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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의 꽃심

“역사를 바로 아는 일, 기록물 보존에서 시작됩니다”

이만호 씨가 이야기하는 전주교도소 100년의 역사

2019.06
자랑스러운 역사든, 아픈 역사든 이를 기억해야 더 나은 미래를 만들 수 있다. 역사학자 단재 신채호 선생 역시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하지 않았던가. 이만호 씨의 기록물 수집은 바로 이러한 역사 사랑에서 비롯됐다. 직접 집필에 참여한 <전주교도소 100년사>를 전주시에 기증한 이유도 기록물을 제대로 보존해야 역사를 바로 알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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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한 경험, <전주교도소 100년사>를 쓰다
교정직 공무원으로 근무한 38년 7개월 중 33년을 전주교도소에서 근무했어요. 제 인생의 대부분을 전주교도소에서 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셈이죠. 그러니 <전주교도소 100년사> 집필에 참여한 일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 아니었나 싶어요. 2008년, 전주교도소 100주년의 의미를 기리고자 전주교도소에 근무했던 소장님과 과장님들이 책을 한번 내면 어떨까 하는 의견을 내셨어요. 그리고 김영식 전 보안과장님을 비롯, 저를 포함한 다섯 명이 참여하게 되었죠. 저는 전주교도소에 오래 근무하고, 교도소 홍보에 기여한 바를 인정받아 참여하게 되었어요. 다섯 명이 발로 뛰며 자료를 모아 석 달에 걸쳐 책 한 권을 완성했습니다. 이제 와 생각해 보면 어떻게 해냈나 싶기도 합니다. 막상 책을 만들려 하니 자료가 턱없이 부족했거든요. 말 그대로 ‘맨땅에 헤딩’하는 심정이었어요. 전주시립도서관에서 과거 신문들도 찾아보고, 원로 선배들을 찾아가서 이야기를 듣기도 하고. 전주교도소 자료가 있을 만한 곳은 어디든 찾아갔던 것 같아요. 그렇게 책을 만들다 보니 미처 몰랐던 역사적 사실들을 하나둘 깨닫게 됐어요.
1908년 일제 강점기 당시 ‘광주감옥 전주분감’으로 시작해 ‘전주감옥’을 거쳐‘전주형무소’, ‘전주교도소’에 이르기까지, 전주교도소의 역사는 우리나라 근대 역사와 맞닿아 있었습니다. 큰 사건이 벌어질 때마다 수감자들은 급격히 늘어났고, 전주교도소는 더 큰 곳으로 이전하게 됐습니다. 나라의 굵직굵직한 사건들과 전주교도소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였던 것이죠. 책을 만들면서 힘든 와중에 만난 참 재미난 발견이었고, 깊은 깨달음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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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기록물 수집은 ‘즐거운 수고’
책 집필은 보다 적극적인 기록물 수집으로 이어졌습니다. <전주교도소 100년사>를 쓰면서 우리 역사에 대한 관심이 더욱 높아졌고, 역사를 제대로 알아야만 더 나은 나라를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리고 역사를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역사적 사실이 담긴 기록물을 찾아서 잘 보존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때부터 역사 기록물 수집에 대한 ‘즐거운 수고’가 시작됐습니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기록물을 수집했고, 필요하면 경매에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지난해 전주시에 기증한 <도왜실기>도 경매를 통해 얻은 것입니다. 이 책은 1932년 12월 백범 김구 선생이 중국 상해 망명 당시, 한인애국단의 의열 활동을 알리고자 저술한 책이에요. 전주시에서 3・1운동 관련 자료를 찾는다는 소식을 듣고 두 번 생각할 것도 없이 기증했습니다. 우리나라가 5,000년 역사를 자랑한다는데 요즘 사람들은 이런 역사에 대한 자부심이 부족한 것 같아요. 그게 모두 역사적 기록물이 부족한 탓이라 생각합니다. 자랑스러운 역사를 증명할 수 있는 기록물이 있다면 우리나라 사람들의 역사의식도 고취되지 않을까요?


역사박물관 건립의 꿈, 삶의 원동력
지난해 초부터 호남고속에서 시내버스 기사들의 배차 업무를 관리하고 있어요. 40년 가까이 일했으니 좀 쉴 만도 하다지만 그럴 수가 없습니다. 제겐 꼭 이루고 싶은 오랜 꿈이 있거든요. 바로 그동안 고생한 아내에게 ‘역사박물관’을 선물하는 거예요.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그날을 위해 더 열심히 일하고 있습니다. 문화 유물도 수집해야 하고, 전시 공간도 마련해야 하니까요. 물론 수익을 위한 공간은 아니에요. 그저 그 공간을 통해서 많은 사람들이 우리 역사에 대해 조금이나마 더 관심을 보인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 같습니다. 기록물 수집이라는 제 취미가 저만의 역사 사랑에서 끝나지 않고, 보다 많은 이들에게 기록물의 가치를 알리는 일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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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호(63) 씨가 순창에서 태어났지만, 인생의 반 이상을 전주교도소에서 근무한 까닭에 전주에 대한 애착이 전주 토박이 못지않다. 현재는 호남고속에서 일하며, 수필가이자 수집가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