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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의 꽃심

“오래된 책자와 그림 속에서 100년 전 전주를 만나다”

김종선 씨가 소개하는 <효행록>과 <근사록> 속 전주

2020.01
기록물이 지닌 가장 큰 힘은 무엇일까? 바로 직접 겪어 보지 못한 과거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동학농민혁명 당시 전주의 모습, 전주가 한지의 고장임을 증명하는 지소(紙所, 종이를 만들던 관청)가 있던 마을 풍경도 모두 오래된 기록물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김종선 씨가 전주시에 기탁한 <효행록>과 <근사록>을 통해 전주의 옛 모습을 확인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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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대손손 간직해 온 소중한 기록물

IMF(국제통화기금) 직후니까 아마도 1998년경이었을 거예요. 제가 김해김씨 삼현파 71대손인데 당시 종중의 총무이사를 맡고 있었어요. 총무 이사를 맡으면서 종중 사무실의 자료들을 찬찬히 살펴봤습니다. 그때 <효행록>을 발견하게 된 거예요. <효행록>에 등장하는 수철, 정철, 우철 삼 형제는 김해김씨 집안에서 효자로 워낙 유명했습니다. <효행록>이 발견되면서 효자 삼 형제 이야기가 구전설화가 아닌 실제 이야기라는 것을 알게 되었죠. 그러니 얼마나 귀중한 자료입니까? 그래서 지난 20년 넘는 세월을 소중하게 보관해 왔던 것이죠.

이 <효행록>과 함께 전주시에 기탁한 <근사록>은 저희 증조할아버지께서 작성한 일종의 회고록입니다. 김석두 어르신이 바로 그분인데요, 전라감영에서 경리과 업무를 담당하셨습니다. 할아버지에 이어 아버지가 보관해 오시던 것을 제가 이어서 보관해 왔습니다. 2017년 임실군청 김철배 학예사의 해석으로 <근사록>이 그저 단순한 일기가 아닌 역사적 사실이 담긴 중요한 기록물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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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자료에서 만난 '전주의 역사'

<효행록>과 <근사록>에 담긴 내용은 각기 다르지만, 두 책자 모두 전주의 역사를 담고 있답니다. <효행록>은 효자 삼 형제 중 막내인 우철이 큰형 수철의 효행을 기록한 책이라 추정하고 있습니다. 

<효행록>에는 두 장의 그림이 있는데 한 장은 선산의 지도를 그린 그림이고, 나머지 한 장이 150~180년 전 전주의 모습을 그린 그림입니다. 전주의 옛 모습이 담긴 그림 아래쪽을 보면, 청년이 장어를 잡는 천을 확인할 수 있는데 그게 지금으로 치면 색장동과 대성동의 중간에 자리한 전주천입니다. 그 전주천을 따라 승암산으로 올라가는 길목에 지소(紙所), 즉 종이를 만들던 관청이 있고, 그 아래쪽에 기와집 4채와 초가집 3채가 있습니다. 기와집에는 지소에서 행정을 보던 사람들이 살았고, 초가집에는 지소에서 종이를 만들던 사람들이 살았습니다. 이 오래된 그림이 전주가 아주 오래전부터 한지의 고장이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근사록>에는 동학농민혁명이라는 역사적 사건이 기록돼 있습니다.

1894년 2월, 저희 증조할아버지께서 고창에 수금을 하러 간 사이에 동학농민혁명이 일어났고, 고창에서 전주까지 오는 길이 수월하지 않게 되었죠. 무려 두 달이 걸려 전주에 도착하니 동학농민군에 의해 전라감영이 모두 불타 있었다고 합니다. 이 외에도 동학농민혁명 당시 전라감영을 비롯한 전주의 모습이 생생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집안의 자랑을 넘어 전주의 자부심이 되길

사실 <효행록>과 <근사록> 모두 어찌 보면 그저 저희 집안의 이야기일 뿐입니다.

저희 집안이 효자 집안이자 높은 관직을 거친 문신 집안이라는 자부심을 느낄 수 있는 기록물인 거죠.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요즘 사람들에게 효의 의미를 일깨워 주고, 전주 사람으로서의 자부심을 고취시킬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되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개인의 회고록이나 효행록이 아닌 전주의 역사라는 생각이 든 겁니다. 그래서 이번 기록물 공모전에 기탁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효행록>을 발견했을 당시 아버님이 병환 중이셨습니다. <효행록>은 효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고, 효를 가슴 깊이 새기는 계기가 되었지요. 저처럼 <효행록>을 통해 많은 이들이 효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지의 고장이라는 자부심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도 있습니다. 오는 3월이면 전라감영 복원이 완료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전주의 자부심을 드높인 전라감영의 복원을 앞두고 <근사록>이 의미 있는 자료로 쓰이길 기대합니다.


김종선(60) 씨는 임실에서 나고 자랐지만 일가가 전주시 효자동에 모여 살아 전주에 대한 마음이 남다르다. 전주시에 기탁한 <효행록>과 <근사록>이 제7회 전주기록물수집공모전에서 대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