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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의 꽃심

“전주 기록물은 전주에 있어야 더 큰 가치를 지니게 되지요”

김세신 어르신이 발로 뛰며 수집한 전주 기록물

2019.03
전주의 오랜 역사를 찾아 전국 각지를 돌아다닌 사람. 그렇게 발품을 팔아 얻은 고향 전주의 각종 기록물 속에서 아직도 살아가고 있는 사람. 역사학자는 아니지만, 의미 있는 순간의 기록을 모으며 전주의 또 다른 역사를 만들어가고 있는 김세신 어르신을 만나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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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공부에서 시작된 기록물 수집
스무 살 무렵, 방황하던 마음을 다잡기 위해 2년간 천자문을 쓰고 익혔어요. 아마도 못다 한 공부의 한을 그렇게 풀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그렇게 익힌 한자는 후에 기록물 수집을 업으로 삼는 결정적 계기가 됐지요. 한창 돈벌이를 찾던 와중에 눈에 띈 게 고미술품, 고문서를 판매하는 일이었어요. 제가 동서학동에서 태어나고 자랐는데 당시 서학동, 교동, 완산동 일대에 고문서, 고미술품 가게들이 참 많았거든요. 자연스럽게 다양한 고문서, 고미술품들을 접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만 해도 오래된 문서의 가치를 잘 모르니 무게를 재서 그 값을 매기던 시대였어요. 한자 공부를 한 덕에 낡은 문서가 지닌 가치가 보이더군요. 10여 년 전 했던 한자 공부가 큰 자산이 된 셈이죠. 그렇게 오래된 문서의 가치를 알아보는 강점을 토대로 고미술품도 함께 수집, 판매하는 가게를 열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항아리, 가구들도 함께 모았는데 모으고, 보관하는 게 쉽지가 않더군요. 그래서 고문서와 고미술품 위주로 수집해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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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궁도대회 채점표, 전주시에 기증
수집 일을 시작하고 7~8년 동안 전국 각지를 돌아다녔어요. 지금처럼 인터넷으로 정보를 알아볼 수도 없던 시대니 무작정 발로 뛰면서 기록물들을 찾아냈습니다. 그렇게 발로 뛴 덕에 일은 점점 자리를 잡기 시작했고, 이쪽 업계에서 제법 인정도 받게 됐습니다. 그러다 보니 괜찮은 수집물이 있다고 먼저 연락을 주는 이들도 생겼지요. 얼마 전 전주시에 기증한 1968년 전주 청양정에서 열린 궁도대회 채점표인 획기지도 그렇게 얻게 된 것입니다. 17년 전쯤 광주에 사는 지인이 궁도대회 경기 결과를 기록한 획기지가 있는데 전주에서 열린 대회 같다면서 연락이 왔습니다. 찬찬히 살펴보니 획기지에는 매회마다 적중된 화살 수와 참가자 전원의 성적이 빠짐없이 기재돼 있었고, 당시로선 찾아보기 힘든 여성 선수에 대한 기록까지 있더군요. 하지만 당시엔 오랜 시간이 지난 기록물이 아니었기에 큰 가치가 있진 않았어요. 그래도 전주에서 열린 대회 기록물이니 그 가치를 떠나 보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러다 지난해 전주 기록물 수집 공모전 소식을 듣고 천양정 궁도대회 획기지를 기증했어요. 역사적 의미가 있는 기록물이기에 전주시에 기증하는 게 맞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찌 보면 당연히 기증할 기록물인데 상까지 받게 되니 그저 뿌듯할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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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의 꿈, 내 고장 기록물 연구소
오래된 기록물의 가치를 결정하는 것은 크게 두 가지가 있는데요. 하나는 얼마나 오랜 시간이 경과했는지 여부이고, 다른 하나는 바로 지역입니다. 역사적 사건의 기록물이 아닌 이상 본고장에 있을 때 그 가치를 인정받는 것이지요. 전주의 기록물은 전주에서 더 큰 가치를 지니게 되는 것이죠. 이번에 진옥 주장 술통을 비롯해 1968년 전북대 전주성심외국어학원 학생 모집 요강 전단지, 전주 최씨 족보 등도 모두 전주의 기록물이기에 전주에 있어야만 더욱 빛나는 것입니다. 오랜 시간 기록물을 모으는 일을 하다 보니, 전주에 관련된 기록물을 참 많이도 모았습니다. 전주 시내 학교 졸업 앨범, 족보, 다양한 책자들이 바로 그것이지요.
그렇게 모은 기록물들이 그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았으면 하는 게 작은 바람이에요. 그 바람을 현실화하는 계획도 세웠답니다. 바로 내 고장 기록물 연구소를 여는 겁니다.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앞으로 10년 후쯤을 목표로 삼고 있어요.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 지금껏 해온 것처럼 오늘도 내일도 의미 있는 내 고장 기록물 수집에 정진할 계획입니다.


김세신(71) 어르신은 전주시 완산동 용머리고개에서 ‘국보고미술원’을 40여 년째 운영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다양한 종류의 고문서, 고미술품 등 근대 유물을 수집, 판매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