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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의 꽃심

“제 가슴속 아버지를‘전주의 소설가’로 되돌려 드리고 싶어요”

딸 이진 시인이 소개하는 이정환 소설가의 유품과 사진

2018.11
세월이 흐르며 이름은 잊혔지만 집념과 의지는 꼿꼿이 남았다. 소설가 이정환, 그는 파란만장한 근대사를 치열하게 겪어낸 체험을 바탕으로 한 시대를 묘파해 내고, 개인의 비극적 경험을 통해 역사적 서사를 기록해 낸 진정한 이야기꾼이다. 고 이정환 소설가의 딸인 이진 시인은 아버지의 창작열이 남아 있는 유품과 사진을 전주시에 기탁했다. 딸 이진 시인이 말하는 아버지 소설가 이정환의 삶과 작가정신을 들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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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를 통해 다시 살아 낸 아버지의 삶
저에게 아버지 이정환 소설가는 살아 계실 때나 지금이나 한결같이 정신적인 디딤돌이 되어 주시는 분이에요. 소설가로서 아버지는 돌아가실 때까지 결코 글쓰기를 포기하지 않으신 분이었어요. 제가 기억하는 한 아버지는 언제나 소설가였지요. 한국전쟁 당시 귀대 복귀가 늦어 탈영병으로 사형을 선고받은 이유가 어머니의 임종을 지키기 위해서였다고 알려져 있는데, 어느 신문 인터뷰에는 다른 내용도 있더라고요. 시집 발간을 위해 잠깐 외출을 했다 귀대 시간을 어기게 되었다는 내용이었는데, 아마 그 역시 사실일 것 같아요. 청년 시절의 아버지에게 문학은, 전쟁에서 목숨을 걸고 지키고 싶었던 절대적인 대상이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하나뿐인 어머니만큼이나요. 또한 당뇨성 망막증으로 인해 실명하셨을 때조차 원고지에 직접 글을 쓰셨듯이, 소설가 이정환은 원고지와 펜, 책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아침에 눈을 뜨고 밤에 눈을 감을 때까지 쓰거나 읽고 계셨죠. 사형수였다가 풀려났던 아버지는, 아마도 글을 쓰기 위해 삶을 다시 사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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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뒤를 따라 작가의 길로 선 딸
아버지의 작품 중에서 특별히 애착이 가는 작품으로는 <샛강>, <까치방> 그리고 <유리별 대합실> 등이 있습니다. 모든 작품들이 저에게 소중하고 귀하지만, <샛강>과 <까치방>은 아버지 이정환 소설가가 무척 아끼시던 주옥같은 작품이지요. <유리별 대합실>은 아버지가 인기 작가가 되면서 아버지뿐 아니라 우리 가족에게 행복한 일상을 제공 해 준 작품이에요. 저는 스스로를 소설가 이정환의 삶을 작가적인 시점에서 가장 낱낱이 기억하고 있는 사람 중 하나라고 생각해요. 가족 중에서 아버지의 뒤를 이어 글을 쓰는 사람은 저 혼자거든요. 저 역시 글에 대한 열망과 갈증이 무척 심했지만, 소설가로서의 아버지의 삶이 고통스럽게 기억되었기에 작가가 되는 것이 두려웠어요. 그럼에도 끝내 작가가 된 이유는, 아버지를 묻던 날, ‘아빠, 거기 가서는 아프지 말고 편히 쉬어. 아빠가 못다 한 이야기, 내가 쓸 테니까.’ 라고 아버지와 단둘이 했던 약속 때문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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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유품과 사진을 전주시에 기탁
기탁을 결심하기가 조심스러웠어요. 아버지의 육필 원고 와 사진, 작품집들이 세월에 나날이 삭아가는 과정을 보면서 안타깝기는 했지만, 그것들은 저 혼자만의 것이 아닌 우리 가족의 것이니까요. 하지만 제 가슴속에만 묻어 두었던 아버지를 ‘전주 시민의 아버지’로, 또 제 가슴속에서만 소설가였던 아버지를 ‘전주 시민의 소설가’로 되돌려 드리는 작업이란 생각에 기탁을 결정하게 되었어요. 기탁품에는 아버지의 청년 시절부터 마지막 모 습이 담긴 사진, 육필 원고 등이 있습니다. 실명 전에 원고지 위에 또박또박 쓴 작품들과 함께, 실명 후에 쓴, 그야말로 겹치고 얽힌 문장들로 채워진 ‘처참한’ 원고들을 보실 수 있습니다. 아버지는 실명 선고를 받은 후에도, 입으로 구술하지 않고 원고지에 글을 쓰셨는데요. 아무 리 우리들이 옆에서 아버지의 손을 잡아 주어도, 아버지의 글 쓰는 속도가 너무 빨라서 행이 겹치고는 했습니다. 눈도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갈겨 쓴 필체에다가 행까지 겹치니, 내용을 알아본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지요. 그렇게 써낸 한 줄 한 줄에 의지하여 우리 가족이 밥을 먹고 살았기에, 저 와 가족에겐 더없이 귀중한 기탁품인 셈이지요.


기억 속 ‘덕원서점’과 ‘르네상스서점’
아버지는 전주 남부시장의 ‘덕원서점’과 전동의 ‘르네상스서점’이라는 서점을 운영하셨어요. 갓난쟁이 시절이었기에 제 기억에 남아있진 않아요. 다만 사진으로 보아 왔지요. 아버지가 책방 주인장이었던 시절을 떠올리자면, 아주 어릴 때부터 집에 언제나 온갖 책들이 쌓여 있던 기억이 어렴풋이 남아 있어요. 낡은 책도 상당히 많았고, 일본 책과 무서운 삽화가 들어 간 책들도 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 책들 모두 소설가 이정환을 있게 한 작가적 자산이었겠지요.
아버지가 전주 시민들에게 ‘전주의 아들’, ‘전주의 소설가’로 기억되었으면 해요. 전주천변에서 막걸리를 마시면서 작가의 꿈을 키웠고, 전주에서의 소중한 추억들 을 작품으로 승화시켰던 아버지에게, 전주 는 어느 지역보다도 각별한 정신적 고향이었을 테니까요.


이정환 소설가의 장녀인 이진(57) 시인은 기자와 편집자 생활을 거친 후, 아버지의 뒤를 이어 전업 작가와 프리랜서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1995년 계간 <시인과 사회> 가을호에 시부문 신인상을 수상하며 등단했다. 저서로는 소설집 <잘했어! 흰털>, 시집 <프라하 일기·우블라젠키 사람들>, <지우개도 그림을 그린다>, <서랍 속의 생>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