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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하루

전주동물원

모두를 품에 안은 숲속 동물원

20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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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성비 높은 놀이터, 전주동물원
어젯밤, 가족 여행을 다녀온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넘실대는 봄기운을 이기지 못해 집을 나서자고 했다. 상춘(賞春) 시즌에 ‘방콕’은 봄을 능멸하는 행태다. 무엇보다 아이들을 봄볕에 널어두고 춤추게 하고 싶었다. 목적지가 문제였다. 괜찮은 식당을 찾아 헤맬 때와 같은 난제였다. 그나마 이를 닦던 중에 전주동물원을 떠올린 것이 다행이었다. 식당 선택으로 고심하던 중 잊고 있던 가성비 좋은 맛집을 떠올렸을 때와 같은 반가움이었다. 딱히 돈이 드는 것도 아니고 거리가 먼 것도 아니면서 공원의 정취를 만끽할 수 있으니 말이다. 게다가 최근에는 생태동물원으로 탈바꿈했다니 저비용 고효율의 알짜배기는 바로 코앞에 있었던 게 아닌가. 그래, 전주동물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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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사람이라면 하나쯤 있는 동물원의 추억
짐이랄 것도 없이 간단한 물과 간식만 챙긴 채 집을 나섰다. 아침 시간이라 동물원 진입로도 한산했다. 가는 길은 벚꽃이 가득, 꽃비가 내리고 있었다. 전주동물원에도 꽃비가 넘실대겠지, 괜스레 마음이 설렌다. 전주 토박이인 나에게 ‘동물원’은 고유명사다. 어릴 적 가족 나들이에서부터 초등학교 소풍, 아내와의 연애에 이르기까지 생애주기별로 동물원의 추억이 개입돼 있다. 그리고 가정을 꾸린 지금, 나는 다시 어릴 적 부모님의 역할을 물려받아 토깽이 같은 아들딸을 데리고 동물원을 다닌다. 그래서 전주 사람에게 동물원이란 단순히 동물을 가두어 놓고 구경하는 기능적 공간이 아니라 과거와 오늘이 동시에 공존하는, 다양한 이야기와 추억이 배어 있는 곳이다.
문을 연 것이 1978년이라고 하니 나보다 다섯 살이 어린 동물원. 연상인 줄 알았는데 연하라니 좀 더 편하게 바라봐야겠다. 형, 동생과 나란히 앉아서 사진 찍었던 곳이 눈에 들어오고, 초등학교 소풍 때 반 친구들과 모여 앉아 있던 잔디밭, 대학 시절 야학 사람들과 함께 김밥을 먹던 벤치, 그리고 결혼 전 아내와 탔던 대관람차가 나를 잠시 과거로 이끈다. 밖에 나오면 마냥 기분 좋은 늦둥이 딸아이는 연신 웃음이다. 나도 그랬을까. 그때 어머니 아버지도 지금 이 순간 내가 느끼는 작은 행복 한 조각을 똑같이 간직하셨겠지 생각하니 눈앞의 풍경이 잠시 흐릿해진다.


생태동물원, 잘했다, 잘됐다, 참 다행이다
마치 나만의 추억을 고이 간직해 주기라도 하겠다는 듯 한동안 변한 게 없었던 동물원이지만 요즘에는 가장 도드라진 변화가 생겼다. 바로 생태동물원으로의 탈바꿈이다. 바뀐 동물원의 구석구석을 둘러보면 동물원 앞에 붙인 생태라는 말이 단순한 홍보용 꾸밈말이 아닌 것을 알 수 있다. 늑대, 호랑이, 사자, 곰 등 각각의 동물이 지닌 특성을 감안해서 야생의 자연 서식지와 유사하면서 생태적인 새로운 보금자리를 만들어 주었고, 공간 자체도 넓혀서 지형에 볼륨감을 부여했다. 이전과 비교해 보면 동물원의 의미 있는 변화를 위해 상당한 노력을 기울인 걸 알 수 있다.
이런 변화의 가장 큰 수혜자는 당연히 동물 친구들이다. 말 못 하는 짐승이라고 해서 차가운 철재 우리와 딱딱한 시멘트 바닥에 대한 불만이 없었을 리 없다. 인간이 듣지 못했을 뿐, 이미 동물 친구들은 끊임없이 외치고 저항하면서 개선을 요구해 왔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지금의 전주생태동물원은 동물 친구들이 자신들만의 몸짓과 언어로 싸워 오며 이루어 낸 동물 복지의 결과라고 생각하고 싶다.
보는 이의 입장에서도 미안한 마음이 덜해서 좋다. 자연이 아니라면 최대한 자연에 근접한 환경을 제공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예전부터 있었다. 사파리처럼 광활한 공간이 아니라면 인테리어라도 다시 제대로 해 줬어야 했다. 잘했다, 잘됐다, 참 다행이다. 아이들을 위한 교육적 효과도 기대해 본다. 동물원에 있는 동물이란 차가운 바닥에 나뒹굴어도 되는, 원래 그런 존재라는 고약한 생각을 굳혀갈 수 있기 때문이다. 첫째 아이를 데리고 동물원에 올 때면 그게 늘 마음에 걸렸다. 그래서 눈앞의 풍경이 잘못된 것이라고 꼭 일러 주곤 했는데 이제는 그럴 일이 많지 않을 것 같다.


동물원의 또 다른 식구들, 숲과 꽃
오전 10시가 넘어가니 사람들이 한둘씩 늘어나기 시작한다. 가족이 태반이고 연인들도 눈에 띈다. 이런 풍경은 변함이 없다. 한적한 동물원도 좋지만 북적이는 풍경도 좋다. 어차피 봄바람에 춤추며 내리는 꽃비를 우리 네 식구만 독식할 수는 없는 일이다. 꽃을 좋아하고 꽃에 대해서 꽤 많이 아는 아내는 딸아이와 함께 쪼그려 앉아서 꽃을 매만지고 있다. 딸아이가 엄마가 일러주는 꽃 이름을 제법 따라하는 걸 보니 신통방통하다. 튤립과 팬지꽃이며, 능수버들, 산수유, 명자나무, 그리고 흩날리는 절정의 벚꽃까지, 동물원에는 동물만 있는 것이 아니다.
동물원은 이제 생태동물원으로서 한 걸음을 내디뎠을 뿐이다. 그리고 지금의 변화는 생태학적 가치를 실현시키기 위한 전주 시민의 작은 발걸음이라는 데 의미가 있다. 이제, 보다 많은 사람들이 전주생태동물원을 찾고 사람들의 생각도 바뀌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그래서 생태동물원으로서의 면면을 확대해 나가자는 목소리도 더욱 커졌으면 한다. 무엇보다 입주자인 동물 친구들의 몸짓을 경청해서 생태동물원의 내일을 설계하는 데 적극 반영해 나가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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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문동환 | 전라북도의회사무처 정책연구원
예비역 대위 출신으로 전라북도의회사무처 정책팀에서 8년째 일하고 있다. 전주세계소리축제 조직위에서 일하는 한지영 씨의 남편으로 불리다가 몇 년 전부터는 제 이름으로 불리는 두 아이의 아빠다.