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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과 더불어

서른에서 마흔으로 그녀가 돌아왔다

연극배우 이혜지

2019.03
세월이 흐를수록 세상과 삶을 바라보는 눈이 깊어지는 사람이 있다. 오롯이 세월의 흔적을 자신 안에 담아 무대 위에서 온전히 표현할 줄 아는 진정한 배우. 그저 연극을 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는 그녀가 십 년의 시간을 훌쩍 뛰어넘어 다시 무대 위로 돌아왔다. 솔직하고 거침없는 모습이 매력적인 배우 이혜지. 연극 <여자, 마흔>이 막을 내리자 그녀는 환하게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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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노드라마 <여자, 마흔>으로 10년 만에 다시 무대에 섰는데, 소감이 어떤가요?
처음 연습실에 들어가서 거울 앞에 섰을 때 그때 기분이 굉장히 묘했어요. 십 년 동안 정신없이 육아와 살림에 치여 살다가 ‘아, 내가 배우였지….’ 내가 누구였는지 꼭 확인받는 느낌이랄까. 사실 연습하랴, 살림하랴 몸은 굉장히 힘들었는데 이상하게 활력이 생기더라고요. 역시 사람은 좋아하는 일을 해야 하나 봐요.


첫 번째 작품 <여자, 서른>과 이번 <여자, 마흔>의 달라진 점이 있다면요?
일단 주인공 직업이 라디오 DJ이고 생방송 상황이라는 건 같지만 인물이 달라요. <여자, 서른>은 서른 즈음 젊은이들의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고민, 그리고 주인공의 가슴 아픈 과거사를 다뤘다면, 이번 <여자, 마흔>은 이 시대 보통의 마흔 살 여자들이 겪는 경력 단절, 육아 고민을 주제로 다뤘어요. 힘든 현실에 잠시라도 돌아가고픈, 자신의 화려했던 과거를 돌아보며 지금의 나를 격려하고 위로하는 공연이죠. 그러니까 제 얘기이자 가장 진실한 이야기인 셈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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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 년 만에 오른 무대가 모노드라마라 부담이 컸을 것 같은데요.
악몽을 많이 꿨어요. 특히 무대 위에서 대사를 잊어버리는 꿈을 많이 꿨어요. 1인극이라 대사 분량이 너무 많다 보니까 그랬을까요? 대사든 뭐든 실수할 때 옆에서 수습해 줄 사람이 없는 게 가장 불안했고요. 특히 나 자신을 믿을 수 없을 때 극도의 불안감에 빠졌던 것 같아요. 모노드라마는 관객이 한 사람에게 집중하기 때문에 혼자 빛날 수는 있지만 그만큼의 부담감은 엄청나거든요. 그럼에도 모노드라마를 하는 이유는 막이 내려가는 순간, 인생에서 정말 큰일을 해냈다는 성취감 때문이죠.


이번 작품에서 배우뿐만 아니라 직접 연출까지 한 이유가 있다면요?
이번에는 연습 일정부터 1인극의 구성까지 조금 더 자유롭게 해 보고 싶기도 했고요. 그런데 막상 음향 선곡이며 소품, 음악 편집, 의상부터 무대 디자인까지. 혼자 모든 걸 결정해야 하니까 머리가 많이 아팠어요. 그래도 그동안의 경험을 최대한 되살려서 고민에 고민을 했더니 다행히 좋은 평이 많았던 것 같아요. 공연을 보셨던 분들이 연기도 좋았다고 하지만 연출 칭찬도 많이 해 주셔서 감사했죠. 


마지막으로 어떤 배우로 기억되고 싶나요?
처음 연극을 시작했을 땐 내 연기로 사람들의 가슴속에 무언가 꽉 채워줄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었는데요. 물론 그건 지금도 변함없지만 제일 첫 번째는 오랫동안 관객들과 함께하는 배우로 남고 싶어요. 나는 무대 위에 있고 관객들은 객석에 있어도 함께 호흡할 수 있는 배우요. 관객들이 지금 내 연기를 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무대 위에서 함께 있는 것처럼 느낄 수 있다면 좋겠어요. 이제야 조금 알 것 같은데 앞으로 잘할 수 있겠죠? 


연극배우 이혜지
1979년생으로 전주에서 태어나 창작극회 입단 후 연극을 시작했다. 2000년부터 작품 활동을 시작하여 전북연극제와 고마나루향토연극제에서 연기상을 수상했다. 2008년 모노드라마 <여자, 서른>을 올린 후 2018년 전북문화관광재단 신진예술가로 선정되어 두 번째 모노드라마 <여자, 마흔>을 선보였다.  

모노드라마 <여자, 마흔>
결혼한 모든 여성들이 격하게 공감할 연극 <여자, 마흔>. 라디오 진행자로 일도 사랑도 완벽을 꿈꿨던 주인공이 결혼과 출산을 겪으면서 경력 단절녀가 되고, 우여곡절 끝에 라디오 프로그램에 복직하게 되는 이야기다. 마흔이라는 나이, 준비 없이 엄마가 된 보통의 존재들이 겪는 성장담이다. 여성 캐릭터의 스펙트럼이 좁은 무대에서 여배우가 설 자리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당당하게 무대에 오른 배우 ‘이혜지’의 열연이 돋보인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