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리 J
전주 한복판에 신라 장군이?
골목에서 만난 뜻밖의 영웅 김유신
<p class="center"><img src="https://daum.jeonju.go.kr/_data/sys_webzine_list/1776820643_VI4Jp-1r3gcRGf221ONG7l-yOEKSfBxcVjJewfS6o69e821a3.jpg"></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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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atc_txt01">전설의 발자취 위에 세운 후손들의 맹세</p>
<p>완산사가 이 가파른 언덕에 자리 잡은 이유는 1,300년을 이어온 전설과 관련이 깊다. 660년 삼국 통일 전쟁 당시, 사비성으로 진격하던 김유신 장군이 잠시 군마를 멈추고 머물렀던 곳이 바로 현재의 완산사 터라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비록 정사(正史) 기록은 아니지만, 후손들에게 이곳은 장군이 삼국의 운명을 가를 결전을 앞두고 승리의 기운을 가다듬었던 영험한 성지로 여겨졌다. <br>
이 전설이 현실의 기록으로 바뀐 결정적인 계기는 1934년에 찾아온다. 당시 가락전라북도종친회(김해 김씨, 김해·태인 허씨, 인천 이씨)는 화수회 결성 10주년을 맞아 종중의 뿌리를 상징할 수 있는 사당 건립을 추진했다. 후손들은 장군의 발자취가 서린 이 언덕이야말로 시조 수 로왕과 김유신 장군을 모실 최적의 명당이라고 판단했다. 특히 신라 시대에 ‘왕’이 아니었음에도 이미 왕의 칭호를 받은 유일한 인물인 ‘흥무대왕(興武大王)’ 김유신을 기리는 공간을 일제강점기에 짓는다는 것은 민족의 자부심을 지키려는 굳은 결단이었다. 결국 1934년, 종친들의 정성이 모여 전주가 내려다보이는 이곳에 완산사가 우뚝 서게 되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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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atc_txt01">계단 너머 향하는 영웅의 길</p>
<p>완산사는 용머리고개 아래 낮은 언덕 지형을 계단식으로 활용하여 방문객이 성역으로 단계적으로 진입하도록 구성했다. 입구 계단을 다 오르면 가장 먼저 ‘모든 근원은 하나’라는 가문의 화합을 상징하는 정문 ‘일원문(一元門)’이 방문객을 맞이한다. 이 문을 지나 마당으로 들어서면 조상을 그리워한다는 뜻의 내삼문인 ‘숭모문(崇慕門)’이 나타나 세속의 공간과 성스러운 사당의 영역을 구분 짓는다. 경내 우측에는 제례를 준비하고 문중의 화합을 도모하는 강당 겸 재실인 ‘강수재(講修齋)’가 자리하며, 맞은편으로는 장군의 공적을 기록한 ‘순충장열흥무대왕비’와 비각이 배치되어 사당의 권위를 뒷받침한다. 숭모문을 지나 가장 깊숙한 곳까지 들어가면 김유신 장군을 모신 사당인 흥무왕묘(興武王廟)와 영정각(影幀閣)이 위엄 있게 서 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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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center"><img src="https://daum.jeonju.go.kr/_data/sys_webzine_list/1776820846_YyRtiRgjSnHqDE57tmze95jXafrglq0ZW4TKLSjfl69e8226e.jpg"></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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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atc_txt01">대제로 피어나는 화합과 공존의 이미지</p>
<p>완산사는 한 가문의 사당을 넘어 전주라는 도시가 가진 역사를 보여 주는 자산이다. 후백제의 수도였던 도시, 조선 왕실의 정통성을 상징하는 경기전이 있는 도시 한복판에 신라와 가야의 역사를 덧댐으로써 전주의 역사적 지평을 넓힌다. 이는 특정 시대에 고착된 도시가 아니라 여러 시대의 영웅 서사가 공존하는 역사 문화 도시로 다시 세우는 것이다.<br>
지금도 매년 4월 10일(춘향대제)과 10월 10일(추향대제)에 제례가 봉행된다. 유림의 주관 아래 진행되는 이 대제는 헌관들이 정중히 술을 올리는 헌작과 축문을 읽는 독축 등 유교식 제례의 전형을 고수한다. 특히 제향 때마다 전북 각지의 가락 종친들이 모여 예를 갖추는 모습은 잊혀 가는 충효와 예의 가치를 일깨우는 산교육의 장 역할을 한다. 승자와 패자를 넘어 역사를 통합적으로 수용하는 완산사는 오늘도 우리에게 화합과 공존의 메시지를 건네며 전주의 모습을 완성하고 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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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4.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