
의료선교의 씨앗 예수병원
<p style="text-align: center;"><img src="https://daum.jeonju.go.kr/_data/sys_webzine_list/1763708660_kun-NGioeVjTMdQuBTbzYTVw-liHOMV5tr4SBiv9e69200ef4.jpg"></p>
<p style="text-align: center; font-size:0.9em;color:#999;padding-top:10px;line-height:1.2em;">1960년대 예수병원 직원 단체 사진 ©예수병원 제공</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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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atc_txt01"><br></p><p class="atc_txt01">구바울 선교사와 구바울기념의학박물관</p>
<p>예수병원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은 구바울 선교사다. 일제의 신사참배 거부로 8년간 폐쇄됐던 병원에 1948년 부임한 그는 황폐해진 건물을 재건하며 호남 의료의 불씨를 되살렸다. 1949년 대한민국 최초로 인턴 제도를 도입했고, 1950년 간호학교를 설립했다. 1958년, 장폐색으로 수술한 아이의 소장에서 1,063마리의 회충이 나온 사건을 계기로 전국적인 기생충 박멸 운동을 벌여 감염률을 95%에서 3%로 낮추는 기적을 이뤘다. 그의 이름은 예수병원 본관 맞은편 ‘구바울기념의학박물관’으로 기억되고 있다. 이 박물관은 예수병원의 의료선교 여정과 의료기기, 선교사 자료를 전시한다. 관람객들은 예수병원의 의료선교가 어떻게 지역사회에 뿌리내렸는지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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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atc_txt01">하나님의 뜻으로 사람들을 치료하다</p>
<p>볼티모어 여자의과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한 마티 잉골드는 선교사가 되어 한국에 왔고, 1898년 전주 성문 밖 낡고 조그만 초가집에서 진료를 시작했다. 이 조그만 초가집이 오늘날 대규모 종합병원의 뿌리가 될 줄 그 누가 알았을까? 당시 그는 “나의 전주행은 하나님의 뜻에 의한 것이고 하나님의 뜻은 언제나 옳다”라고 말했다. 그 후 1902년 하위렴 선교사가 서양식 예수병원을 건축했고, 1912년 단의열 원장이 30병상 규모의 병원을 지었다. 1935년 화재로 소실됐으나 전주 지역
교인들의 후원으로 그해 12월 재건됐다. 1964년에 한국 최초로 암 환자 등록사업을 시작하였고 종양 진찰실을 개설했으며, 1971년에는 설대위 원장에 의해 호남 제일의 현대식 병원으로 중화산동 언덕에 그 웅장한 모습을 드러냈는데 사람들은 이를 가리켜 ‘용머리 고개의 기적’이라고 불렀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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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atc_txt01">연말, 희망의 빛으로 물든 병원</p>
<p>오늘날 예수병원은 암센터, 심혈관센터, 재활센터 등을 갖춘 종합병원으로, 지역민의 건강을 돌본다. 연말이 되면 병원 외관과 정원이 크리스마스 조명으로 화려하게 장식되고, 지역민과 환우를 위한 트리 점등식이 열린다. 차가운 겨울밤을 밝히는 수천 개의 불빛은 ‘생명과 희망’이라는 병원의 사명을 보여 준다.
연말의 빛나는 조명 속에서 병원을 찾는 이들은 따뜻한 공동체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시간이 지나도 변치 않는 예수병원의 역사와 정신이 앞으로도 많은 이들에게 희망의 빛을 밝혀 줄 것이다.</p><p><b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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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style="text-align: center;"><img src="https://daum.jeonju.go.kr/_data/sys_webzine_list/1763708660_NFaLpRrB0GBP_uytqhGdHzPXeB9ofh7vtJuD_RFjM69200ef4.jpg"></p>
<p style="text-align: center; font-size:0.9em;color:#999;padding-top:10px;line-height:1.2em;">그림. 정인수</p>
2025.1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