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킵 네비게이션


전주의 꽃심

“사라져 버린 곳들도 사진 속에는 그대로 살아 있어요”

이영무 어르신이 추억하는 1970년대 전주의 풍경들

2020.10
눈으로 보지 못한 시절을 증명하는 것, 사진이 지닌 힘이다. 말로 아무리 열심히 설명한다 한들 사진 한 장이 지닌 힘에는 비할 바가 못 된다. 이영무 어르신은 직접 찍은 사진으로 1970년대 전라북도박물관이 현재의 경기전 자리에 있었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그리고 사진 속에는 20대 청춘의 그가 살아 숨 쉬고 있었다. 이영무 어르신을 만나 사진 이야기와 1970년대 전주의 모습을 들어보았다.


image


20대 시절, 걸으면서 만난 1970년대의 전주 
제 나이 스물다섯 살에 성경 공부를 하기 위해 전주신학원에 입학했어요. 제가 1946년생이니 1970년도였지요. 그 당시 전주신학원이 신흥고등학교 정문 맞은편 언덕에 있었습니다. 왼쪽에 신일아파트가, 오른쪽에 예수병원이 있었고, 지금의 엠마오사랑병원 자리에 예수병원이 있었지요.
제가 남원 출신이에요. 그래서 전주신학원에 다닐 당시 기숙사 생활을 했습니다. 시간이 날 때마다 전주를 참 많이 걸어 다녔지요. 그때 본 전주 풍경들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그때 가장 즐겨 찾던 곳이 다가공원이에요. 신학원 바로 건너편에 있어서 틈날 때마다 산책하러 갔었지요. 다가공원은 지금도 가끔 가는데 그때나 지금이나 크게 변하지 않은 것 같아요. 일요일이면 신흥학교를 지나서 천변을 따라 대성리에 있는 교회까지 걸어갔어요. 전주천변은 참 많이도 바뀌었지요. 그 시절에 비해 산책로로 정리가 많이 된 느낌입니다. 사라진 풍경들도 생각이 나는데요. 싸전다리 건너편 오른쪽 산의 초록바위 순교 터도 길을 넓히면서 옛 모습을 찾아볼 수 없게 되었지요. 지금은 조형물만이 그곳이 순교 성지였다는 사실을 말해주지요. 한옥마을 모습도 참 많이 바뀌었어요. 제 기억에 오목대에 샘터가 있었거든요. ‘쌍샘길’로 불리던 그 길이 세월이 흐르고, 골목길을 넓히면서 샘터가 없어졌습니다. 그런데 몇 해 전부터 쌍샘이 복원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사라져서 아쉬운 마음이 가득했는데 복원된다니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지금도 완산동 집에서 기린로나 모래내까지 걸어 다니는데 신학원 다니던 시절이 가끔 생각납니다. 달라진 전주의 모습도 떠오르고요.


image



사진으로 다시 만나는 전라북도박물관 옛 모습
1971년, 신학원 2학년 때, 전라북도박물관에 갔어요. 사실 정확히 언제, 왜 갔는지 기억나지는 않습니다. 당시 신학원 친구들과 함께 갔던 기억만 납니다. 두 친구와 함께 갔는데 한 친구는 김제 출신이고, 다른 한 친구는 진안 출신이었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셋 다 전주 사람이 아니어서 시내 구경 한번 가 보자 하고 갔던 모양입니다. 매화꽃이 활짝 핀 것으로 보아 아마도 2~3월경이었나 봅니다. 기숙사에서 생활하던 친구들이 시내 구경을 나가니 얼마나 신이 났겠어요? 기념사진도 찍겠다고 카메라까지 챙겨 갔지요. 박물관 안을 구경하고 나와서 정원 여기저기에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당시 태조비가 박물관 안에 있었다는 사실을 사진 보고 알았어요. 제가 태조비 옆에서 찍은 사진을 보면서 ‘아, 그때 그 태조비가 경기전 앞으로 옮겨 왔구나’ 하고 알게 됐습니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사진을 보니 50년 전 박물관 모습이 생생하게 기억났어요. 지금 성심여고 네거리에 있는 구둣방이 바로 박물관 정문 자리였어요. 그런데 박물관이 경기전 자리에 있었다는 걸 아는 사람이 드물어요. 주변 사람들에게 이야기해도 믿지를 않더라고요. 내가 직접 가서 보고 찍은 거라며 사진을 보여주면 그제야 믿더군요. 백 번 말하는 것보다 사진 한 번 보여 주는 게 더 빨랐던 셈이죠. 전주신학원 사진도 찍어 뒀는데요. 제가 나오고 난 뒤, 4~5년 후에 전주신학원이 없어졌다고 해요. 사라진 건물이 사진 속에 남아 있는 거지요. 그러니 얼마나 신기해요? 자리를 옮긴 곳도, 사라져 버린 곳도 모두 사진 속에는 그대로 살아 있으니 말이에요.


사진은 역사적 자료이자 자랑스러운 기록물
제가 사진을 기증한 이유가 바로 그거예요. 비록 사라져 버렸지만, 사진 속에 남아 있는 모습을 통해 사람들이 옛 모습을 떠올리고 믿기를 바라는 마음. 그 마음으로 1971년 찍은 전라북도박물관 사진을 기증했습니다. 그러니 직접 보거나 겪어 보지 않았지만, 사진으로나마 그 시절에 대해 생각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제가 옛것에 관심이 참 많아요. 옛것에는 우리 조상들의 얼이 담겨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옛 물건들을 보면 우리 조상들이 이렇게 살아오셨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러니 제 사진을 보고 ‘전라북도박물관이 예전에는 이런 모습이었구나’하고 알게 됐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사진을 보고 난 뒤, 경기전에 가면 ‘이곳에 전라북도박물관이 있었구나. 내가 서 있는 이 자리가 옛날 박물관이 있던 자리구나’ 하고 한 번 더 생각했으면 해요. 전주는 그 어느 곳보다 우리 문화가 많이 남아 있고, 계승하고 있는 곳이잖아요.
그러니 젊은 사람들이 옛날 전주의 모습과 우리 문화유산에 관심과 애착을 보였으면 해요. 아끼고 보호하면 더더욱 좋겠지요. 그리고 될 수 있다면 사진으로 남겨 두세요. 사진은 증명인 동시에, 자랑할 수 있는 자료거든요. ‘나 이것 봤다, 여기 가 봤다’ 하는 자랑 말이지요. 그러니 관심을 쏟고, 보고, 기록하길 바랍니다.


이영무(74) 어르신은 남원 출신으로 전주에서 40여 년간 목회 생활을 했다. 지난해 전주에서 출간한 종교 간행물 <복된 말씀>을 전주시에 기증한 데 이어 올해 1971년에 찍은 전라북도박물관 사진을 기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